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서울레코드페어가 열린 서울 성산동 문화비축기지. LP 마니아의 축제라고 불리는 이 행사가 시작된 지 2시간 만에 최초공개판 LP를 손에 넣기 위한 대기 순번이 1500번을 넘겼다. 이날 선보인 최초공개판 LP 음반은 20개. 경기 수원에 사는 대학생 김모씨(24)는 “아침부터 달려 나와 겨우 혁오의 최초공개판 LP를 구했다”며 “최근 디즈니, 메이플스토리 등 애니메이션과 게임 OST(오리지널 사운드 트랙)도 LP로 즐길 수 있어 색다른 매력을 느낀다”고 말했다.
< 1만명 찾은 서울레코드페어 > 지난 21일 서울 성산동에서 열린 서울레코드페어에서 참가자들이 레코드판(LP)을 둘러보고 있다. 최근의 LP 인기를 반영하듯 이날 행사장은 종일 관람객으로 북적였다. 행사 관계자는 “해마다 1만 명 가까운 사람이 찾는다”고 말했다. /원종환 기자
< 1만명 찾은 서울레코드페어 > 지난 21일 서울 성산동에서 열린 서울레코드페어에서 참가자들이 레코드판(LP)을 둘러보고 있다. 최근의 LP 인기를 반영하듯 이날 행사장은 종일 관람객으로 북적였다. 행사 관계자는 “해마다 1만 명 가까운 사람이 찾는다”고 말했다. /원종환 기자
코로나19 시기 MZ세대(밀레니얼+Z세대) 관심에 힘입어 르네상스를 맞은 LP 시장이 다변화하고 있다. 엔데믹과 함께 오프라인 활동이 늘면서 성장세는 다소 꺾였지만, 각 세대의 니즈를 반영한 다양한 장르의 음악이 LP에 담기고 있다. LP 제조 기술도 발전하면서 업계에선 “코로나19 특수로 인한 거품이 빠진 이후 LP 시장이 성숙기에 접어들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예스24에 따르면 지난해 발매한 LP 음반은 3024종으로 전년 동기 대비 14.6% 늘었다. 집계를 시작한 이후 최초로 3000종을 넘기며 3년 만에 가장 높은 증가율을 기록했다. LP를 구매하는 연령층 비율도 고르게 바뀌었다. 2021년 51%를 차지한 MZ세대의 LP 구매 비율은 지난해 43%로 떨어졌다. 4050세대 비율은 같은 기간 42%에서 47%로 소폭 올랐다. 국내 LP 시장은 규모를 파악하기 위한 통계 자료가 없어 예스24의 LP 판매량을 척도로 활용한다.

"1500명 넘게 몰려와"…너도나도 사려고 '난리' 뭐길래?
예스24 관계자는 “LP를 유행처럼 소비하는 시기는 지났지만 LP 마니아를 겨냥한 발매 음반 수는 늘어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LP 시장은 2020년대 초 레트로 열풍과 코로나19가 맞물리며 크게 성장했다. 2020년 LP 판매 수량이 전년 대비 116.7% 증가한 이후 3년 연속 상승 곡선을 그렸다.

LP에 담아내는 음악은 팝송이나 7080 음악을 넘어 다양해지는 추세다. 지난해 개봉한 영화 ‘서울의봄’ OST가 올해 LP로 탄생한 게 대표적인 사례다. 서브컬처 게임 ‘에버소울’ OST와 국내 드라마 ‘눈물의 여왕’ OST, BTS 일본 데뷔 10주년 기념판 등 다양한 장르를 총망라한다. 업계 관계자는 “미술관 전시와 오디오북 기획 과정에서도 차별화된 음감을 선보이기 위해 LP를 활용하는 시도가 늘어나고 있다”며 “마이너하면서 특별한 LP만의 정체성이 시장에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런 트렌드와 맞물려 LP 제조 기술도 발전하고 있다. 2016년 문을 연 LP 제조사 마장뮤직앤픽처스는 LP를 찍어내는 프레싱 기계를 국산화했다. 이 회사는 커팅(공디스크에 음원을 새기는 과정), 스탬퍼(대량 생산을 위한 도장판 제작), 프레싱 등 LP 제작 전 공정을 수행할 수 있는 국내 유일한 공장이다.

하종욱 마장뮤직앤픽처스 대표는 “이청, 이태경 원로 등 베테랑 1세대 엔지니어들의 기술을 계승해 발전시키고 있다”며 “소릿골을 깊게 커팅하는 딥 그루브 방식을 고수하며 LP의 풍부한 음색을 살리고자 노력한 게 한 사례”라고 설명했다. 이어 “최적의 압력과 온도, LP 원료인 폴리염화비닐(PVC) 성분값 등을 연구한 결과 첫 생산을 시작한 2017년보다 LP의 노이즈를 절반 이상 줄였다”며 “장인들이 한 땀 한 땀 완제품을 검수하는 게 해외 LP 제조사와 다른 차별 포인트”라고 덧붙였다.

해외에서도 국내 LP에 대한 관심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하 대표는 “베트남 이탈리아 일본 몽골 등에서 LP 유통 문의가 들어오고 있다”며 “해외 LP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음색을 토대로 아시아를 대표하는 LP 회사로 나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원종환 기자 won040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