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미술 전시에는 금기(禁忌)가 여럿 있다. 먼저 작품을 만지지 않는 것이 상식이다. 다른 관람객의 감상을 방해하지 않도록 정숙을 지키는 것이 상호 예의다. '눈으로만 보세요' '촬영하지 마세요' 등 경고 문구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서울 대학로 아르코미술관에서 열린 '인투 더 리듬: 스코어로부터 접촉지대로'는 전시장의 통념을 흔드는 전시다. 관객은 작품 위에 둘러앉는 것은 물론, 곳곳에 놓인 대본에 따라 역할극에 참여한다. 미역과 다시마가 걸린 공간에선 새로운 요리법을 시도할 것을 권하고, 가라오케를 옮겨놓은 설치작품에는 '자유롭게 노래를 따라 부르세요'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국내외 작가 11개 그룹이 참여한 이번 전시는 한국-스위스 수교 60주년을 기념해 열린 국제교류 협력 기획전이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스위스의 비영리 조직 온큐레이팅이 2년에 걸쳐 준비했다. 전시를 공동 기획한 도로시 리히터 온큐레이팅 큐레이터는 "미술관을 공동체에 개방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했다"고 설명했다.스위스 아트 바젤 등 글로벌 아트페어의 고상한 분위기를 기대한다면 오산이다. 이번 전시의 주인공은 플럭서스 계열이다. 스위스는 1916년 기존 예술 형식의 전복을 표방하며 형성된 다다이즘의 본고장인데, 이들의 실험적인 정신을 계승한 이들이 플럭서스다. 백남준, 요제프 보이스 등이 대표적이다.전시장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곳곳에 놓인 '스코어' 지시문이다. 스코어는 퍼포먼스를 위한 안내문을 의미하는데, 주로 1960년대 플럭서스 예술가들 사이에서 활용됐다. 10개의 '도래하는 공동체를 위한 작은 프로젝트'는 관객을 서로
"너는 나를 보았기 때문에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부활한 예수가 열두제자 중 한 사람인 도마를 꾸짖으며 건넨 말이다. 도마가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지 않자, 보다 못한 예수는 제자의 검지 손가락을 자신의 상처 속으로 밀어 넣었다. 17세기 이탈리아 화가 카라바조(1571~1610)의 '의심하는 도마'(1602~1603)로 잘 알려진 장면이다. 합리적 이성으로 무장한 현대인이 도마한테 돌을 던질 수 있을까. 카라바조의 명화를 오마주한 극사실주의 화가 이석주의 '사유적 공간'(2017)에 답이 있다. 예수의 형상은 원작보다 흐릿하게 묘사됐고, 화면 하단엔 거대한 아날로그 시계가 배치됐다. 오늘날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의심이 2000년 전 도마의 상황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서울 신림동 서울대미술관에서 열린 '예술, 보이지 않는 것들의 관문'은 관객을 시험하는 전시다. 시간의 흐름, 노화와 죽음, 전설과 민담 등 직관적으로 보이지 않는 세계를 다룬다. 이석주를 비롯해 권오상 김두진 노상균 신미경 등 13명의 국내 작가들이 수수께끼를 던진다. 심상용 서울대미술관장은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메시지에서 출발한 전시"라며 "작품을 '보는' 관객은 역설적으로 보이지 않는 의미에 집중하게 된다"고 설명했다.서구의 피에타부터 동양의 요괴까지가장 많은 작가를 연결하는 공통분모는 종교적인 모티프다. 고전적인 화풍의 종교화를 연상케 하는 안재홍의 'The Giver'(2022~2023)로부터 전시는 시작한다. 관점에 따라 전혀 다른 해석이 가능한 작품이다. 구더기가 들끓는 동물의 사체와 광채를 발산하는 성
지난 6일 서울 잠실 석촌호수에 높이 16m의 랍스터 풍선이 설치됐다. ‘플로팅 랍스터 킹’을 띄운 이는 영국의 팝아티스트 필립 콜버트. 영국, 중국, 이탈리아 등 세계 곳곳에 랍스터 조형물을 설치하며 ‘차세대 앤디 워홀’로 거론되는 작가다.1979년 영국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난 콜버트는 팝아트와 거리가 먼 유년기를 보냈다. 미국의 대량소비 사회를 경험하지도, 디즈니랜드처럼 판타지적인 세계를 누리지도 못했다. 이런 그에게 해변에 출몰하던 랍스터는 외계 생물과도 같았다. 호기심 많던 소년은 이때부터 랍스터를 그리기 시작했다.콜버트는 랍스터 캐릭터로 대중과 소통한다. 거장들의 명화를 캡틴 아메리카의 방패, 라코스테 후드티 등 대중문화 이미지와 콜라주하는 엉뚱한 해학미가 그의 매력이다. 미술계의 관심은 뜨겁다. 2022년 영국 필립스 런던에 출품된 ‘스플래시 헌트 스터디’(2018)는 추정가의 두 배가 넘는 4만320파운드(약 7076만원)에 낙찰됐다. 이탈리아 로마의 ‘랍스터 제국’, 중국 창사의 ‘랍스터 원더랜드’ 등 공공예술 프로젝트도 시행했다.안시욱 기자
“한국국제아트페어(KIAF)-프리즈 서울은 예술이 금융이 된 시대를 열었습니다. 판매 보고서는 작품 가격 순서대로 줄을 세우고, 삼청동 청담동 일대는 갤러리들이 여는 파티로 불야성을 이루죠. 과연 그것이 우리에게 좋은 현상이냐는 질문에서 출발한 전시입니다.”(이용우 상하이 통지대 교수)KIAF-프리즈 서울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가운데 상업화에 가려진 미술의 본질을 돌아보자는 전시가 열렸다. 서울 소격동 학고재갤러리의 ‘잃어버린 줄 알았어!’ 기획전이다. 전시 제목이 내포한 뜻은 이중적이다. 잃어버렸으면 안 됐다고 반성하는 의미이자, 잃어버린 줄 알았는데 아직 남아 있다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한다.광주비엔날레 대표를 지낸 이용우 교수와 독립 큐레이터 왕리인이 공동 기획한 이번 전시에는 한·중·일 대표 작가 3인이 참여했다. 엄정순(한국), 딩이(중국), 시오타 치하루(일본)가 회화와 조각 등 60여 점을 선보였다. 예술의 공동체 정신과 사회적 포용성 등 가치를 우직하게 추구해온 이들의 작품 세계를 비교하며 감상할 수 있다.엄정순 작가는 1996년 사단법인 ‘우리들의 눈’을 설립한 이후 시각장애 학생들과 예술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15년 전 동남아시아 지역을 여행하다가 야생에서 마주친 코끼리가 작가 본인한테 말을 거는 것 같았다고 한다. ‘장님과 코끼리’ 이야기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하는 코끼리 조각 연작에 착안하게 된 배경이다.보통 작품은 만지지 않는 것이 상식이지만 엄 작가는 관객이 오감을 동원할 것을 권한다. 시각장애 학생이 느끼고 표현한 코끼리 형상을 철판으로 형상화하고, 그 위를 울 직물로 덮은 그의 조각이 그
