본문 바로가기
  • 김보라 기자
    김보라 기자 문화부
  • 구독
  • 예술은 생각을 바꾸고, 글은 세상을 바꿉니다.

  • 대한민국 미술사의 두 거장을 키운 한옥, 어떤 가족의 '집' 이야기

    서울 성북동 언덕 위, 허름한 판잣집을 허물고 그 자리에 땅 모양을 살려 집을 짓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어머니와 함께 평소 창덕궁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했던 '연경당 사랑채'를 그대로 옮겨 오기로 했다. 연경당은 순조 대왕 시절 궁궐 안에 지은 선비의 집, 민간인을 위한 집이었다. 궁 안의 집치곤 소담하고 담백하기 그지 없는 건축물이었다. 1960년대 후반, 아버지는 벌써 몇년째 북촌과 서촌 주변 도로를 내며 사라질 운명에 처했던 별궁의 고재들을 하나 둘씩 사모으던 터였다. 그 나무를 갈고 깎고 다듬었다. 그리고 조선시대 마지막 목수이자, 중요무형문화재였던 배희한 대목장(1907~1997)을 모셔왔다.목수는 창덕궁 연경당에 드나들며 여러 번 실측을 해야 했다. 아무리 뛰어난 목수라도, 한옥 한 채를 '제대로' 짓는 일은 고된 날의 연속이었다. 여름엔 나무가 불어서, 겨울엔 나무가 쪼그라들어 공사를 멈춰야했다. 오직 봄과 가을에만 허락된 일이었다.집을 짓는 동안 네 식구는 한옥 옆 단칸방에서 살을 부대끼며 살았다. 그 사이 어느덧 키가 훌쩍 자란 두 아들은 돌은 나르고, 벽돌의 매화 문양들을 새기며 집 짓는 일을 거들었다. 집의 모양이 제법 갖춰졌을 때에도 도무지 집이라고 부를 수는 없었다. 25평짜리 한옥을 하나 짓는데 문짝만 몇 백개가 필요했는데, 그 문틀과 창틀을 원형 그대로 만들 사람이 귀한 탓에 '문 없는 집'으로 몇 해를 지냈다. 목수를 공개 수배한 날에는 성북동 언덕에 전국의 목수들이 각자 만든 한옥 문틀의 샘플을 들고 긴 줄을 늘어서는 진풍경도 벌어졌다.처음 집을 짓기로 한 지 약 8년의 시간이 흐른 1970년대 중반, 집은 완성됐다. 100년이 넘는

    2024.09.30 09:31
  • 서세옥 화백의 두 아들 서도호와 서을호가 말하는 집의 의미

    몸집만 한 붓끝이 화면 위를 지나며 춤추는 사람들이 됐다. 화면 뒤로 보이는 또 다른 군상들. 외로이 서 있던 한 사람이 천천히 화면 밖으로 걸어나가자 수많은 사람이 다시 여백의 공간으로 나타났다. 산정 서세옥 화백(1929~2020)의 작품 7점이 지난 달 ‘프리즈 서울’에서 LG 투명 올레드 TV로 다시 태어난 장면이다.그의 장남이자 세계적인 설치미술가 서도호(62)와 건축가 서을호(60)가 아버지의 작품을 재해석한 '서도호가 그리고 서을호가 짓다'. LG 투명 올레드 TV는 올해 초 라스베이거스 CES에서 선보인 후 국내엔 처음 공개됐다. 무한대에 가까운 명암비가 수묵화를 원작으로 하는 작품과 만나 섬세하게 표현됐다는 평가 속에 나흘 내내 관람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소란한 아트페어 현장과 대비될 정도로 유독 이곳은 고요했다. 사람들은 한참을 머물렀다. 이유 모를 침묵과 함께였다.8대의 투명 올레드 TV위에 ‘즐거운 비’(1976), ‘행인(行人)’(1978), ‘사람들’(1996) 등 7점의 작품이 깊은 블랙부터 옅은 먹색으로 다채롭게 펼쳐졌다. 평면 회화인 원작을 짧은 애니메이션 형태의 미디어아트로 재해석해 살아있는 그림이 됐다. 투명 올레드 TV와 올레드 에보(evo)가 겹쳐 재생되는 영상은 전에 본 적 없던 새로운 입체감을 부여했다. 마치 산정의 점과 획이 눈앞에서 다시 살아나는 것 같았다. 서도호 작가는 “우리가 수천년 간 볼 수 없던 그림의 뒷면을 볼 수 있었다”고 했다. 서을호 건축가는 이번 전시의 공간 연출을 맡았다. 전시장 입구부

    2024.09.30 09:23
  • "이 잡지 더 없나요?"…호평 쏟아진 '영문판 아르떼'

    “이 노란색 잡지 더 구할 수 없나요?”지난 4일부터 닷새간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한국국제아트페어(KIAF) 현장에서 만난 영국인 컬렉터 네이선 클라크슨의 말이다. 홍콩에 거주하며 가족과 3년째 9월 아트페어가 열리는 기간에 맞춰 서울을 찾는다는 그는 “그동안 아트페어와 한국 작가 정보 등 콘텐츠를 영문으로 볼 수 없어 언어장벽을 느꼈는데, 아르떼 매거진이 그 갈증을 해소해줬다”고 덧붙였다.한국경제신문이 6월호를 시작으로 매월 발간하는 아르떼 매거진은 9월 KIAF와 프리즈 아트페어 기간을 맞아 아트 부문을 영문 번역해 ‘스페셜 에디션’으로 발간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화가 이배의 스페셜 커버스토리를 포함해 이 기간 화제의 전시인 서도호 개인전, 레픽 아나돌 개인전, 광주와 부산 비엔날레 등의 정보를 담았다.KIAF의 2층 미디어 라운지와 로비에서 배포한 스페셜 에디션은 VIP 공개 첫날인 4일 대부분 소진됐다. 수잔나 하이먼 영국 화이트큐브 큐레이터는 “아르떼 매거진으로 한국 작가와 전시 정보를 알 수 있어 큰 도움이 됐고, 특히 디자인이 탁월했다”며 “작가, 다른 갤러리들과 정보를 나눌 것”이라고 했다.아르떼 매거진 스페셜 에디션은 4일 문화체육관광부와 LG전자가 공동 주최한 ‘미술인의 밤’ 행사에서도 400부 이상 배포됐다.김보라 기자

    2024.09.08 18:08
  • 투명 TV 위에 춤추는 붓끝…故서세옥 화백, 두 아들 손에서 부활하다

    몸집만 한 붓끝이 화면을 지나며 춤추는 사람들이 됐다. 화면 뒤로 보이는 또 다른 군상들. 외로이 서 있던 한 사람이 천천히 화면 밖으로 걸어나가자 셀 수 없는 많은 사람이 다시 여백의 공간에 나타났다.수묵 추상의 거장 산정 서세옥 화백(1929~2020)의 작품 7점이 지난 4일 개막한 ‘프리즈 서울’에서 LG 투명 올레드 TV로 다시 태어난 장면이다. 그의 장남이자 세계적 설치미술가 서도호(62)와 건축가 서을호(60)가 아버지의 작품을 재해석했다. LG 투명 올레드 TV는 올해 초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에서 선보인 후 국내엔 처음 공개됐다. 무한대에 가까운 명암비가 수묵화를 원작으로 하는 작품이 최첨단 기술을 만나 섬세하게 담겼다는 평가를 받으며 프리즈 서울 기간 내내 관람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8대의 투명 올레드 TV에 ‘즐거운 비’(1976) ‘행인(行人)’(1978) ‘사람들’(1996) 등 7점의 작품이 깊은 블랙부터 옅은 먹색으로 다채롭게 펼쳐졌다. 평면 회화인 원작을 짧은 애니메이션 형태의 미디어아트로 재해석해 살아있는 그림이 됐다. 투명 올레드 TV와 올레드 에보가 겹쳐 재생되는 영상은 전체에 본 적 없던 새로운 입체감을 부여했다. 서도호 작가는 “수천년간 볼 수 없던 그림의 뒷면을 볼 수 있었다”며 “투명 올레드 TV가 구현하는 기술을 본 뒤 천지개벽하는 것 같았다”고 이번 작업의 계기를 설명했다.서을호 건축가는 이번 전시의 공간 연출을 맡았다. 전시장 입구부터 뒤편까지 한눈에 투과해 볼 수 있도록 작품을 겹겹이 배치해 마치 공간 전체를 하나의 작품처럼 구성했다. 전시장을 찾은 관람객은 입구에 있는 반투명 설치 작품부터 그 뒤로 나란

