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한경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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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희진 어도어 전 대표(사진)가 대표이사직 해임 이후 첫 공식 석상인 강연 무대에서 하이브와의 싸움에서 물러나지 않겠다는 의사를 강력하게 어필했다.

민 전 대표는 27일 오후 서울 이태원 일대에서 진행된 '2024 현대카드 다빈치 모텔' 강연에 연사로 나섰다.

강연의 주제는 'K팝의 공식을 깨는 제작자, 민희진의 프리스타일'이었으나, 하이브와 갈등을 이어가고 있는 민 전 대표가 대표이사 해임 이후 처음으로 공식 석상에 나서는 자리라 이목이 쏠렸다.

하이브는 민 전 대표를 향해 경영권 찬탈 의혹을 제기하며 감사권을 발동한 데 이어 대표이사 교체까지 감행했다. 이에 민 전 대표는 물론 뉴진스 멤버들도 반발했지만, 하이브는 사내이사 유지는 가능해도 대표직 복귀는 불가하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날 민 전 대표는 등장과 동시에 쏟아진 박수에 "제 편 같다. 이렇게 환대를 해주시다니"라고 말하며 환하게 웃었다.

그는 강연 초반 "이 자리는 K팝에 관해 이야기하는 자리이기 때문에 도파민 같은 걸 바라는 분들은 유튜브를 끄길 바란다"고 했지만, 중반쯤 디렉팅 관련 주제가 나오자 하이브 이야기를 꺼냈다.

"내가 레이블을 하고 싶다고 한 이유는"이라고 운을 뗀 민 전 대표는 "사실 돈이 중요하다. 내 가치를 환산해주는 거기 때문이다. 그런데 돈보다 중요한 게 정말 많다"고 말했다.

이어 "돈은 나의 가치를 환산하는 정량 지표라서 의미가 있는 거지, 그 자체로 그렇게 의미가 있진 않다. 돈보다 중요한 게 있다. 난 내 인생을 퀘스트라고 생각한다"면서 "과거 인터뷰에서 나의 인생을 실험하고 있다고 말했다. 뉴진스 데뷔 전이다. 실험할 거라 두렵고 떨리지만 설렌다고 말했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지금 경영과 프로듀싱의 통합, 분리에 대한 이견이 이슈이지 않냐. 난 분리되면 이 일을 할 의미가 없는 사람이다. 목표가 사장이 되는 것도 아니고, 회사를 차려서 돈을 벌겠다는 것도 아니었다. '이렇게 하면 잘 될 것 같은데 왜 안 하지?'라면서 내 인생을 퀘스트로 실험해 보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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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 전 대표는 "지금까지 소송비가 23억이 나왔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는 "의미 없는 소송을 계속 걸어서 대응을 못 하게 하다가 파산하게 하는 것"이라면서 "소송비 때문에 집을 팔아야 한다. 정말 다행이다 싶었고, 감사했다. 이걸 위해 집을 가지고 있었나 싶더라"고 말했다.

그는 "붙어서 X 싸우고 싶은데 돈이 없으면 못 싸우지 않냐. 쥐어패고 싶은데, 발로 막 뻥뻥 차고 싶은데…그럼 나도 소송을 막 미친 듯이 해야 한다. 근데 돈이 없으면 소송 못 한다. 대응도 못 한다. 그러니까 천만다행이다 싶었다. 남편과 자식이 없는 것도 정말 감사했다"고 했다.

이어 "3개월에 수십억씩 (소송비가) 늘어나더라. 일반 사람들이 감당되겠냐. 절대 못 한다. 그러니까 욕 한 번만 하겠다"면서 욕을 하더니 "내가 이겨야겠다 싶더라"고 말해 박수를 받았다.

민 전 대표는 "이런 싸움을 못 하게 하고 싶었다. 누군가 맞아줘야, 버틸 때까지 버텨줘야만 과정이라는 게 생긴다"면서 "이건 희대의 사건이다. 내가 꼭 다큐멘터리를 찍을 거다. 그래서 모든 과정을 다 밝힐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털릴 게 없으니까 이유를 만들어서 털지 않냐. 그렇지만 난 아무렇지 않다"면서 "없는 죄를 만들어낼 순 없다고 생각한다. 시간이 걸리는 게 거지 같지만 밝혀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이브가 강조하고 있는 '경영-프로듀싱의 분리'도 정면으로 비판했다.