"한국국제아트페어(KIAF)-프리즈 서울은 예술이 금융이 된 시대를 열었습니다. 판매 보고서는 작품 가격 순서대로 줄을 세우고, 삼청동·청담동 일대는 갤러리들이 여는 파티로 불야성을 이루죠. 과연 그것이 우리에게 좋은 현상이냐는 질문에서 출발한 전시입니다."(이용우 상하이 통지대 교수) KIAF-프리즈 서울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가운데, 상업화에 가려진 미술의 본질을 돌아보는 전시가 열렸다. 서울 소격동 학고재갤러리의 '잃어버린 줄 알았어' 기획전이다. 전시 제목이 내포한 뜻은 이중적이다. 잃어버렸으면 안 됐다고 반성하는 의미이자, 잃어버린 줄 알았는데 아직 남아있다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한다. 광주비엔날레 대표를 역임한 이용우 교수와 독립 큐레이터 왕 리인이 공동 기획한 이번 전시에는 한·중·일 대표작가 3인이 참여했다. 엄정순(한국), 딩 이(중국), 시오타 치하루(일본)가 회화와 조각 등 60여점을 선보였다. 예술의 공동체 정신과 사회적 포용성 등 가치를 우직하게 추구해온 이들의 작품 세계를 비교하며 감상할 수 있다.엄정순 작가는 1996년 사단법인 '우리들의 눈'을 설립한 이후 시각장애 학생들과 예술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15년 전 동남아시아 지역을 여행하다가 야생에서 마주친 코끼리가 작가 본인한테 말을 거는 것 같았다고 한다. '장님과 코끼리' 이야기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하는 코끼리 조각 연작에 착안하게 된 배경이다.보통 작품은 만지지 않는 것이 상식이지만 엄 작가는 관객이 오감을 동원할 것을 권한다. 시각장애 학생이 느끼고 표현한 코끼리 형상을 철판으로 형상화하고, 그 위를 울 직물로 덮은 그의 조
추석은 사람마다 여러 의미로 다가온다. 한 해 농사를 돌아보는 날. 가족 친지와 재회하는 날. 잊고 살던 고향을 다시 찾는 날. 장거리 운전과 차례상 준비로 진땀을 빼는 날. 모처럼 찾아온 연휴에 온 가족이 ‘미술 나들이’를 떠나보는 건 어떨까. 가족과 노동의 의미, 우리 문화유산의 가치로 한가위를 풍성하게 가꿔줄 전시가 곳곳에 마련돼 있다. 연휴 기간 문을 여는 서울 근교 미술관·박물관 전시를 정리했다.○가족·고향을 향한 그리움“태현, 태성에게. 아빠는 따뜻한 양피 잠바를 입고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있답니다.”1954년 10월 28일 화가 이중섭이 일본에 두고 온 두 아들과 아내를 그리워하며 쓴 편지다. 꾹꾹 눌러쓴 글귀 주위로 가족이 모여 활짝 웃는 삽화가 그려져 있다. 6·25전쟁으로 인해 떨어진 가족과 그림에서나마 재회하려는 절절한 사연을 간직한 작품이다.서울 부암동 석파정 서울미술관의 ‘나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에서는 이중섭이 가족에게 보낸 미공개 편지와 그림을 만나볼 수 있다. 이중섭의 아내 야마모토 마사코가 세상을 떠나기 전 그 집을 가족들이 정리하다가 찾은 편지들 중 일부다. 이중섭이 연애 시절 마사코에게 보낸 엽서화 6점도 함께 공개됐다.이번 전시에서는 석파정 서울미술관의 다른 소장품도 감상할 수 있다. 신사임당의 초충도와 추사 김정희의 서화 등 조선시대 명작부터 김환기, 서세옥, 정상화 등 현대미술 대가들의 작품까지 아우른다. 붉은색과 푸른색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이우환의 ‘대화’ 시리즈도 놓치지 말 것. 전시는 연휴 기간 내내 이어진다.고향 정취가 그립다면 서울 소격동 국립현대미술관(국현) 서
미국 최고(最古) 박물관인 피바디에섹스박물관(PEM)의 한국실이 새롭게 문을 연다. 개화사상가이자 정치가인 유길준(1856~1914)을 기리는 의미에서 ‘유길준 한국미술과 문화갤러리’로 명칭이 정해졌다. 내년 5월 15일부터 260㎡ 규모 공간에 한국 관련 유물 50여 점을 상설 전시한다.지난 3일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만난 린다 하티건 PEM관장(사진)은 “조선 최초의 미국 유학생으로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겠다는 꿈을 꿨던 유길준의 삶을 통해 도전의 의미를 되새기고 싶었다”고 말했다.1799년 건립된 PEM은 미국 최초로 아시아 예술 및 민속 유물을 수집한 박물관이다. 미국 매사추세츠주 세일럼의 무역상들이 각자 수집한 타국 물건을 전시하는 과정에서 탄생했다. 하티건 관장은 “미국에서 한국 유물을 체계적으로 소장·관리한 것은 PEM이 처음”이라고 말했다.한국과의 인연은 19세기 말 시작했다. 박물관 전신인 피바디과학관의 에드워드 모스가 고종의 외교 고문이던 파울 묄렌도르프를 통해 한국에서 225점의 유물을 구입하면서다. 이때 조언한 인물이 유길준이다. 1883년 방미 사절단으로 미국을 찾은 유길준은 1년여간 박물관이 있는 세일럼 지역에 머물렀다.PEM은 유길준의 흔적을 간직한 유물을 여럿 수집했다. 그가 미국에 두고 간 갓과 옷, 더위를 식히기 위해 쓴 부채와 대나무 토시, 모스와 나눈 편지 등이다.하티건 관장은 “한국인에게 ‘아픈 역사’인 개화기에 부단히 노력한 사람들이 일군 문화가 현대사회로 이어지는 과정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안시욱 기자
현존하는 미국 최고(最古)의 박물관인 피바디에섹스박물관(PEM) 한국실이 새롭게 문을 연다. 개화사상가이자 정치가인 유길준(1856~1914)을 기리는 의미에서 '유길준 한국미술과 문화갤러리'란 명칭이 채택됐다. 내년 5월 15일부터 260㎡(약 79평) 규모 공간에 한국 관련 유물 50여점을 상설 전시한다.왜, 지금 유길준일까. 지난 3일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만난 린다 하티건 PEM관장은 유길준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조선 최초의 미국 유학생으로서 태평양을 건너던 심정은 어땠을까요. 고향에 두고 온 가족에 대한 그리움,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겠다는 꿈…. 유길준 선생의 삶을 통해 도전의 의미를 되새기고 싶었습니다."1799년 건립된 PEM은 미국 최초로 아시아 예술 및 민속 유물을 수집한 박물관이다. 미국 매사추세츠주 세일럼의 무역상들이 각자 수집한 타국의 물건을 전시하는 과정에서 탄생했다. 현재 한국, 중국, 일본, 아메리카 원주민, 아메리카 유물 약 100만점을 소장하고 있다. 하티건 관장은 "미국에서 한국 유물을 체계적으로 소장·관리한 것은 PEM이 처음"이라고 말했다.한국과의 인연은 19세기 말부터 시작했다. 박물관의 전신인 피바디과학관의 에드워드 모스가 고종의 외교 고문이었던 묄렌도르프를 통해 한국에서 225점의 유물을 구입하면서다. 이때 자문을 해준 인물이 유길준이다. 1883년 방미 사절단으로 미국을 찾은 유길준은 1년여간 박물관이 있는 세일럼 지역에 머물렀다. 모스는 스승이자 조력자로서 유길준의 유학 생활을 도왔다.PEM은 유길준의 흔적을 간직한 유물을 여럿 수집했다. 그가 미국에 두고 간 갓과 옷, 더위를 식히기 위해 썼던 부채와 대나무 토시,