    2024.09.05 18:28
  • 철사조각 하나 하나가 음표…'아이언 맨'이 엮은 철의 교향곡

    “음악은 다음 음표에 관한 것이다.”전설의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의 말이다. ‘철의 조각가’ 존 배 미국 뉴욕 프랫 인스티튜트 명예교수(87)는 자신의 작업을 번스타인의 이 말에 비유한다. 가벼이 흘러가는 구름처럼, 유유히 흐르는 강물처럼, 고목의 흔적처럼 보이는 기하학적 철 조각들은 연약하되 단단하고, 닫힌 듯 열려 있다. 철이 갖는 단단하고 무거운 이미지는 그의 연금술을 거쳐 한없이 부드럽고 날렵한 유기체로 다시 태어난다.지난달 28일 서울 소격동 갤러리현대에서 개막한 존 배 ‘운명의 조우’ 전시에서 만난 그는 “공간에 입체적으로 그린 드로잉과 같다”고 했다. 그의 국내 개인전은 2013년 갤러리현대에서 열린 전시 ‘In Memory’s Lair’ 이후 10여 년 만이다.존 배는 한국보다 미국, 특히 뉴욕에서 더 이름난 작가다. 11세였던 1949년 미국으로 떠나 27세에 세계적 미술 전문대인 뉴욕 프랫 인스티튜트의 최연소 조각과 학과장에 오른 그는 천부적인 실력만으로 미국 예술계의 인정을 받은 1세대 한국 예술가 중 한 명이다. 존 배는 1937년 10월 서울 독립운동가 집안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 배창근은 대한제국 의병단이었다. 남대문 시장 일대에서 조선인을 괴롭히는 일본인 두 명을 죽인 뒤 서대문형무소에서 사형당했다고 한다. 작가는 1949년 부모님과 배를 타고 미국으로 이주했다. 러시아 태생의 엘리트 신여성이었던 한국인 어머니 최순옥은 아버지와 함께 “한국 농촌 계몽운동을 해야 한다”며 3남매를 웨스트버지니아주 지인의 집에 두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의 나이 12세 때였다. 미술에 관심이 많던 존 배는 매주 토요일 동네 무료 그림 수

    2024.09.05 18:26
  • 산정 서세옥 수묵 추상의 뒷면, 서도호와 서을호가 꺼내다

    몸집만한 붓끝이 화면 위를 지나며 춤추는 사람들이 됐다. 화면 뒤로 보이는 또 다른 군상들. 외로이 서있던 한 사람이 천천히 화면 밖으로 걸어나가자 셀 수 없는 많은 사람들이 다시 여백의 공간으로 나타났다.  수묵 추상의  거장 산정 서세옥 화백(1929~2020)의 작품 7점이 지난 4일 개막한 ‘프리즈 서울’에서 LG 투명 올레드 TV로 다시 태어난 장면이다. 이 작품은 그의 장남이자 세계적인 설치미술가 서도호(62)와 건축가 서을호(60)가 아버지의 작품을 재해석했다. LG 투명 올레드 TV는 올해 초 라스베이거스 CES에서 선보인 후 국내엔 처음 공개됐다. 무한대에 가까운 명암비가 수묵화를 원작으로 하는 작품이 최첨단 기술을 만나 섬세하게 담겼다는 평가를 받으며 프리즈 서울 기간 내내 관람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8대의 투명 올레드 TV위에  ‘즐거운 비’(1976), ‘행인(行人’(1978), ‘사람들’(1996) 등 7점의 작품이 깊은 블랙부터 옅은 먹색으로 다채롭게 펼쳐졌다. 평면 회화인 원작을 짧은 애니메이션 형태의 미디어아트로 재해석해 살아있는 그림이 됐다. 투명 올레드 TV와 올레

    2024.09.05 12:59
  • 철사 조각 하나 하나가 나의 음표… 존 배가 잉태한 '철의 교향곡'

    "음악은 다음 음표에 관한 것이다." 전설의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의 말이다. '철의 조각가' 존 배 뉴욕 프랫 인스티튜트 명예교수(87)는 자신의 작업을 번스타인의 이 말에 비유한다. 가벼이 흘러가는 구름처럼, 유유히 흐르는 강물처럼, 고목의 흔적들처럼 보이는 기하학적 철 조각들은 연약하되 단단하고, 닫힌듯 열려 있다. 철이 갖는 단단하고 무거운 이미지는 그의 연금술을 거쳐 한없이 부드럽고 날렵한 유기체로 다시 태어난다.  지난 달 28일 서울 소격동 갤러리현대에서 개막한 존 배 '운명의 조우' 전시에서 만난 그는 "공간에 입체적으로 그린 드로잉과 같다"고 했다. 그의 국내 개인전은 2013년 갤러리현대에서 열린 전시 'In Memory's Lair'이후 10여 년 만이다.  존 배는 한국보다 미국, 특히 뉴욕에서 더 이름난 작가다. 11세였던 1949년 미국으로 떠나 27세에 세계적인 미술 전문대인 뉴욕 프랫 인스티튜트(프랫)의 최연소 조각과 학과장에 오른 그는 천부적인 실력만으로 미국 예술계의 인정을 받은 1세대 한국 예술가 중 한 명이다. 그는 1937년 10월 서울 독립운동가 집안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 배창근은 대한제국 의병단이었다. 남대문 시장 일대에서 조선인을 괴롭히는 일본인 두 명을 죽인 뒤 서대문형무소에서 사형당했다고 한다. 목사였던 아버지 배민수도 독립운동을 했다. 작가는 어렸을 때 일제의 감시를 피해 경기도 일산으로 이사한 뒤 1949년 부모님과 배를 타고 미국으로 이주했다. 러시아 태생의 엘리트 신여성이었던 한국인 어머니 최순옥은 아버지와 함께 "한국 농촌 계몽운동을 해야 한다"며 3남매를 웨스트버지니아주 지인

    2024.09.01 09:12
  • 떠돌이형 돈키호테, 멕시코가 낳은 거장 가브리엘 오로즈코

    가브리엘 오로즈코(62)는 이 시대 가장 논쟁적인 예술가 중 한 명이다. 살아온 궤적이 그랬다. 멕시코 베라크루즈주 할라파에서 예술가 부모님 사이에 태어난 그는 1990년대 초반부터 일찌감치 동시대를 이끄는 개념미술가이자 설치미술가로 명성을 얻었다. "스튜디오에 얽매이면 작품에도 한계가 생긴다"며 뉴욕, 멕시코, 파리 등 어디에서나 작업해온 '포스트 스튜디오 작가' 1세대다. 매체와 양식에 국한되지 않고 즉흥적인 방식으로 만들어낸 작품들은 언제나 논쟁적이고, 유머러스한 동시에 고급스럽게 체제를 비판했다.그는 조각가, 사진가, 설치예술가, 화가 등 하나로 규정할 수가 없다. 이는 작가 스스로 바라는 바이기도 하다. 새로운 변화를 평생 즐겨운 작가에게 영감을 주는 단 하나의 '무엇'을 찾으라면 그것은 자연. 자연을 구성하는 기하학적 형상을 수십 년간 관찰하고 토착 소재들로 작품을 해온 그의 식물회화 연작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다. 9월 4일부터 12월 14일까지 서울 청담동 화이트큐브 서울관 개관 1주년 기념전 '가브리엘 오로즈코'에서다. 20대부터 세계를 누빈 '멕시칸 스타'  그의 이력은 화려하다. 1995년 광주비엔날레, 1996년 뉴욕휘트니비엔날레, 1997년 카셀도큐멘타, 2000년대 베네치아비엔날레 등 국제 무대에 빠짐없이 등장했다. 그를 가장 유명하게 한 전시는 1993년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서의 개인전이다. 미술관 정원에 누구나 누울 수 있는 그물의자를 설치한 뒤 그 주변 건물의 건물주들에게 전시 기간 동안 창가에 오렌지를 놓아두도록 부탁했다. 그물에 누워 시선을 돌리면 어디서나 오렌지가 눈에 들어오는 'Home Run'(1993)