민 전 대표는 "지금 대부분의 회사가 가치가 있는 무언가를 내세우고 '우리 이만큼의 가치가 있으니 투자하라'고 한다. 눈먼 돈을 막 모은다. 물론 상장해서 투자받는 게 더 큰 일을 할 수 있도록 하니 나쁜 게 아니다"라면서도 "어도어는 상장사가 아니지 않냐. 자유롭지 않냐. 나한테는 그런 부담이 없으니 최대한 시장의 밸런스를 맞춰가면서 아트도 하고, 비즈니스적으로도 엄청난 무언가를 보여주는 일을 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하이브를 향해 "나한테 프로듀싱만 하라는 건 업을 너무 모르는 거다. 실적도 내고, 질을 이렇게 끌어올린 나한테? 그럴 거면 이 회사에 안 왔을 거다"라고 질타했다.

"시스템이라는 말에 현혹되지 말라"고도 했다. 민 전 대표는 "사주가 고용인을 편하게 부려먹기 위해 만든 거다. 고용인도 편하게 일하기 위해 시스템을 쓰는 거다. 시스템이 업의 발전을 가져오지 않는다. IT 회사나 제조업에서는 메커니즘이 있는 시스템인 건데, 업이 다르지 않냐. 사람으로 하는 일인 엔터업에 시스템을 도입할 거라면 도식적인 공장 시스템이 아닌, 더 세밀하고 소프트한 게 필요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방시혁 하이브 의장을 겨냥한 듯 "그분이 처음엔 나한테 빅히트에서 못 하는 거니까 사고를 치라고 했다. 박지원(하이브 전 CEO) 님은 나한테 복수하라고 했다. 원하시는 거 다 해드렸는데 왜 나를 이렇게 괴롭히냐"고 지적하기도 했다.
민희진 "하이브 소송비 23억, 집도 팔아야…난 이겨야겠다" [종합]
협업 파트너들도 언급했다. 강연을 시작하며 "애플 관계자분들이 단체로 응원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얘기하고 싶다"고 말한 데 이어 뉴진스의 뮤직비디오를 연출한 신우석 돌고래유괴단 감독에게도 "미안한 마음"이라고 했다.

민 전 대표는 "광고주가 광고주의 역할을 해야, 모델은 모델의 역할을 해야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처럼 인하우스에서 해줘야 하고 할 수 있는 역할이라는 게 있다. 아무리 능력이 있는 프리랜서를 쓴다고 해도 인하우스에서는 기본적으로 방향성이 있어야 한다. 연예기획사는 인하우스가 바로 서야 좋은 사람들을 쓸 수 있고, 좋은 사람들의 역량을 끌어올릴 수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우석 감독을 언급하며 "절대 건드리면 안 되는 사람이다. 이 감독님한테는 이래라저래라 안 했다. 그런데 감독님의 마음을 움직이는 게 나의 방향성이었다. 이분도 일하는 스타일이 '내가 이 일을 왜 해야 하지?'가 중요한 분이었다. 그 공감대가 맞아서 이런 일을 할 수 있었다. 최대한 자유롭게 작업했지만, 우리와 방향성의 결은 늘 같았다"고 밝혔다.

민 전 대표는 "엔터테인먼트업의 본질에 더 가까이 다가가서 궁극의 이상향을 이루는 게 K팝을 통해 이루고 싶은 것"이라면서 "철학과 예술은 비즈니스의 대척점에 있는 개념으로 인식된다. 돈이 되는 일은 대체로 아름답고 고상하기 어렵다는 선례와 인식 때문이다. 반면 자본을 멀리하면 아트도 현실에서 고립되기 마련"이라고 했다.

이어 "나는 이 상반된 인식의 결합을 늘 꿈꿔왔다. 자본시장은 늘 돈이 되는 것에 집중한다. 자본이 있어야 내가 추구하는 무형의 개념, 즉 미학과 철학 등이 더 관심을 받으며 밀도 있게 꽃을 피울 수 있다. 어찌 보면 뉴진스 멤버들은 이런 가치 있는 모험에서 일종의 연구원이나 마찬가지다. 데뷔 이후 매출과 실적으로 단기간에 이미 가능성을 증명했다. 엔터의 본질, 그 본연의 즐거움을 추구하며 양질의 결과물을 내고 그게 사업적으로 빛나 모든 경계를 허물었을 때 우리가 어디까지 이룰 수 있을지가 너무 궁금하다"고 설명했다.

끝으로 그는 강연을 마무리하며 뉴진스의 신곡 데모를 깜짝 공개했다.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