올해 한국국제아트페어(KIAF)-프리즈 서울 기간에도 글로벌 화랑의 한국 진출이 성사됐다. 독일의 명문 갤러리 마이어리거다. 1997년 독일 카를스루에에서 기원한 마이어리거는 미리암 칸, 셰일라 힉스, 캐롤라인 바흐만, 존 밀러 등 세계적인 작가 군단을 거느리고 있다.이번 한국 진출은 예정된 수순이다. 지난해 초 마이어리거가 한국에 지점을 갖고 있던 에프레미디스 갤러리를 인수·합병(M&A)하면서다. 마이어리거는 3일 서울 삼성동에 갤러리를 개관하고 소속 작가 호르스트 안테스의 개인전으로 신고식을 열었다. 이로써 서울은 베를린, 카를스루에, 바젤, 뉴욕에 이어 마이어리거의 다섯번째 거점이 됐다.세계 미술시장의 전망이 불투명한 가운데, 아시아의 첫 거점으로 서울을 꼽은 이유는 뭘까. 이번 KIAF-프리즈 서울 현장을 찾은 요흔 마이어, 토마스 리거 공동대표를 5일 마이어리거 부스에서 만났다.▷최근 서울에 한국지점을 열었다.마이어 - "한국과의 인연은 꽤 오래됐다. 코로나19가 창궐했던 2019년에도 한국의 PKM갤러리와 협력했다. 각각 한국과 독일의 작가들을 상대 국가에서 소개하며 교류하며 한국 미술계를 유심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미술을 통해 한국·독일 두 문화 사이의 대화를 끌어내겠다는 비전을 갖고 있다. 궁극적으론 서울 지점을 기반으로 아시아에서 활동 저변을 넓히고자 한다."▷아시아의 여러 도시 중 서울을 진출지로 선택한 이유가 뭔가.리거 - "여러 차례 리서치와 현장 답사 끝에 조심스럽게 결정한 결과다.한국의 민주주의 체제가 매우 중요하게 작용했다. 상하이, 홍콩, 싱가포르 등 매력적인 대안이 있던 것은 사실이지만, 이들의 정치
4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개막한 한국국제아트페어(KIAF)-프리즈 서울의 본질은 미술 장터다. 관심과 돈이 있는 사람들끼리 작품을 사고파는 행사란 얘기다. 수억~수십억 원에 이르는 고가의 작품들이 거래되는 세상은 남의 얘기처럼 들리기 마련이다. 미술은 박물관과 갤러리, 수집가들의 전유물인 걸까.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공공예술 작가들의 시선은 달랐다. 이날 서울 신사동 서울옥션 강남센터에서 열린 'K11 아트살롱&아르떼 아트 토크'에서다."미술품이 컬렉터의 소유가 되기보다, 모두의 예술이 될 때 더 큰 에너지를 얻습니다."(필립 콜버트)"길거리에서 마주치는 예술품은 사람들한테 예상치 못한 즐거움을 주죠."(김지현 디스트릭트 아트부문장) 이번 아트 토크는 예술후원기업 K11과 문화예술 플랫폼 아르떼가 예술가들을 초대해 마련한 행사다. 영국의 세계적인 팝아티스트 필립 콜버트와 한국의 디지털·미디어아트 기업 디스트릭트가 'Beyond the Reality(현실을 넘어서)'를 주제로 대담했다. 김보라 아르떼매거진 편집장이 사회자로 참여했다. 서울역에 일렁이는 거대한 파도이들 작가는 작품을 일반 대중한테 무료로 공개하는 공공예술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디스트릭트가 지난 6~8월 서울 문화역서울 284에서 진행한 'reSOUND: 울림, 그 너머' 전시가 단적인 예다. 스크린에 파도가 일렁이는 대형 설치작 'OCEAN'(2022, 2024) 등 미디어아트를 보기 위해 총 11만명이 다녀갔다.▶▶▶(관련 기사) 대형파도가 서울역을 덮쳤다 … 현실을 벗어난 꿈의 세계가 펼쳐진다디스트릭트가 공공 미디어아트에 뛰어든 건 2020년부터다. 이때 코
사람이 처음 경험하는 '미술'은 낙서일 것이다. 예술가들이 학교 책상이나 벽에 걸린 낙서에서 영감을 구하곤 하는 이유다. 동심을 나타내듯 단순한 형태로, 또는 의식의 흐름대로 그린 암호 같은 기호로…. 서울 성수동 더페이지갤러리에서 열린 페트릿 할릴라이·정수진 개인전은 두 작가가 각자 해석한 낙서의 변주를 보여준다.초등학생의 낙서로 바라본 전쟁의 비극형태가 단순한 쪽은 페트릿 할릴라이다. 코소보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인 그는 이번 전시에 신작 '로야 메 토파(Loya me Topa·공놀이)'를 선보였다. 게임과 애니메이션 캐릭터, 눈사람 등 초등학교 교실의 낙서를 브론즈로 구현한 조각 11점으로 구성됐다. 11명의 선수가 뛰는 축구 경기처럼 활력이 넘치는데, 작품에 담긴 의미는 무겁다.할릴라이는 1986년 남유럽 발칸반도의 코소보에서 태어났다. 유년기를 난민캠프에서 보냈다. 알바니아계와 세르비아계 사이의 분쟁인 코소보 내전 때문이다. 작가는 이때부터 전쟁이 주는 공포를 아이의 시선에서 표현한 드로잉으로 화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그가 고향마을 루닉으로 돌아온 건 2012년 무렵이다. 그나마 전쟁 이전의 모습을 간직한 마을의 폐교를 찾았다. 작가는 학생들의 손때가 묻은 녹색 책상과 벤치에 적힌 낙서를 기록했다. 전쟁의 한복판에서 아이들이 느꼈을 꿈과 두려움을 드로잉과 조각, 설치작업 등으로 표현하기 시작했다.이번 신작은 작가가 10여년간 추진해온 '아베타레'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기획됐다. 아베타레는 코소보 아이들을 위한 알바니아어 초급 알파벳 교과서다. 이 책이 알바니아계 민족한테 갖는 의미는 각별하다. 1990년대부터 세
한국국제아트페어(KIAF)-프리즈 서울이 4일 개막했다. 올해로 3년째를 맞았지만 미술시장의 문턱은 여전히 높다. 인기 있는 작품에 관한 정보는 몇몇 컬렉터 사이에서만 ‘영업비밀’처럼 돌아다닌다. 신입 컬렉터와 취미로 미술을 접하는 애호가들한테 아트페어가 ‘그들만의 리그’로 다가오는 이유다.문화예술 플랫폼 ‘아르떼’가 이번 KIAF-프리즈 서울 행사장에 부스를 차린 것은 이런 문화장벽을 낮추기 위해서다. 부스에선 지난 6월 창간된 프리미엄 문화예술 월간지 ‘아르떼’를 만나볼 수 있다. 이번 9월호에선 미술 담당 기자와 칼럼니스트들이 바라본 KIAF-프리즈 서울 심층분석은 물론 최근 글로벌 무대에서 주목받는 ‘숯의 화가’ 이배의 단독 인터뷰가 실렸다.KIAF-프리즈 서울 기간에 한국을 찾는 해외 미술 관계자를 위한 영문 특별판도 출간됐다. 수잔나 하이먼 화이트큐브 큐레이터는 “아르떼 매거진의 영문 버전은 탁월했다. 궁금한 한국 작가가 많았는데, 주요 작가의 정보를 정리해 놓아 많은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문화장벽을 낮추기 위한 아르떼의 프로그램은 행사장 밖에서도 이어졌다. 이날 서울 강남구 신사동 서울옥션 강남센터에서 열린 ‘K11 아트살롱&아르떼 아트 토크’에서다. 세계적인 예술후원기업 K11과 아르떼가 예술가들을 초대해 대화의 장을 마련했다.이번 행사에선 영국의 세계적인 팝아티스트 필립 콜버트가 참석해 대담했다. 콜버트는 이번 KIAF-프리즈 기간에 서울 잠실 석촌호수에 초대형 랍스터 설치작품을 전시한다.안시욱 기자