    2024.08.30 08:18
  • 구불구불 ‘스퀴글’로 우주를 직조하는 조쉬 스펄링

     꼬불꼬불 어린아이의 낙서 같은 선, 어울릴 것 같지 않는 도형들의 조화로운 중첩, 벽에서 소용돌이치며 튀어나올 것 같은 신비로운 색깔들. 뉴욕에서 활동하며 세계 미술계에서 주목받는 조쉬 스펄링의 대표 작품들이다. 회화와 조각의 경계를 넘나드는 그의 작품은 구불거리는 선인 ‘스퀴글Squiggle’로 먼저 유명해졌다. 1960년대 미니멀리즘, 그리고 디자인의 기능 우선주의를 비판하며 유쾌하고 과감하게 디자인한 ‘멤피스 운동’의 영향을 받은 스펄링에겐 세 가지 철학이 있다.  ‘단순하고Simple, 아름다우며Beautiful, 재미있을 것Fun’. 스펄링은 뉴욕의 현대미술가 카우스KAWS의 스튜디오에서 어시스턴트로 일한 뒤 본격적으로 자신의 스튜디오를 열었다. 1200개가 넘는 독점적인 페인트 블렌드를 개발했고, 작업 방식도 자신만의 방식을 개발했다. 그를 한마디로 정의하자만 ‘회화에 집중하면서 전통적인 회화의 방식은 온통 거부하는 실험주의 화가’다. 그는 물감과 캔버스, 도상까지 모두 직접 제작한다. 캔버스는 사각의 형태를 벗어나 원과 삼각형, 곡선 등 비정형으로 변형되고 그에 맞는 색들은 저마다 오묘하고 신비롭다. 우주 어딘가에서 다른 행성들을 바라본다면 그런 느낌일까. 휘갈겨 그린 듯 뒤엉킨 도상들은 나름의 규칙을 갖는다. 스펄링의 작품을 만나면 아름다운 색에 먼저 매혹되고, 그 기하학적인 모양에 또 한번 빠져든다. 오는 9월 3일부터 2025년 1월 19일까지 인천 파라다이스시티 아트스페이스에서 첫 대규모 개인전 ‘원더Wonder’를 여는 조쉬 스펄링와 인터뷰했다. ▷회화와 조각 사이를 넘나들고, 이제 가구도 선보인다. 다양한 재료

    2024.08.29 08:52
  • 12년을 건너 텍사스 큐레이터가 서울에 왔다, 오직 양혜규를 알기 위해

    양혜규는 어려운 작가다. 현대미술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창작자 중 한 명이자, 현대미술사를 다시 쓰고 있는 아티스트. 그런 그를 몇 가지 단어나 문장으로 축약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일단 작품이 방대하다. 1971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 조소과를 졸업한 후 혈혈단신 독일로 떠난 그는 어디에도 오래 머물지 않은 채, 지금까지 약 1500점의 작품을 해왔다. 숫자만이 아니다. 작품의 주제도 그렇다. 이방인의 정체성에 관한 이야기, 공동체에 대한 담론, 토속 신앙과 현대 문명의 융합, 남성과 여성, 고대와 모던까지 존재하는 모든 현상과 주체에 대해 '양혜규식 열린 태도'로 충돌시키고 중첩시킨다. 얼핏 보면 결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것들이 양혜규의 개념 안에선 어떻게든 만나고, 소통한다.   일상의 친숙한 오브제들 (방울, 수도꼭지와 환풍구 등)은 소리와 움직임을 가진 예술 작품으로 변형되고, 무언가를 가리는 동시에 열려있는 '블라인드'는 마치 생명을 가진 존재처럼 2000년대부터 지금까지 다양한 은유를 가진 재료로 변주돼 왔다. 재료도 공간도 한계가 없어 보이는 그의 작업들은 테이트 세인트 아이브스(2020), 뉴욕현대미술관(2019), 런던 테이트모던(2018), 쾰른 루트비히 미술관(2018), 파리 퐁피두센터(2016), 베이징 울렌스 현대미술센터(2015), 베네치아 비엔날레 한국관(2009) 등 세계 주요 도시에서 열리는 동시대 미술의 가장 뜨거운 현장을 여행하며 하나의 독보적인 장르가 됐다.   그의 작품을 통틀어 변하지 않는 키워드를 하나 꼽으라면 '시차'와 '거리'다. 30년을 스스로 선택한 노마드적 삶을 살며 이쪽도 저쪽도 아닌 이방인으로

    2024.08.29 08:30
  • YOU LOVE 클래식?…유럽으로 떠나볼까

    라인강과 보덴호가 만나는 오스트리아 브레겐츠. 드넓은 호수엔 1946년부터 매년 여름에 화려한 수상 무대가 펼쳐진다. 7월 17일부터 한 달간 계속된 ‘브레겐츠 페스티벌’은 오페라 마니아들에겐 꿈의 무대다. 5000여 석의 좌석에 300개의 스피커로 둘러싸인 올해의 무대는 눈 덮인 겨울 언덕. 강철과 수백 개의 목재로 한겨울 풍경을 호수 위에 그려냈다. 이 무대는 독일 영화감독 필립 스톨츨이 예술감독을 맡아 클래식 오페라의 새로운 차원을 선보였다. 2021년 ‘리골레토’에 이어 올해는 ‘마탄의 사수(Der Freischtz)’를 기획했는데, 연인 아가테를 얻기 위해 어둠의 세력과 계약을 맺은 맥스의 이야기가 강렬한 무대와 함께 펼쳐졌다. 칼-마리아 폰 베버의 오페라 연주는 빈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맡았다. 이외에도 80여 개 행사가 한 달간 열리면서 올해 브레겐츠 페스티벌을 찾은 관람객은 약 27만 명, 역대 최고 기록에 가까웠다.나무가 한없이 울창해지는 한여름, 유럽의 클래식과 오페라 축제는 살면서 꼭 한 번쯤 가봐야 할 여행지로 꼽힌다. 전통적인 오페라와 클래식 무대의 한계를 뛰어넘어 잊을 수 없는 경험을 선물하기 때문이다. 2000년의 세월을 간직한 로마 원형극장에서도, 호수 위 비현실적인 수상 무대에서도, 잘츠부르크 골목길에서도 온통 꿈만 같은 선율이 흘러나온다.모차르트가 태어난 도시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은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여름 클래식 음악 페스티벌이다. 해발 400m의 고지대가 선사하는 청명하고 시원한 공기가 음악과 변주하는 이곳에선 7월과 8월 사이 200여 회의 공연이 도시 전체에서 열린다. 크고 작은 공연장이 있지만 대주교의 여름 승마학교로 쓰

    2024.08.22 18:41
  • "이들을 좋아한다면 당신은 창조적일 것이다, 아니면 미쳤거나"

