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황금손의 나라
100년 전만 해도 자동차를 만들 수 있는 나라는 지구촌에 몇 안 됐다. 당시 자본과 노동력, 인프라가 뒷받침되던 독일, 이탈리아, 영국 외에 인구 1000만 명의 체코가 꼽혔다. 자전거를 만들고자 했던 체코 청년들이 의기투합해 1906년 2기통 자동차를, 이듬해 4기통, 그 이듬해 전륜구동 8기통 자동차까지 내놓은 것이 시작이었다. 지금도 유럽 여러 나라에서 가성비를 앞세워 차량 시장을 파고들고 있다. 그래서 체코는 ‘금손의 나라(Czech Golden Hands)’로 불린다. 체코산업기술박물관에만 가봐도 유럽판 실리콘밸리로 불릴 정도의 황금손 청년들의 아이디어와 손재주로 제조 강국이 됐음을 한눈에 알 수 있다.

그만큼 글로벌 기업들이 연구개발(R&D) 전진기지로 체코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최근에는 ‘반도체 허브’로 뜨고 있다. 대만 TSMC는 반도체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기지를 인건비가 저렴한 체코에 전진 배치했다. 글로벌 전력 반도체 기업 미국 온세미도 전기차, 재생에너지, 인공지능(AI) 반도체 생산을 위해 2조원 이상을 준비하고 있다. 이 밖에 BMW는 자율주행차 시험주행장을 체코에 뒀고, 한국의 두산중공업은 2009년 발전설비의 핵심부품인 터빈 생산 원천기술을 보유한 체코의 스코다파워를 인수했다.

이 때문인지 지난주 열린 한·체코 비즈니스포럼은 그 어느 때보다 북적였다. 양국의 정상뿐 아니라 삼성, SK, 현대자동차, LG 등 한국의 스타 기업인들과 체코의 경제계가 자리를 함께했다. 유럽연합(EU)에서 열린 비즈니스포럼 중 가장 큰 규모였다. 미래의 ‘굿 파트너’를 찾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다. 현대차는 체코 스코다일렉트릭과 친환경 교통수단을 개발하는 데 한뜻을 모았고, 포스코는 철강제조공장 냉각·열교환 특성 기술을 개발하기로 했다. 미래차, 배터리, 첨단로봇 분야에서 56건의 협력 아이디어를 교환했다. 양국의 상공회의소도 양국 경제협력을 지원하기 위해 스터디그룹을 구성하는 등 소통의 깊이를 더했다.

체코 시장도 재미있다. ‘황금손의 나라에서 통하면 세계에서도 통한다’는 말이 유명하다. 정교하고 섬세한 기술력을 지닌 체코인들에게 통하면 EU에서 통하고 세계에서 통한다는 얘기다. 공급망 측면에서 보나 미니 수요처로 보나 최적의 파트너가 아닐 수 없다. 한국도 여러 차례 국제기능올림픽을 석권하고 BBC(바이오·배터리·칩) 산업을 일으킨 아시아 제조 금손 아닌가?

체코 프라하의 ‘핫플’(핫플레이스)로 카렐교가 유명하다. 다리에 우뚝 선 수호성인으로 추앙받는 얀 네포무츠키 신부의 동상을 만지면 소원이 이뤄진다고 한다. 원래 회색빛 동상이지만 황금손들이 만져서(?) 황금색으로 반짝반짝하게 변했다. 양국의 기업인이 ‘팀 체·코리아’로 한뜻을 모아 미래 첨단산업에서 두 나라가 값진 인사이트를 얻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