한국국제아트페어(KIAF)-프리즈 서울이 4일 개막하며 올해로 3년째를 맞이했지만, 미술시장의 문턱은 여전히 높다. 인기 있는 작품에 관한 정보는 몇몇 컬렉터 사이에서만 '영업비밀'처럼 돌아다닌다. 신입 컬렉터나 취미로 미술을 접하는 애호가들한테 아트페어가 '그들만의 리그'로 다가오는 이유다.문화예술 플랫폼 '아르떼'가 이번 KIAF-프리즈 서울 행사장에 부스를 차린 건 이러한 문화장벽을 낮추기 위해서다. 부스에선 지난 6월 창간된 프리미엄 문화예술 월간지 '아르떼 매거진'을 만나볼 수 있다. 이번 9월호에선 미술 담당 기자들과 칼럼니스트들이 바라본 KIAF-프리즈 서울 심층분석은 물론, 최근 글로벌 무대에서 주목받는 '숯의 화가' 이배의 단독 인터뷰가 실렸다.KIAF-프리즈 서울 기간 중 한국을 찾는 해외 미술 관계자를 위한 영문 특별판도 출간됐다. 수잔나 하이먼 화이트큐브 큐레이터는 "아르떼 매거진의 영문 버전은 탁월했다. 한국에 궁금한 작가들이 많았는데, 주요 작가들의 정보가 정리돼 많은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문화장벽을 낮추기 위한 아르떼의 프로그램은 행사장 밖에서도 이어졌다. 이날 오후 서울 신사동 서울옥션 강남센터에서 열린 'K11 아트살롱&아르떼 아트 토크'에서다. 세계적인 예술후원기업 K11과 아르떼가 예술가들을 초대해 대화의 장을 마련한 행사다.이번 행사에선 디지털아트 작가 그룹 에이스트릭트와 영국의 세계적인 팝아티스트 필립 콜버트가 참석해 대담했다. 둘의 공통점은 대중을 위한 공공예술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는 것. 에이스트릭트는 코엑스, 뉴욕 타임스퀘어의 대형 스크린에 작품을 걸어왔고, 콜버
지난해 가을의 한국국제아트페어(KIAF)와 프리즈 서울은 그야말로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닷새 남짓의 행사 기간 둘러봐야 할 부스만 300여 개. 15만 명의 구름 인파를 헤치고 원하는 작품을 꼼꼼히 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올해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우물쭈물하다가는 걸작들의 향연을 제대로 즐기지 못한다. 시간을 쪼개서라도 반드시 봐야 할 부스를 정리했다. 개성 넘치는 작가들의 KIAF이번 KIAF에는 21개국 206개 갤러리가 참여한다. 스페인 알바란부르다이, 이란 바반갤러리, 스위스 레흐빈스카갤러리 등 세계 각지의 갤러리 34곳이 처음 KIAF를 찾는다. 서구권 명작에 관심이 있다면 파블로 피카소와 막스 에른스트 등을 들고 온 독일 디에갤러리, 페르난도 보테로와 샤갈 등을 목록에 올린 미국 아트오브더월드 갤러리를 방문할 만하다.눈길을 끄는 건 국내 화랑의 변화한 모양새다. 2~3년 전까지만 해도 이우환 박서보 등 유명 작가 위주로 부스를 꾸린 반면 이번 행사에선 개성 넘치는 각양각색의 ‘간판 작가’를 내세웠다. 지난 몇 년간 신진 및 중견 작가를 발굴하고 육성하는 등 다변화를 꾀한 국내 미술계의 움직임이 반영된 결과다.김윤신의 솔로 부스를 준비한 국제갤러리가 그 중심에 있다. 1980년대부터 라틴아메리카에서 활동한 김윤신은 올해 베네치아비엔날레 본전시에 참여하며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로 떠올랐다. 갤러리현대 부스는 이강소 이건용 정상화 김창열 이우환 등 거장 위주로 구성된다. 가나아트 역시 박석원 심문섭 등의 이름을 올렸다.KIAF에선 한 곳의 갤러리와 오랫동안 합을 맞춰온 작가들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김택상 이건용 남춘모 이강소의 작품
세계적 재즈 트리오 ‘골든 스트라이크 트리오’의 기타리스트 러셀 멀론(사진)이 지난달 23일 일본 투어 중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향년 60세.멀론은 베이시스트 론 카터, 피아니스트 멀그루 밀러(1955~2013)와 함께 2003년 골든 스트라이크 트리오를 결성했다. 드럼 없이 기타와 베이스, 피아노로 구성된 절제되면서도 섬세한 연주가 특징이다. 이들은 2007년 미국 뉴욕 카네기홀 무대에 오르는 등 최고의 재즈 유닛으로 군림했다. 현재 밀러의 빈자리에 도널드 베가(50)가 피아니스트로 합류했다.1963년 미국 조지아주에서 태어난 멀론은 네 살부터 기타를 잡았다. 어머니가 사준 장난감 기타였다. 12세 때 TV에서 재즈 기타리스트 조지 벤슨의 공연을 보고 본격적인 연주자의 길을 걸었다. 1980년대 후반부터 지미 스미스, 해리 코닉 주니어 등과 협업하며 이름을 알렸다. 다이애나 크롤 트리오에 참여해 제작한 ‘When I Look in Your Eyes’(1999)로 제42회 그래미상 최우수 재즈 보컬 앨범 부문을 석권했다. 컨트리와 로큰롤, 펑크 등 장르를 넘나들며 개인 음반 10여 점, 그룹 음반 약 70점을 남겼다.안시욱 기자
지난해 9월 열린 한국국제아트페어(KIAF)와 프리즈 서울은 그야말로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닷새 남짓의 행사 기간 중 둘러봐야 할 부스만 300여개. 15만명의 구름 인파를 헤치고 원하는 작품을 꼼꼼히 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로부터 1년 뒤인 4일 아시아 최대 미술장터 KIAF-프리즈 서울이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나란히 개막한다. 키아프는 8일까지, 프리즈는 7일까지 열린다. 이번에도 문제는 결국 시간일 터. 시간이 부족하더라도 반드시 봐야할 '간판 부스'들을 정리했다.개성 넘치는 작가들의 KIAF이번 KIAF에는 21개국 206개 갤러리가 참여한다. 스페인의 알바란 부르다이, 이란의 바반 갤러리, 스위스의 레흐빈스카 갤러리 등 세계 각지의 갤러리 34곳이 처음 키아프를 찾는다. 서구권 명작에 관심이 있다면 파블로 피카소와 막스 에른스트 등을 들고 온 독일 디에갤러리, 페르난도 보테로, 샤갈 등을 목록에 올린 미국 아트오브더월드 갤러리를 방문할 만하다.눈길을 끄는 건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130여곳의 국내 화랑의 변화한 모양새다. 2~3년 전까지만 해도 이우환, 박서보 등 유명 작가들 위주로 부스를 꾸렸던 반면, 이번 행사에선 개성 넘치는 각양각색의 '간판 작가'들을 내세웠다. 지난 몇 년간 신진 및 중견 작가를 발굴하고 육성하는 등 다변화를 꾀한 국내 미술계의 움직임이 반영된 결과다.김윤신의 솔로 부스를 준비한 국제갤러리가 그 중심에 있다. 1980년대부터 라틴아메리카에서 활동한 김윤신은 올해 베네치아비엔날레 본전시에 참여하며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로 떠올랐다. 갤러리현대 부스는 이강소, 이건용, 정상화, 김창열, 이우환 등 거장들을 위주로 구성된다.