    에이리언을 탄생시킨 것은 리들리 스콧이다. 크리처의 이미지를 만든 것은 스위스 초현실주의 화가 HR 기거(1940~2014)다. 말이 초현실주의 화가지 한마디로 광인이다. 포르노그래피적 상상으로 가득 차 있다. 미국 뉴욕의 로버트 메이플소프를 연상하게 하지만, 그보다 더욱 기괴(geek)하다. 정상이 아니다. 그런데 예술적이다. 비평가 프랑크 리날리는 기거 작품을 원형으로 한 다양한 변형 모방 작품을 싸잡아 ‘기거레스크(Gigeresque)하다’고 했다.미친 예술가는 작품을 즐기는 것으로 그쳐야 한다. 일상을 공유하면 안 된다. 삶이 망가질 수 있다. 이런 화가나, 이런 화가를 쓰는 감독이나 만약 영화를 안 했다면 미쳤을 수도 있다. 그만큼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에서 나온 상상력이 에이리언이라는 이미지였다. 얼마나 강한 캐릭터였으면 괴수임에도 불구하고 지난 50년 가까이 대중은 스스럼없이 그 이미지를 소비하며 살았다. 한 시대를 풍미했으며 철저하게 당대 최고의 문화적 아이콘으로 등극했다. 한편으로는 ‘스타워즈’의 제다이가 있었다면 또 한편으로는 식인 상어 ‘죠스’가 있었으며 저쪽 또 한 구석에서는 ‘매트릭스’의 네오가 하늘을 붕붕 날아다니고 있었다. 그 모든 상상력을 아우르는 것이 이 에이리언이었던 셈이다.살바도르 달리도 인정한 ‘꿈의 화가’기거는 스위스 동부의 오래된 도시 쿠어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친구들이 장난감 자동차를 가지고 놀 때 그는 트럭에 해골을 싣고 다녔다. 약사였던 아버지의 소장품이었다. 그는 여덟 살 때 박물관에서 이집트 미라와 석관을 보고 “내 생애 가장 강렬한 경험 중 하나였다”고 했다. 스스로

    2024.08.22 18:25
  • 에이리언의 아버지, 그로테스크의 제왕 H.R 기거를 기억하라

    에이리언을 탄생시킨 것은 리들리 스콧이다. 크리쳐의 이미지를 만든 것은 스위스의 초현실주의 화가 H.R.기거(1940~2014·한스 루돌프 루어디 기거)이다. 말이 초현실주의 화가이지 한 마디로 광인이다. 포르노그래피 적 상상으로 가득 차 있다. 마치 미국 뉴욕의 로버트 메이플쏘프를 연상시키지만, 그보다 더욱 기괴(geek)하다. 정상이 아니다. 그런데 예술적이다. 비평가 프랑크 리날리는 기거 작품을 원형으로 한 다양한 변형 모방 작품들을 싸잡아 ‘기거레스크(Gigeresque)하다’고도 했다.  미친 예술가는 작품을 즐기는 것으로 그쳐야 한다. 일상을 공유하면 안 된다. 삶이 망가질 수 있다. 이런 화가나 이런 화가를 쓰는 감독이나 만약 영화를 안 했다면 미쳤을 수도 있다. 그만큼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에서 나온 상상력이 에이리언이라는 이미지였다. 얼마나 강한 캐릭터였으면 괴수임에도 불구하고 지난 50년 가까이 대중들은 스스럼없이 그 이미지를 소비하며 살았다. 한 시대를 풍미했으며 철저하게 당대 최고의 문화적 아이콘으로 등극했다. 한편으로는 ‘스타워즈’의 제다이가 있었다면 또 한편으로는 식인 상어 ‘죠스’가 있었으며 저쪽 또 한 

    2024.08.21 09:45
  • "집을 옥상 끝에 걸고, 쳐박는다?" 서도호의 상상은 이들과 함께 현실이 됐다

    서도호 작가(62)는 '집의 예술가'다. 서울, 뉴욕, 베를린, 런던 등 세계 곳곳에 집을 짓는다. 아니, 짓는다는 표현은 틀렸다. 집을 걸고, 집을 떨어뜨리고, 집을 다른 집들 사이에 끼워 넣는다. 혹은 뒤집는다. 설치미술가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한 그의 '집 연작'은 모두 그가 한때 살았던 집이다. 어린 시절 살았던 한옥, 유학 시절 로드아일랜드의 집, 베를린의 스튜디오와 집 등이다.  그의 작품은 사진 한 장으로 봐도 놀랍지만, 실제로 보면 더 믿기지 않는다. 나무 한옥의 디테일을 완벽하게 구현하는가 하면, 흐늘흐늘한 천으로 건물을 웅장하게 세우고, 곧 추락할 것 같은 집안을 걸어들어갈 수 있게 설계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결과보다 과정을 궁금해한다. "도대체 이걸 어떻게 한 것이냐"는 질문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그런 서도호의 작업 과정을 영상으로 볼 수 있는 기회가 아트선재센터 '스페큘레이션' 전시 기간 동안 함께 열린다. 토요일 오후 4시, 9회차에 걸쳐 '연결하는 집, 런던',  '별똥별', '서도호의 움직이는 집들' 등이 교차 상영된다. 서 작가는 약 20년 전부터 자신의 작업 과정을 영상으로 기록해왔다. 연출가를 섭외해 본격적인 다큐 형식의 영상물로 제작하게 된 건 2016년부터 CJ문화재단이 이를 후원하면서다. 지금까지 총 네 편의 다큐멘터리가 제작됐다.  첫 상영회는 지난 17일에 '연결하는 집, 런던'으로 열렸다. '영국 도시조각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런던에서 공개한 첫 대형 야외 설치 작품의 제작 과정을 다루는 이 다큐는 프랑스 출신의 사진작가 겸 시각예술가 고티에 드블롱드가 연출했다.

    2024.08.18 10:20
  • '수묵 추상의 거인' 서세옥…장남이 그리고 차남이 짓다

    점 하나가 무리 지어 춤을 추고, 선 하나는 빗물이 됐다. 산정(山丁) 서세옥 화백(1929~2020)이 창시한 한국 수묵 추상의 단면이다. 서예와 시에 대한 산정의 깊은 조예는 70여 년에 걸쳐 3290여 점의 작품으로 남았다. 점과 선으로 우주의 근원을 탐색하던 산정은 1970년대 후반 ‘사람’으로 귀결됐다. 태초의 인간이라는 주제를 단순한 점과 선으로 다채롭고 역동적으로 담아냈다. 그의 기념비적 ‘인간 연작’은 인간의 내면을 표현해 시대를 초월하는 영원미와 절대미로 남았다.산정이 온몸으로 그려낸 수묵 추상이 두 아들의 손에서 다시 태어난다. 오는 9월 4일부터 7일까지 열리는 ‘프리즈서울 2024’의 LG OLED 라운지에서다. 그의 장남이자 세계적인 설치미술가 서도호(62), 그리고 동생인 서을호 건축가는 아버지의 작품을 재해석한다. LG전자가 올해 초 발표한 투명 OLED TV인 ‘LG OLED T’를 최초로 활용한 디지털 콘텐츠와 설치 작품을 함께 선보인다.서세옥 화백의 원작이 함께 펼치는 이번 전시는 LG OLED로 구성된 대형 미디어 월을 통해 서 화백의 육성과 작업 모습을 담은 다큐멘터리도 같이한다. 서을호 건축가는 이 모든 작품을 아우르는 전시 공간을 연출했다.두 아들은 아버지가 한 획 한 획 기운을 쏟아 작품에 생명을 불어넣는 과정을 보며 자란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렸다. 디지털 영상 시리즈는 아버지가 인간의 형상을 제작해 가던 과정을 각각의 짧은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었다. 서세옥 화백이 가장 강조한 개념은 동양화론에서 기본이 되는 ‘기운생동’. 서도호 작가는 아버지의 작업 과정은 일종의 행위예술과 같은 움직임의 연속이었다고 기억한다. 그림은 그 움직