“라파엘로처럼 그림을 그리기까지 4년이 걸렸다. 하지만 어린아이처럼 그리는 데는 평생이 걸렸다.”입체파 거장 파블로 피카소(1881~1973)가 남긴 말이다. 때론 노련함보다 정제되지 않는 순수함이 갖기 어려운 법. 피카소를 비롯해 초등학생의 낙서를 따라 그린 페트릿 할릴라이 등 이름난 작가들이 동심을 동경한 이유다.오준식(사진)은 동심을 부러워하지 않는 작가다. 그의 나이는 올해 열네 살. 그저 힘껏 만든 작품이 동심이 된다. 그는 공룡과 바다생물을 주제로 지난달 23일부터 사흘간 서울 신사동 티디에이하우스에서 첫 번째 개인전을 열었다. 회화 120점과 오브제 50점을 선보였다. 그는 “어릴 적 순수한 마음을 예술로 승화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그는 일곱살 무렵부터 작업실을 다녔다. 공룡과 바다생물의 행태를 분석하기 위해 해외 다큐멘터리를 반복해서 보고, 매주 아쿠아리움을 찾아 동물의 움직임을 관찰했다. “인간은 화석 연구를 통해 공룡의 겉모습을 어느 정도 알아냈지만, 어떤 색이었는지는 여전히 미스터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 신나게 상상할 수 있죠.”작가는 공룡과 바다 동물을 모티브로 그리고 싶은 이미지가 끊임없이 떠오른다고 말했다. 그는 “영감이 번뜩일 때면 바로 종이와 연필을 준비하고, 지우개 없이 단숨에 그림을 완성한다”고 설명했다.안시욱 기자
“라파엘로처럼 그림을 그리기까지 4년이 걸렸다. 하지만 어린아이처럼 그리는 데는 평생이 걸렸다.” 입체파 거장 파블로 피카소(1881~1973)가 남긴 말이다. 때론 노련함보다 정제되지 않는 순수함이 갖기 어려운 법. 피카소를 비롯해 초등학생의 낙서를 따라 그린 페트릿 할릴라이 등 이름난 작가들이 동심을 동경한 이유다. 오준식은 동심을 부러워하지 않는 작가다. 그는 올해 열 네살. 그저 힘껏 만든 작품이 동심이다. 그의 공룡과 바다생물을 주제로 지난 23일부터 사흘간 서울 신사동 티디에이하우스에서 첫 번째 개인전을 열었다. 이번 전시에서는 회화 120점과 오브제 50점을 선보였다. “각자 어렸을 때 순수한 마음으로 좋아했던 대상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전시를 열게 된 계기를 묻자 오준식은 이런 답변을 들려줬다. 그는 “좋아하는 장난감에 따라 친구들이 공룡 파(派), 자동차 파, 로봇 파로 나뉘곤 했는데, 중학교에 입학하며 대부분 다른 관심사로 떠나갔다”며 “어릴 적 순수한 마음을 예술로 승화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오준식은 일곱살 무렵부터 작업실을 다녔다. 공룡과 바다생물의 행태를 분석하기 위해 해외 다큐멘터리를 반복해서 보고, 매주 아쿠아리움을 찾아 동물의 움직임을 관찰했다. 작업의 소재로 공룡을 고른 이유는 모습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밖에 없는 공룡의 특성 때문이다.“인간은 화석 연구를 통해 공룡의 겉모습을 어느 정도 알아냈지만, 어떤 색이었는지는 여전히 미스터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 신나게 상상할 수 있죠.” 작가는 공룡과 바다 동물을 모티브로 그리고 싶은 이미지가
"언제적 삼청동입니까."최근 만난 한 갤러리스트가 건넨 말이다. 한국국제아트페어(KIAF)-프리즈 서울이 2022년 삼성동 코엑스에 자리 잡은 게 시작이었을까. 지난 3년 사이 세계적인 화랑들이 물밀듯이 압구정·신사·청담 등 강남권에 한국 지점을 열기 시작했고, 둥지를 옮기는 국내 갤러리도 부쩍 늘었다.그래도 한국 미술의 1번지는 여전히 삼청동이다. 아트선재센터 등 국내 최정상급 미술관과 갤러리현대, 국제갤러리 등 터줏대감 화랑들의 영향력은 건재하다. 국내외 거장들과 오랜 시간 구축한 네트워크, 신진 작가들을 발굴하는 안목도 무시할 수 없다. 이번 KIAF-프리즈 기간에 마련된 부스 외에도, 이들의 '본진'을 찾아야 할 이유다.강철의 존 배 vs 섬유의 함경아올해 한국 미술계가 프리즈 서울을 상대로 꺼내든 카드는 '거장의 재발견'이다. 미국을 대표하는 현대조각가 존 배의 개인전을 준비한 갤러리현대가 그 중심에 있다. 갤러리 신관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는 2013년 갤러리현대 전시 이후 11년 만에 열리는 배 작가의 국내 개인전이다. 1960대 초기 강철 조각부터 작가를 상징하는 철사 조각까지 30여점을 선별해 보인다.1949년 부모와 함께 미국으로 이민 간 배 작가는 지난 70년간 해외에서 한국 예술을 알리는 첨병 역할을 해왔다. 올해 초 맨해튼 중심부로 보금자리를 옮긴 뉴욕한국문화원의 개관전 작가로도 선정된 이유다. 철사를 주로 활용하는 배 작가는 미리 완성된 모습을 정해두고 작업에 임하지 않는다. 공간을 가로지르는 점과 선 사이 운명적인 조우 자체에 의미를 두기 때문이다.국제갤러리는 함경아 작가의 부드러운 자수 작품으로 여기 맞선다. 마찬가
과거 사대부가 모여 살던 서울 북촌 한옥마을. 예스러운 기왓장 사이로 높이 10m를 훌쩍 넘는 미디어아트가 들어섰다. 시시각각 색깔과 형태가 바뀌는 이 영상은 4억 개 넘는 동물 이미지 데이터를 기반으로 인공지능(AI)이 생성해낸 것. 튀르키예 출신 세계적 미디어아티스트인 레픽 아나돌(39·사진)의 ‘기계 환각-LNM: 동물’이다.‘미술계의 이단아’는 그를 표현하기에 낡은 수식어가 된 지 오래다. 지난해 개관한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구형 공연장 ‘스피어’ 외관을 장식했고,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 열린 그의 개인전은 300만 명 넘게 찾으며 전시 기간이 네 번이나 연장됐다. 올해 1월 정·재계 유력인사가 모인 세계경제포럼(다보스포럼)에선 자연을 다룬 신작들을 선보이며 환경 보호의 중요성을 역설했다.다보스포럼에서 공개한 자연 이미지의 진화한 버전을 들고 방한한 그를 지난 26일 북촌 푸투라 서울에서 만났다. 기술의 첨단을 달리는 그가 ‘아시아 첫 개인전’ 무대로 서울 구도심 북촌을 고른 이유는 뭘까. “과거의 지혜를 간직한 자연은 미래를 위해 지켜야 할 대상이죠. 서울의 옛 모습을 대표하는 공간에서 미래 기술로 자연을 다룬 AI 작품을 선보이고 싶었습니다.” ○‘과거’ 북촌과 ‘미래’ AI의 조우“이 향수 한번 뿌려 보시겠어요? 열대우림에서 수집한 50만 개의 향기 분자를 바탕으로 저의 AI가 만들어낸 냄새입니다. 아, 그리고 사진은 거울이 있는 이 방이 가장 잘 나와요.”전시장에서 만난 아나돌에게 전시 공간 소개를 요청하자 유쾌한 미소와 함께 이런 답변을 들려줬다. 시청각부터 후각까지 모든 감각으로 자