    2024.08.15 17:50
  • 수묵 추상의 거인 서세옥을, 서도호가 그리고 서을호가 짓다

    점 하나가 무리지어 춤을 추고, 선 하나는 빗물이 됐다. 산정(山丁) 서세옥 화백(1929-2020)이 창시한 한국 수묵 추상의 단면이다. 서예와 시에 대한 산정의 깊은 조예는 70여 년에 걸쳐 3290여 점의 작품으로 남았다. 점과 선으로 우주의 근원을 탐색하던 산정은 1970년대 후반 '사람'으로 귀결됐다. 태초의 인간이라는 주제를 단순한 점과 선으로 다채롭고 역동적으로 담아냈다. 그의 기념비적 '인간 연작'은 인간의 내면을 표현해 시대를 초월하는 영원미와 절대미로 남았다. 산정이 온몸으로 그려낸 수묵 추상이 두 아들의 손에서 다시 태어난다. 오는 9월 4일부터 7일까지 열리는 '프리즈서울 2024'의 LG OLED 라운지에서다. 그의 장남이자 세계적인 설치미술가 서도호(62), 그리고 동생인 서을호 건축가는 아버지의 작품을 재해석한다. LG전자가 올해 초 발표한 투명 OLED TV인 'LG OLED T'를 최초로 활용한 디지털 콘텐츠와 설치 작품을 함께 선보인다.  서세옥 화백의 원작이 함께 펼치는 이번 전시는 LG OLED로 구성된 대형 미디어 월을 통해 서세옥 화백의 육성과 작업 모습을 담은 다큐멘터리도 함께 한다. 서을호 건축가는 이 모든 작품을 아우르는 전시 공간을 연출했다.  두 아들은 아버지가 한 획 한 획 기운을 쏟아 작품에 생명을 불어넣는 과정을 보며 자랐던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렸다. 디지털 영상 시리즈는 아버지가 인간의 형상을 만들어가던 과정을 각각의 짧은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었다. 서세옥 화백이 가장 강조했던 개념은 동양화론에서 기본이 되는 '기운생동'. 서도호 작가는 아버지의 작업 과정을 일종의 행위예술과 같은 움직임의 연속이었다고 기억한

    2024.08.13 18:00
  • 이미래 "더 야성적이고 더 투박한 것을 만들고 싶어요"

    영국을 대표하는 현대미술관 테이트 모던. 산업혁명 시대 발전소로 ‘런던의 굴뚝’ 역할을 하던 이곳은 2000년 개관 직후 21세기 최고의 현대미술 전시장이 됐다. 문을 열자마자 테이트 모던이 단숨에 세계적 명소가 된 이유가 있다. 미술관 입구이자, 로비이자, 전시장인 ‘터빈 홀’ 때문이다.템스강변 뱅크사이드에서 육중한 문을 열고 들어서면 3300㎡, 높이 35m에 달하는 터빈 홀이 사람들을 압도한다. 공간의 위엄뿐만 아니다. 이곳에서 전시회를 개최한 작가들의 면면도 위압감을 준다.개막 당시 초대형 거미 조각 ‘마망’으로 유명한 루이즈 부르주아의 ‘아이 두, 아이 언두, 아이 리두(I Do, I Undo, I Redo)’ 전시를 시작으로 거대한 인공 태양을 설치한 올라푸르 엘리아손, 1억 개의 해바라기 씨앗 쌓기를 시도한 아이웨이웨이, 아니시 카푸어, 티노 세갈, 슈퍼플렉스, 아니카 이 등 22명이 거쳐 갔다. 1년에 단 한 명, 미술사에 거대한 족적을 남기고 있는 현대 예술가에게만 주어지는 ‘꿈의 무대’인 셈이다.올가을 터빈 홀을 장식하는 건 이미래 작가(사진)다. 한국인으로 최초, 터빈 홀 전시 역사상 최연소다. 섬세함과 기괴함이 교차하고, 욕망과 공포가 중첩되는 그의 작품들은 프랑스 퐁피두센터, 미국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리움미술관 등이 소장하고 있다. 서울대 조소과를 나와 네덜란드와 한국, 독일 베를린을 오가며 작업해온 이 작가를 지난달 스위스 바젤에서 만났다.이 작가의 작품은 예쁘지 않다. 아니다. 기괴하고 너덜거리고, 몹시 섬뜩하다는 표현이 더 맞겠다. 인간의 내장을 꺼내 확대한 것 같은 이미지, 동물의 가죽을 벗겨 뒤집어 말

    2024.07.29 18:17
  • 1000평 테이트모던 터바인홀 최초로 접수한 한국인, 36세 이미래

    ‘터바인홀’은 현대미술가들 사이에 ‘꿈의 무대’로 불린다. 매년 단 한 명의 작가에게 약 1000평에 달하는 공간이 단독으로 주어진다. 올해 한국인 최초이자 역대 최연소로 선정된 작가가 있다. 불편한 것들과 공포스러운 것들을 거대한 스케일로 전시장에 옮겨오는 이미래(36)다.  영국을 대표하는 현대미술관 테이트 모던. 산업 혁명 시대 발전소로서 '런던의 굴뚝' 역할을 하던 이곳은 2000년 개관 직후 21세기 최고의 현대미술 전시장이 됐다. 문을 열자마자 테이트 모던이 단숨에 세계적인 명소가 된 이유가 있다. 미술관의 입구이자, 로비이자, 전시장인 ‘터바인홀(Turbine Hall)’이다.  템즈 강변 뱅크사이드에서 육중한 문을 열고 들어서면 3300㎡ (약 998평), 높이 35m에 달하는 터바인홀이 사람들을 압도한다. 개막 당시 초대형 거미 조각 '마망'으로 유명한 루이스 부르주아의 'I Do, I Undo, I Redo' 전시를 시작으로 거대한 인공 태양을 설치한 올라퍼 엘리아슨, 1억개의 해바라기 씨앗 쌓기를 시도한 아이웨이웨이, 아니쉬 카푸어 티노 세갈, 수퍼플렉스, 아니카 이 등 22명이 거쳐갔다. 1년에&n

    2024.07.26 17:03
  • 형광등 빛으로 미술사 바꾸다

    1938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만국박람회. 태양처럼 빛나는 2500개의 불빛이 떠올랐다. 사람들의 눈은 휘둥그레졌다. 그 빛나던 태양들은 형광등. 인류가 어둠 속에서도 반짝거리는 ‘형광체’를 발견한 게 1674년이었으니 형광등이 대량 생산된 건 무려 260년이 지난 뒤의 일이다. 제너럴일렉트릭(GE)이 주도한 형광등 대중화는 세계인의 삶을 바꿨다. 캄캄한 밤에도, 어스름한 새벽에도 대낮처럼 일할 수 있게 됐다. 어쩌면 형광등 발명은 산업혁명의 결정적 순간 중 하나다.무한히 빛날 것만 같았던 형광등도 시간이 지나며 별것 아닌 존재가 됐다. 공장과 사무실은 물론 집집이 새하얀 불빛이 원하는 때 언제든 흘러나오게 됐기 때문이다. 하찮은 존재가 돼버린 형광등에 다시 한번 영광의 순간을 선사한 이가 있다. 강렬한 색이 주도하던 1960년대 미술계를 빛으로 전복시킨 미니멀 아트의 선구자 댄 플래빈(1933~1996)이다.그의 대규모 회고전을 스위스 바젤에 있는 쿤스트뮤지엄 바젤 노바우에서 최근 만났다. 아트바젤이 열리는 6월 ‘꼭 봐야 할 전시 0번’으로 꼽힌 ‘댄 플래빈: 빛에 대한 헌신’에서다. 총 277점의 작품이 미술관 곳곳에 설치됐다.미국 작가 플래빈은 1960년대 후반 대량 생산된 형광등을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들였다. 형광빛의 네온사인이 도시 곳곳을 야비하고 저속한 인공의 공간으로 만들던 때 그는 형광등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색만 추출해 3차원으로 옮겨왔다. 텅 비어있는 공간을 비추는 화사한 색들. 백색의 벽을 황금빛 형광등 하나가 사선으로 가르고 수직의 붉은 빛이 공간 모서리를 빛낸다.이른바 ‘캔디 컬러’는 즉각적이고 직관적인 아름

    2024.06.27 17:57
  • 형광등으로 미술사를 뒤집은 뉴요커, 댄 플래빈 '빛에 대한 헌사'