미국 뉴욕 맨해튼 북부의 할렘은 역설적인 동네다. 빈민가의 대명사이면서도 아프리카계 이민자들의 아메리칸드림이 서려 있고, 불안정한 치안에도 공동체 의식으로 엮여 있다. 역설은 예술가가 가장 좋아하는 소재 중 하나. 시인 랭스턴 휴스, 음악가 루이 암스트롱 등 재능있는 작가들이 할렘에서 '흑인 르네상스'를 꽃피운 이유가 여기 있다.뉴욕에서 활동하는 설치미술가 나리 워드(61·사진)는 할렘의 역설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작가다. 폭력을 상징하는 방망이가 치유의 도구로, 죽음을 암시하는 촛농은 생명의 메시지로 뒤바뀐다. 할렘의 길거리에서 수집한 사물을 재활용한 결과다. 이런 그가 신작 10여점을 들고 서울 한남동 리만머핀을 찾았다.1963년 자메이카 세인트 앤드루에서 태어난 작가는 12살 때 부모와 함께 미국으로 이주했다. 미국 뉴욕과 뉴저지를 전전하다가 할렘가에 정착했다. 30대부터 거리에서 우연히 발견한 일상적인 사물로 할렘의 이야기를 전하기 시작했다. 그가 다루는 주제는 디아스포라와 인종차별, 민주주의, 공동체까지 다양하다.이번에 선보인 작품들은 코로나19가 휩쓸고 지나간 할렘의 모습을 담고 있다. 팬데믹으로 인해 장례식장마저 문을 닫았던 시절이다. 할렘의 주민들은 길거리에 추모 공간을 마련해야 했다. 작가는 매일 아침 양초를 들고 집을 나섰다. 세상을 떠난 이를 애도하기 위해 새로운 초를 놓고, 버려진 양초와 빈 병, 꽃다발을 수집했다.일반적인 시선에선 상처로 얼룩진 거리였겠지만, 예술가의 눈은 달랐다. 작가는 꺼져가는 촛불에서 치유의 희망을, 그리고 전염병도 갈라놓지 못한 공동체 의식을 발견했다. "제가 전하려던 메시지
과거 사대부들이 모여 살던 서울 북촌 한옥마을. 예스러운 기왓장 사이로 높이 10m가 훌쩍 넘는 미디어아트가 들어섰다. 시시각각 색깔과 형태가 바뀌는 이 영상은 4억개가 넘는 동물 이미지 데이터를 기반으로 인공지능(AI)이 생성해낸 것. 튀르키예 출신의 세계적인 미디어아티스트 레픽 아나돌(39·사진)의 '기계 환각-LNM: 동물'이다.'미술계의 이단아'는 그를 표현하기에 낡은 수식어가 된 지 오래다. 요즘 그의 AI 작품은 주류 무대에 오르내린다. 지난해 개관한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구형 공연장 '스피어'의 외관을 장식했고,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서 열린 그의 개인전은 300만명이 넘게 찾으며 전시 기간이 네 번이나 연장됐다. 올해 1월 정·재계 유력인사들이 모인 세계경제포럼(WEF, 다보스포럼)에선 자연을 다룬 신작들을 선보이며 환경 보호의 중요성을 역설했다.다보스포럼에서 공개한 자연 이미지의 '진화'한 버전을 들고 방한한 그를 26일 북촌 푸투라 서울에서 만났다. 기술의 첨단을 달리는 그가 '아시아 첫 개인전'의 무대로 서울의 구도심 북촌을 고른 이유는 뭘까. "과거의 지혜를 간직한 자연은 미래를 위해 지켜야 할 대상이죠. 서울의 옛 모습을 대표하는 공간에서, 미래의 기술로 자연을 다룬 AI 작품을 선보이고 싶었습니다."북촌의 과거와 AI의 미래가 만나다"이 향수 한번 뿌려 보시겠어요? 열대우림에서 수집한 50만개의 향기 분자를 바탕으로 저의 AI가 만들어낸 냄새입니다. 아, 그리고 사진은 거울이 있는 이 방이 가장 잘 나와요."전시장에서 만난 아나돌에게 전시 공간 소개를 요청하자 유쾌한 미소와 함께 이런 답변을 들려줬다. 시청
영국의 세계적 작가 데이비드 호크니(87)에게 명성을 안겨준 건 1960년대 ‘수영장’ 시리즈였다. 미국 로스앤젤레스(LA)의 정취에 매료된 그는 현지 수영장을 화폭에 옮겼다. 쏟아지는 햇볕과 약간의 움직임에도 예민하게 일렁이는 물은 까다로운 소재다. 작가가 수영장에 푹 빠지게 된 이유다.한국 작가 강유진(47)의 수영장 그림은 호크니와 비슷하면서 다르다. 호크니가 수영장을 통해 LA 타지 생활의 이국적인 낭만을 옮겼다면, 강유진의 수영장은 어릴 적 뿌리로 회귀하는 작가의 여정이다. 금세 마르는 아크릴 물감 대신 두꺼운 에나멜페인트를 고수한 것도 차별화되는 지점 중 하나다.서울 인사동 선화랑에서 ‘강유진표 수영장’을 만날 수 있다. 작가가 지난해 미국 버지니아의 레지던시에 머물며 영감을 얻은 신작을 포함해 30여 점이 걸렸다. ‘환상의 파편: 풍경의 새로운 시각’이란 전시 제목이 암시하듯 작품에는 실제 풍경과 초현실적인 이미지가 뒤섞였다. 도심, 공항, 정원 등 외국의 풍경과 작가의 기억에 자리 잡은 수영장 이미지를 나란히 놓은 결과다.1977년 서울에서 태어난 작가는 줄곧 떠돌이였다. 유년기에 아버지를 따라 독일에 머물렀다. 서울대 미술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했고, 영국 골드스미스 칼리지에서 순수예술 석사 학위를 받았다. 결혼한 뒤로도 뉴욕과 유타, 네바다 등 미국 곳곳을 옮겨 다니다가 최근에는 버지니아에 정착했다.강 작가가 본격적으로 수영장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건 2000년대 중반 영국 유학생 시절이다. 습하고 흐릿한 기후가 이어지는 가운데, 유난히 밝고 쨍했던 어느 날 수영장을 찾았다. 다섯 살 무렵부터 늘 취미로 찾은 수영장이었다.