    1938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만국박람회. 태양처럼 빛나는 2500개의 불빛이 떠올랐다. 사람들의 눈은 휘둥그레졌다. 그 빛나던 태양들은 형광등. 인류가 어둠 속에서도 반짝거리는 '형광체'를 발견한 게 1674년이었으니, 형광등이 대량생산 된 건 무려 260여 년이 지난 뒤의 일이다. 제너럴일렉트릭(GE)이 주도한 형광등의 대중화는 세계인의 삶을 바꿨다. 캄캄한 밤에도, 어스름한 새벽에도 대낮처럼 일할 수 있게 됐다. 어쩌면 형광등의 발명은 산업혁명의 결정적 순간 중 하나다. 무한히 빛날 것만 같았던 형광등도, 시간이 지나며 별것 아닌 존재가 됐다. 공장과 사무실은 물론 집집마다 새하얀 불빛이 원하는 때 언제든 흘러나올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하찮은 존재가 돼버린 형광등에 다시 한번 영광의 순간을 선사한 이가 있다. 강렬한 색이 주도하던 1960년대 미술계를 빛으로 전복시킨 미니멀 아트의 선구자, 댄 플래빈(1933-1996)이다. 그의 대규모 회고전을 스위스 바젤의 쿤스트뮤지엄 바젤 노바우(Neubau)에서 최근 만났다. 아트바젤이 열리는 6월 '꼭 봐야할 전시 0번'으로 꼽힌 '댄 플래빈: 빛에 대한 헌신( Dedications in Lights)'에서다. 총 277점의 작품이 미술관 곳곳에 설치됐다.  미국 작가 플래빈은 1960년대 후반 대량생산된 형광등을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들였다. 형광빛의 네온사인이 도시 곳곳을 야비하고 저속한 인공의 공간으로 만들고 있던 때, 그는 형광등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색만을 추출해 3차원으로 옮겨왔다. 텅 비어있는 공간을 비추는 화사한 색들. 백색의 벽을 황금빛 형광등 하나가 사선으로 가르고, 수직의 붉은 빛을 공간의 모서리를 빛낸다.&n

    2024.06.27 08:45
  • 공부하는 컬렉터의 보물창고…'아트바젤의 꽃' 언리미티드 대해부[여기는 바젤]

    1970년부터 매년 6월이면 전 세계 최고 컬렉터와 갤러리스트, 큐레이터들이 스위스 바젤로 모인다. 평범했던 한 그림 상인, 에른스트 바이엘러가 만든 아트페어 '아트바젤'은 세계 미술 시장의 판도를 바꿔놓았다. 세상엔 셀 수 없이 많은 아트페어가 있지만, 아트바젤은 단순히 미술품을 사고 파는 시장이 아니다. 1973년엔 특정 국가를 지정해 특별전을 열기 시작했다. 첫해엔 '잭슨 폴록 이후의 미국 미술', 1989년엔 '사진 발명 150주년 기념 특별전' 등을 열며 비엔날레급 기획력을 인정 받았다.  2000년부터 시작된 '언리미티드'는 아트바젤을 찾는 사람들에게 '작은 비엔날레'로 여겨진다. 회화는 물론 미디어아트, 설치, 퍼포먼스 등 현대 실험 미술을 집중 소개하며 동시대 예술의 현주소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다소 답답하게 느껴질 수 있는 수백 개의 갤러리 판매 부스를 벗어나 17만2000㎡(약 5만 평) 거대한 전시장에서 다채로운 스케일의 작품들을 자유롭게 탐구할 수 있는 것도 언리미티드의 매력. 아트바젤에 참여하는 갤러리에게 지원 자격이 주어지는데, 올해 40개국 276개 참여 갤러리 중 단 76개의 작품과 퍼포먼스가 까다로운 심사를 거쳐 선정됐다. 미술사에 남은 작고 작가의 역사적 순간들과 최첨단 기술을 활용한 젊은 예술가가 총출동했다. 올해 주제는 '예술의 인간성, 그리고 예술의 중심인 인간에 관한 이야기'였다. 올해로 네 번째 큐레이터가 된 지오반니 카르민 쿤스타할레 장크트갈렌 디렉터는 "공간에 압도당하지 말고, 천천히 주의깊게 하나씩 감상하라"고 말했다. 전시장 곳곳엔 'Unlimited People's Pick' 이라팻말과 함께 QR코드가

    2024.06.26 17:00
  • 부재의 건축, 담담한 초상…현대사진의 거장 칸디다 회퍼

    "영원성을 간직하고 있는 어떤 것을 보여주고 싶다." 칸디다 회퍼는 50여 년간 공간의 초상을 사진으로 담아왔다. 인간이 부재하는 건축물의 맨 얼굴을, 적막하고 고요하게 홀로 마주하며. 공간에도 표정이 있다. 누군가 존재해야만 그 가치가 완성되는 게 건축의 목적이라 우리가 몰랐을 뿐이다. 그 공간에서 '사람'을 배제한 채 맨 얼굴을 담아온 독일 현대 사진의 거장. 쾰른에 살고 있는 칸디다 회퍼(80)다. 그는 한평생 도서관과 교회, 콘서트홀과 미술관 등을 성실하게 담아내며 '공간의 초상을 그리는 사진가'로도 불린다. 회퍼의 프레임 안에선 일상적인 공간 속 모든 것이 공평한 가치를 지닌다. 바닥의 균열, 계단의 끝점, 벽지의 작은 무늬, 샹들리에의 작은 부속품과 전선까지 또렷하고 분명하다. 누군가 한번쯤 가봤을 공공 문화시설 내부와 외관의 작은 요소들은 그의 손에서 조연이 아닌 주연으로 다시 태어난다. 이 모든 것의 완결을 위해 사진가가 준비하는 시간은 건축가가 처음 공간을 설계할 때 가졌던 섬세한 마음가짐과도 닮았다.  그의 사진은 정직하다. 회퍼는 '사진을 위해' 공간이 과대 평가되거나 왜곡되지 않도록 인위적인 조명을 쓰지 않는다. 건축가가 설계한 자연광, 실내의 조명 그대로를 받아들인다. 압도적인 스케일의 콘서트홀이나 대형 경기장을 찍을 땐 모형 사진을 작업실에 두고 한참을 연구한다거나, 카메라를 정확히 원하는 위치에 두고 후보정을 가급적 하지 않는 식이다. 그런데도 그의 작업을 보면 마치 시간이 멈춘 우주의 공간처럼 느껴진다. 사람이 사라진 뒤 남은 흔적과 빛, 미묘한 공기의 감각까지 전달되는 작품들.

    2024.06.26 17:00
  • This is BLACK JOY, 흑인 회화의 100년사를 만나다 [여기는 바젤]

    유럽 최초의 공공미술관은 어디에 있을까. 프랑스도 독일도, 영국도 아니다. 스위스 바젤에 있다. 라인강이 흐르는 도심에 세 곳의 전시장을 갖춘 쿤스트뮤지엄 바젤. 1662년 바젤시가 아머바흐 가문의 소장 미술품 5000여점을 구입하며 설립된 이 미술관은 현재 30만 점 이상의 방대한 소장품 목록을 자랑한다. 15~16세기 작품부터 가장 논쟁적인 동시대 작품까지 소장의 기준엔 그야말로 경계도 없고, 한계도 없다. 쿤스트뮤지엄의 DNA는 수백 년간 바젤 도시 곳곳에 이식됐다. 인구 20만 명의 작은 도시에 미술관만 35개. 쿤스트뮤지엄을 포함해 바이엘러, 샤울라거, 쿤스트할레 바젤 등이 몰려 있다. 예술의 힘을 믿었던 20대의 청년 에른스트 바이엘러(1921~2010)와 그의 아내 힐디가 반 세기 전 세계 미술계의 생태계를 바꾼 '아트 바젤'까지 탄생시켰으니 바젤은 미술 영역에서 전통과 현대, 공익성과 상업성 사이 완벽한 균형을 갖추고 있는 대체불가의 도시다. 6월마다 열리는 '아트바젤 바젤'이 세계 최고의 명성을 지키고 있는 중심엔 수준 높은 미술관들이 있다. 자칫 그림만 사고파는 장터로 여겨질 수 있는 아트페어 기간, 바젤의 미술관들은 사람들에게 지적인 자극과 생각할 주제를 쉴새 없이 던지는 수준급 전시를 함께 개막한다. 그 중 가장 화제를 모은 전시는 쿤스트뮤지엄 바젤 게겐바르트에서 5월 25일 개막해 10월 27일까지 이어지는 '우리가 우리를 바라볼 때(When We See Us·WWSU)'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의 현대미술관 MOCAA자이츠의 큐레이터들과 쿤스트뮤지엄 바젤이 협업해 흑인 구상회화의 100년사를 만화경처럼 펼쳐 보인다.  흑인, 여성, 성소수자 등 미술

    2024.06.26 17:00
  • 살고 싶어 한지 불태운 30년…산이 되고 바다가 됐다

    살랑살랑 일렁이는 물결, 사이좋게 운율을 맞추는 첩첩의 산봉우리들. 그 앞에서 사람들은 조용히 울었다. 왜인지 도무지 이유도 모른 채. 지난 11일부터 엿새간 스위스 바젤에서 열린 52번째 아트바젤의 ‘언리미티드’ 섹션. 그중 한 공간을 차지한 김민정 작가(사진)의 ‘Traces’ 연작 이야기다. 심사가 까다롭기로 유명한 아트바젤의 대규모 기획 전시에 한국 작가로는 유일하게 70점의 작품 안에 선정됐다.불에 태운 한지가 겹겹이 쌓여 먼바다의 물결처럼 보이는 ‘Traces-Timeless(영원)’ 두 점이 마주 보고 있는 사이, 가로 8m 길이의 ‘Traces-Mountain(산)’이 끝없이 아득하게 펼쳐진다. 산은 먹으로 농도를 조절하며 풍경을 그려냈고, 영원은 촛불로 한지를 그슬어 배열하는 방식으로 완성했다.13일 아트바젤 언리미티드 전시회 현장에서 김 작가를 만났다. 광주에서 태어나 홍익대에서 동양화를 배우고, 1991년 이탈리아 밀라노 브레라 국립미술원으로 떠난 그는 30여 년간 서예와 수묵화, 동양철학을 탐구했다. 지금은 주로 남프랑스 생폴드방스에 머물며 미국을 오간다. 타국살이 30년이 넘었지만 그의 한국어에는 구수한 남도 방언이 그대로 남아 있다.“살려고 한 거예요. 살려고. 20대 때 힘든 일을 많이 겪으며 몇 번 죽으려고 했거든. 숨 붙어 있는 게 고통이었어요. 이후의 모든 시간이 나를 찾는 과정이었고, 내 몸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에서 감당할 수 있는 재료로만 작품을 해야 했어요.”동양화를 전공한 그에게 한지는 가장 연약하면서도 가장 강한 재료다. 2000년 무렵부터 종이를 가늘게 잘라 숨을 조절해가며 촛불로 가장자리를 태운 뒤 섬세하게 배열하는 작업을 주로

    2024.06.25 18:22
  • 살고 싶어 한지 불태운 30년 "산을 그리니 물이 되고 물을 그리니 산이 되더라" [여기는 바젤]

    ※이 기사는 6월27일 발간되는 아르떼 매거진 7월호에 게재될 예정입니다.살랑살랑 일렁이는 물결, 사이좋게 운율을 만드는 첩첩의 산봉우리들. 그 앞에서 사람들은 조용히 울었다. 왜인지 도무지 이유도 모른 채.  지난 11일부터 6일간 스위스 바젤에서 열린 52번째 아트바젤의 언리미티드 섹션. 그 중 한 공간을 차지한 김민정 작가(62)의 Traces 연작 이야기다. 심사가 까다롭기로 유명한 아트바젤의 대규모 기획 전시에, 한국 작가로는 유일하게 70점의 작품 안에 선정됐다.  불에 태운 한지가 겹겹이 쌓여 먼 바다의 물결처럼 보이는 'Traces-Timeless(영원)' 두 점이 마주보고 있는 사이, 가로 8m 길이의 'Traces-Mountain(산)'이 끝도 없이 아득하게 펼쳐진다. 산의 풍경은 먹으로 농도를 조절하며 그려냈고, 영원은 그의 상징적인 작업-촛불로 한지를 그을려 배열하는 방식-으로 완성했다. 어디가 시작이고 어디가 끝인지 모를 그의 그림은 티끌같은 인간의 삶을 넘어 억겁의 시간을 맴도는, 자연에 관한 성찰이 담긴다. 13일 스위스 바젤에서 열린 아트바젤 언리미티드 전시장에서 김민정 작가를 만났다. 전남 광주에서 태어나 홍익대에서 동양화를 배우고, 1991년 밀라노 브레라 국립미술원으로 떠난 그는 30여 년간 서예와 수묵화, 동양 철학을 탐구하며 현대 추상화의 어휘를 넓혀온 인물이다. 지금도 주로 남프랑스 생폴드방스에 주로 머물며 미국을 오가는 그는 종이, 먹, 불이라는 기본적인 재료로 제한적인 공간에서 홀로 절제된 작업을 한다. 타국살이 30년이 넘었지만, 한국어로 말할 땐 여전히 구수한 남도 방언이 그대로 남아있다. "살려고 한 거에요. 살으려고. 20대 때

    2024.06.24 14:29
  • 세탁기 돌리고, 고구마 굽고, 잠을 잔다…이곳은 '살아 숨쉬는 미술관'

    이곳엔 샘 켈러(57)라는 천재 기획자가 관장으로 있다. 켈러는 예술을 배운 적도 없고, 예술가 집안 출신도 아니다. 기업가에 가까웠던 그는 우연히 아트바젤의 디렉터로 일하다가 아트바젤을 마이애미로 옮기는 아이디어를 실현했고(2001년), "유럽 박람회를 글로벌 더블 이벤트로 만든 천재"라는 찬사를 받으며 예술계에 진입했다.‘아트바젤 2024’가 한창 열리고 있던 지난 13일. 스위스 바젤 시내에서 15분간 트램을 타고 외곽 리헨(Riehen)으로 향했다. 독일과 스위스 접경에 있는 한적하고 평화로운 동네. ‘바이엘러’역에 내리자 얕은 담장이 맞이하는 미술관이 나타났다. ‘바이엘러 재단’의 자취는 담장처럼 소박하지 않다. 모네의 ‘수련’을 실제 연못 앞에서 바라볼 수 있는 세계 유일의 미술관이자, 지난 25년간 800만 명 이상이 방문한 스위스에서 가장 인기 있는 미술관이라서다.‘바이엘러 재단-LUMA재단 5.19-8.11’이라는 검정 글씨의 포스터만 보고 미술관을 찾았다. 입장을 하고 나서야 전시명이 ‘Dancing with Daemons(악마들과의 춤을)’라는 걸 알게 됐다. 이 글을 쓰는 순간에는 홈페이지에 ‘Home for Strangers(낯선 이들을 위한 집)’로 이름이 바뀌어 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예술품들의 아름다운 묘지, 바이엘러바이엘러재단 미술관은 1997년 지어졌다. 에른스트(1921~2010)와 그의 아내 힐디(1922~2008) 바이엘러가 400여 점의 소장품을 기증하며 설립됐다. 모네, 반 고흐, 피카소, 마티스 등의 현대 걸작과 마크 로스코와 로이 리히텐슈타인, 앤디 워홀, 잭슨 폴록에 이르는 전후 거장에 동시대 예술가 작품까지 그야말로 명작 중의 명작 400여 점이 영