“여러분은 지금 육로가 아니라 하늘길로 민통선을 통과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개성까지 20㎞, 평양까지 160㎞입니다.”태풍 9호 종다리가 한반도에 접근하던 21일 오전. 비바람을 뚫고 찾은 경기 파주 임진각 평화누리 공원에서 탑승한 케이블카에서 흘러나온 음성이다. 6·25전쟁의 총탄 흔적이 남은 철교, 지뢰 매설을 경고하는 철조망 표지판이 폭풍전야의 긴장감을 간직하는 듯했다.비무장지대(DMZ) 일대가 거대한 미술관이 된다. 평화누리에서 30일부터 열리는 ‘DMZ OPEN 전시: 통로’를 통해서다. 1년에 한 번 DMZ를 일반인에게 개방하는 ‘DMZ OPEN 페스티벌’의 일환으로 개최되는 전시다. 경기도가 주최하고 경기관광공사가 주관한다.국내외 12명의 작가가 작품 32점을 출품한 이번 전시는 ‘통로’를 주제로 DMZ의 의미를 돌아본다. 전시를 공동 기획한 김선정 아트선재센터 예술감독은 “우리는 그동안 DMZ를 경계를 나누고 통로를 가로막는 공간으로 인지해왔다”며 “누군가 지날 수 있는 통로이자 다양한 생명체가 살아가는 공간으로서의 DMZ에 주목했다”고 설명했다.전시는 마치 관람객이 긴 통로를 지나듯 구성했다. 출발점인 평화누리 곳곳에 설치된 노순택의 사진 연작 ‘분단인 멀미’가 먼저 눈길을 끈다. 중국과 북한 접경지대에서 바라본 북한의 모습을 흔들리는 초점으로 촬영한 작품이다.임진각 평화곤돌라를 타고 임진강을 지나는 길목엔 노원희의 ‘바리데기’ 연작 121점이 놓였다. 황석영 작가가 2007년 신문에 연재한 소설 <바리데기>를 위해 제작된 삽화 연작이다. 탈북민 소녀 ‘바리’가 혼자 영국으로 건너가 정착하는 과정
서울 한남동 갤러리바톤에서 개인전을 열고 있는 김덕희 작가는 저해상도 영상기기를 고집한다. 꼬마전구처럼 큼지막한 RGB 픽셀 칩을 사방에 흩뿌리는가 하면, 남들이 애써 감추는 케이블도 전시장 바닥에 그대로 노출한다. 흐릿하게 흘러나오는 영상이 호기심을 자아낸다.김 작가는 비(非)미술적인 소재를 통해 세계의 작동 원리를 탐구해 왔다. 코로나19가 창궐하던 시기 제작한 ‘하얀 그림자’ 연작이 대표적이다. 작가 자신과 지인들의 손을 본떠 만든 모형 내부에 발열 장치를 삽입하면서 비대면 시대에 사라져가는 체온을 형상화했다. 2021년 시작한 ‘밤’ 시리즈에선 녹아내린 파라핀을 통해 무질서한 혼돈의 세계를 시각화했다.발광다이오드(LED) 디스플레이를 활용한 이번 신작들은 ‘시간’의 본질에 관해 질문한다. “인간은 현실을 살아가지만, 원자 단위의 세계에선 시간이란 개념 자체가 없죠. 우리가 움직인다고 생각하는 영상들, 과거에서 미래로 이어지는 시간의 흐름도 전부 인식의 결과에 불과하다는 생각에서 출발했습니다.”이런 생각의 계기는 작가가 일본에서 유학하던 2000년대 무렵 퇴근길에 마주친 네온사인이었다. 처음에는 간판의 불빛이 회전하는 것처럼 보였다. 램프 하나하나를 톺아보니 그저 깜빡임을 반복할 뿐이었다. 세상사도 마찬가지였다. 전시 제목은 ‘사과와 달’. 거대한 천체나 주먹만 한 과일이나 똑같은 물리 법칙이 작용한다는 사실을 떠올린 뉴턴의 일화에서 따왔다.이번 전시의 설치 작품 ‘움브라’(2024)의 RGB 램프들이 큼지막한 것도 픽셀의 기본 단위를 잘 보여주기 위해서다. 높이 2m짜리 네 개의 디스플레이가 각각 동
가느다란 구리 선으로 점과 점 사이를 잇는다. 텅 빈 공간이 어느새 점과 선의 운명적인 조우로 채워진다. 미국을 대표하는 현대조각가 존 배(86·사진)의 ‘철사 조각’이 제작되는 원리다.무(無)의 공간에서 유(有)를 창조해내는 건 그의 작품만이 아니다. 작가가 걸어온 길이 그랬다. 국내 예술인의 인지도가 해외에서 전무하다시피 한 시절부터 미국 뉴욕에서 한국미술의 첨병 역할을 했다. 1937년 서울에서 태어난 작가는 독립운동가 아버지를 따라 12살 때 미국으로 건너갔다. 재능은 타고났다. 1952년 첫 개인전을 열었을 당시 15세에 불과했다. 뉴욕의 명문 사립미술대학인 프랫인스티튜트에 4년 장학생으로 입학했고, 졸업 직후 모교 역사상 최연소 교수로 임용됐다.작가는 뉴욕 한인 예술가들의 구심점 역할을 했다. 백남준, 김환기, 김창열, 백건우 등 이름난 화가와 음악가가 그의 집을 거쳐 갔다. 오는 9월 한국국제아트페어(KIAF)-프리즈 서울 기간 그의 작품이 한국을 찾는다. 서울 삼청로 갤러리현대에서 그의 1960년대 초기 철 조각부터 철사로 제작한 근작까지 30여 점을 만나볼 수 있다. 전시는 10월 20일까지.안시욱 기자
"여러분은 지금 육로가 아닌 하늘길로 민통선을 통과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개성까지 20㎞, 평양까지 160㎞입니다."태풍 9호 종다리가 한반도에 접근하던 21일 오전. 비바람을 뚫고 찾은 경기도 파주 임진각 평화누리 공원에서 탑승한 케이블카에서 흘러나온 음성이다. 6·25전쟁의 총탄 흔적이 남은 철교, 지뢰 매설을 경고하는 철조망 표지판이 폭풍전야의 긴장감을 간직하는 듯했다.850m에 걸친 하늘길 끝에 나타난 건 다름 아닌 자갈밭이었다. 흑과 백의 자갈이 임진각 평화곤돌라 종착점의 옥상을 반으로 가르고 있었다. 작품의 정체는 독일에서 활동하는 한국 작가 지비리의 '균열-회색지대'(2018). 전시 기간 중 두 종류의 자갈은 관람객들의 움직임에 의해 서서히 섞인다. 남과 북의 경계가 점차 흐려지길 바라는 염원이 담긴 작품이다.비무장지대(DMZ) 일대가 거대한 미술관이 된다. 경기도 파주 평화누리에서 30일부터 열리는 'DMZ OPEN 전시: 통로'를 통해서다. 1년에 한 번 DMZ를 일반인에게 개방하는 'DMZ OPEN 페스티벌'의 일환으로 열린 전시다. 경기도가 주최하고 경기관광공사가 주관했다.국내외 12명 작가가 작품 32점을 출품한 이번 전시는 '통로'를 주제로 DMZ의 의미를 돌아본다. 전시를 공동 기획한 김선정 아트선재센터 예술감독은 "우리는 그동안 DMZ를 경계를 나누고 통로를 가로막는 공간으로 인지해왔다"며 "누군가 지날 수 있는 통로이자 다양한 생명체가 살아가는 공간으로서의 DMZ에 주목했다"고 설명했다.전시는 마치 관람객이 긴 통로를 지나듯 구성됐다. 출발점인 파주 임진각 평화누리 곳곳에 설치된 노순택의 사진 연작 '분단인 멀미'가 먼