    2024.06.20 18:57
  • '현대건축 걸작'에 둘러싸인 비트라 캠퍼스를 아시나요

    스위스 바젤은 프랑스, 독일 국경 사이에 자리 잡은 작은 도시다. 바젤에는 수식어가 많다. 세계 최대 제약회사 노바티스와 로슈 본사 등을 품은 제약의 메카이자 50년 넘게 미술 시장의 패권을 잡아온 아트페어 ‘아트바젤’의 본고장, 최고 시계 장인들이 대대로 모여 살던 명품의 도시 그리고 대규모 페어가 1년 내내 열리는 마이스(기업회의·포상관광·컨벤션·전시회) 도시다.바젤은 현대 건축학도와 디자이너들이 가장 사랑하는 도시이기도 하다. 바젤의 작은 상점에서 탄생한 세계적인 가구회사 비트라의 ‘비트라 캠퍼스’가 바젤 도심에서 독일 국경을 조금만 넘어가면 나온다. 바젤에 간다면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할 곳이다. 바젤 버스로 20분 거리, 바일 암마인에 있는 비트라 캠퍼스를 찾았다.캠퍼스라는 이름 때문에 ‘디자인학교가 있는 곳 아닐까?’ 생각했다면 아니다. 이곳은 공장이다. 세계로 수출되는 비트라 가구의 90%를 여기서 제조한다. 공장 건물과 사무실, 회의실 등은 체리나무가 드리워진 넓은 녹지에 툭툭 놓여 있다.이곳에서 눈길이 닿는 곳은 어느 하나도 그냥 지나치면 안 된다.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 현대 건축과 디자인의 기념비적 작품이 그 안에 모두 모여 있다. 버스정류장, 주유소, 소방서, 산책로까지 모두 건축 거장들의 손길을 거쳤다.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 수상자들의 작품으로 가득 차 있다.큰 화재로 모든 공장이 불에 타버린 1981년, 비트라는 영국 산업 건축가 니컬러스 그림쇼를 시작으로 프랭크 게리(캐나다), 안도 다다오(일본), 자하 하디드(영국-이라크계), 헤르조그&드 뫼롱(스위스), 렌초 피아노(이탈리아), 알바

    2024.06.20 18:10
  • 악동의 소방서, 60년대 일본집… 세계 건축 유산 다 모은 비트라 캠퍼스를 가다 (2부)

    [1부에 이어] ▶▶▶안도 타다오·프랭크 게리…'건축 거장들의 원더랜드' 비트라 캠퍼스를 가다 (1부)1993년 '노출 콘크리트' 건축의 선구자였던 안도 타다오가 일본 밖에서 첫번째 프로젝트에 몰두하고 있을 무렵, 독일 비트라 캠퍼스 안에서 노출 콘크리트 건물이 지어지고 있었다. 독일 바덴뷔르템베르크의 비트라 캠퍼스는 가구 브랜드 비트라의 본사와 공장 그리고 뮤지엄이 한데 있는 공간이다.  비트라 캠퍼스의 노출 콘크리트 건물은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를 유작으로 남긴 여성 건축가 최초의 프리츠커상 수상자, 자하 하디드(1950-2016)의 소방서였다. 불에 탄 공장을 재건한 뒤 화재 예방에 힘 쏟던 비트라는 1990년 무렵 자체 소방서를 짓기로 한다. 이때 선택한 건축가가 자하 하디드다.  '도면 건축가' 놀림 받던 자하 하디드의 첫 건물 자하 하디드의 도면을 현실에 옮긴다는 건 그 자체로 모험이자 도전이었다. 이라크 바그다드 출신으로 영국 AA에서 렘 쿨하스를 사사한 하디드는 이때까지만 해도 '건축물 없는 건축가'라는 비아냥을 들었다. 파격적이고 실험적인 설계도로 공모전마다 크게 인정 받았지만, 이를 실제 건물로 실현시킬 건축주는 아무도 없었다. 마흔 살 넘어서까지 인테리어, 제품 디자이너로만 활동하던 그에게 비트라 소방서는 첫 시험 무대이자, 첫 준공작이 됐다. "상상 속에만 있을 법한 도면이 건축으로 실현될 수 있다"는 걸 세상에 검증한 사례이기도 했다. 중력에 떠있는 듯한 지지대들, 사선과 사면으로 구성돼 얼어붙은 콘크리트 같은 날카로운 외관, 실내에선 어떤 공간에서도-심지어 바닥면에서도

    2024.06.20 10:30
  • 안도 타다오·프랭크 게리…'건축 거장들의 원더랜드' 비트라 캠퍼스를 가다 (1부)

    스위스 바젤은 프랑스, 독일 국경 사이에 자리 잡은 인구 20만 명의 작은 도시다. 바젤에는 수식어가 많다. 세계 최대 제약회사 노바티스와 로슈의 본사 등을 품은 제약의 메카, 50년 넘게 미술 시장의 패권을 잡아온 아트페어의 본고장, 최고의 시계 장인들이 대대로 모여 살았던 명품의 도시, 1년 내내 페어가 열리는 마이스의 도시다.  바젤은 현대 건축학도와 디자이너들이 가장 사랑하는 도시이기도 하다. 동네 작은 상점에서 탄생한 세계적인 가구회사 비트라의 '비트라 캠퍼스'가 도심에서 독일 국경을 조금만 넘어가면 나온다. 바젤에 간다면,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할 곳이 바로 여기다. 버스로 20분 거리, 바일 암마인에 있는 비트라 캠퍼스를 찾았다. 캠퍼스라는 이름만 들으면 학교를 떠올릴 수도 있다. 아니다. 이곳은 공장이다. 세계로 수출되는 비트라 가구의 90%가 여기서 만들어진다. 공장 건물과 사무실, 회의실 등은 체리나무가 드리워진 넓은 녹지에 툭툭 놓여있다.  이곳에서 눈길이 닿는 곳은 어느 하나도 그냥 지나치면 안된다.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 현대 건축과 디자인의 기념비적 작품들이 그 안에 모두 모여있다. 버스 정류장, 주유소, 소방서, 산책로까지 모두 건축 거장들의 손길을 거쳤다.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 수상자들의 작품들로 가득 차있다. 큰 화재로 모든 공장이 불에 타버린 1981년, 비트라는 영국 산업 건축가 니콜라스 그림쇼를 시작으로 프랭크 게리(캐나다), 안도 타다오(일본), 자하 하디드(이라크계 영국), 헤르조그 & 드 뫼롱(스위스), 렌조 피아노(이탈리아), 알바로 시자(포르투갈) 등에게 결정적 작품들을 의뢰했다. 비트라 캠

    2024.06.20 08:47
  • 세탁기 돌리고 고구마 구우며…'악마와 춤추라'는 스위스 최고 미술관

    '아트바젤 2024'가 한창 열리고 있던 지난 13일. 스위스 바젤 시내에서 15분간 트램을 타고 외곽 리헨(Riehen)으로 향했다. 독일과 스위스 접경에 있는 한적하고 평화로운 동네. '바이엘러'라는 역에 내리자 얕은 담장이 맞이하는 미술관이 나타났다. '바이엘러 재단'의 자취는 담장처럼 소박하지 않다. 모네의 '수련'을 실제 연못 앞에서 바라볼 수 있는 갤러리이자, 지난 25년간 800만명 이상이 방문한 스위스에서 가장 인기 있는 미술관이라서다.  아트바젤 기간 동안 도시 곳곳에선 '바이엘러 재단-LUMA재단 5.19-8.11'이라는 검정 글씨의 포스터가 휘날렸다. 미술관에 들어설 때까지 무슨 전시인 지 도무지 알 수 없었는데, 입장을 하고 나서야 전시명이 'Dancing with Daemons(악마들과의 춤을)'라는 걸 알게 됐다. 이 글을 쓰는 순간에는 전시명이 'Home for Strangers- 낯선 이들을 위한 집'으로 바뀌어 있고, 전시장에서 받은 안내문에는 'Cloud Chronicles'와 'All My Love Spilling Over-나의 사랑을 흩뿌려줘'라는 제목이 써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예술품들의 아름다운 묘지, 바이엘러   바이엘러재단 미술관은 1997년 지어졌다. 에른스트(1921-2010)와 그의 아내 힐디(1922-2008) 바이엘러가 400여 점의 소장품을 기증하며 설립됐다. 모네의 인상주의, 반 고흐의 후기 인상주의부터 피카소와 마티즈 등의 현대 걸작, 마크 로스코와 로이 리히텐슈타인, 앤디 워홀, 잭슨 폴록에 이르는 전후 거장, 안젤름 키퍼 등 동시대 예술가들의 주요 작품까지 그야말로 명작 중의 명작들이 영구 소장돼 있다. 바이엘러 부부는 세기의 컬렉터이자 아트딜러다. 파블로

    2024.06.19 11:12
/ 1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