'현실보다 진짜 같은 전시'.지난 몇 년 사이 유행처럼 자리 잡은 '몰입형 전시'가 추구하는 방향성이다. 희귀한 컬렉션을 영상으로 재현하거나 미지의 세계를 간접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을 조성하는 식이다. 초고화질 영상을 송출하는 발광다이오드(LED) 스크린, 또는 최신형 가상현실(VR) 기기를 동원했다는 전시 홍보 문구를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만나볼 수 있는 이유다.이러한 트렌드에 역행하는 작가가 있다. 서울 한남동 갤러리바톤에서 개인전을 열고 있는 김덕희 작가는 저해상도 영상기기를 고집한다. 꼬마전구처럼 큼지막한 RGB 픽셀 칩을 사방에 흩뿌리는가 하면, 남들이 애써 감추는 케이블도 전시장 바닥에 그대로 노출한다. 흐릿하게 흘러나오는 영상이 오히려 호기심을 자아낸다. 몰입감이 여느 몰입형 전시 못지않다.비(非)미술적인 소재를 통해 세계의 작동 원리를 탐구해온 그다. 코로나가 창궐하던 시기 제작한 '하얀 그림자' 연작이 대표적이다. 작가 자신과 지인들의 손을 본떠 만든 모형 내부에 발열 장치를 삽입하면서 비대면 시대에 사라져가는 체온을 형상화했다. 2021년 시작한 '밤' 시리즈에선 녹아내린 파라핀을 통해 무질서한 혼돈의 세계를 시각화했다.LED 디스플레이를 활용한 이번 신작들은 '시간'의 본질에 대해 질문한다. "인간은 현실을 살아가지만, 원자 단위의 세계에선 시간이란 개념 자체가 없죠. 우리가 움직인다고 생각하는 영상들, 과거에서 미래로 이어지는 시간의 흐름도 전부 인식의 결과에 불과하다는 생각에서 출발했습니다."이런 생각의 계기는 작가가 일본에서 유학하던 2000년대 무렵 퇴근길에 마주친 네온사인이었다. 처음에
영국의 세계적인 작가 데이비드 호크니(87)한테 명성을 안겨준 건 1960년대 '수영장' 시리즈였다. 미국 로스앤젤레스(LA)의 정취에 매료된 그는 현지의 수영장을 화폭에 옮겼다. 쏟아지는 햇볕과 약간의 움직임에도 예민하게 일렁이는 물은 까다로운 소재다. 작가가 수영장에 푹 빠지게 된 이유다.한국 작가 강유진의 수영장 그림은 호크니와 비슷하면서 다르다. 호크니가 수영장을 통해 LA 타지 생활의 이국적인 낭만을 옮겼다면, 강유진의 수영장은 어릴 적 뿌리로 회귀하는 작가의 여정이다. 금세 마르는 아크릴 물감 대신 두꺼운 에나멜페인트를 고수한 것도 차별화되는 지점 중 하나다.'강유진 표 수영장'의 세계 일주가 서울 인사동 선화랑에 펼쳐졌다. 작가가 지난해 미국 버지니아의 레지던시에 머물며 영감을 얻은 신작을 포함해 30여점이 걸렸다. '환상의 파편: 풍경의 새로운 시각'이란 전시 제목이 암시하듯 작품에는 실제 풍경과 초현실적인 이미지가 뒤섞였다. 도심, 공항, 정원 등 외국의 풍경과 작가의 기억에 자리 잡은 수영장 이미지를 나란히 놓은 결과다.1977년 서울에서 태어난 작가는 줄곧 떠돌이 생활을 겪었다. 유년기에 아버지를 따라 독일에 머물렀다. 한국으로 돌아와 서울대 미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했다. 이어 유학길에 올라 영국 골드스미스 칼리지에서 순수예술 석사 학위를 받았다. 결혼한 뒤로도 배우자와 함께 뉴욕과 유타, 네바다 등 미국 곳곳을 옮겨 다녔다. 최근 정착지는 미국 버지니아다.본격적으로 수영장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건 2000년대 중반 영국 유학생 시절이다. 습하고 흐릿한 기후가 이어지는 가운데, 유난히 밝고 쨍했던 어느 날 수영장을 찾았다
불의의 사고는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기도 한다. 미국 뉴욕의 대형 옥외광고 화가 제임스 로젠퀴스트(1933~2017)가 그랬다. 1960년 동료 두 명이 비계에서 추락하는 모습을 본 그는 일을 관두고 순수예술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앤디 워홀, 로이 리히텐슈타인 등과 함께 미국 팝아트를 이끈 거장이 탄생한 순간이다.작가의 어릴 적 기억은 미국 노스다코타주의 대평원에서 시작한다. 항공기 정비공이었던 아버지와 파일럿 어머니의 영향으로 여덟 살부터 모형 비행기를 만들며 놀았다. 하늘을 동경하며 살아온 유년기의 기억은 훗날 ‘시간 먼지-블랙홀’(1992) 등 우주를 연상케 하는 작업으로 이어졌다. 대중매체에서 차용한 이미지를 콜라주한 작품으로 사회적인 질문을 던지며 ‘시각적인 시인’으로 불리기도 했다.유작은 ‘본질적 존재’(2015)로 알려졌다. 화면 가운데 감상자를 비추는 거울을 중심으로 펼쳐진 유리 파편은 각각 하나의 멀티버스를 상징한다. 어린 시절 하늘을 동경한 작가는 2017년 먼 우주로 떠났다. 로젠퀴스트의 회고전이 서울 신문안로 세화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유료 전시이며 9월 29일까지.안시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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