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기후소송 헌재 판결이 부른 '후폭풍'
헌법재판소는 탄소중립기본법이 2031년 이후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설정하지 않아 2050년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할 실효적 장치를 갖추지 못했다는 이유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이번 결정에 따라 정부와 국회는 2026년 2월 28일까지 2031년 이후 감축 경로를 구체적으로 마련해 탄소중립기본법을 개정해야 한다.

이번 기후소송은 온실가스 감축 관련 입법과 정부의 정책을 세대 간 갈등 차원에서 정조준하고 있고, 그 파장이 경제 전반에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많은 관심이 집중된 재판이었다.

탄소중립은 전 세계가 합심해 현재 사용 중인 화석에너지를 재생에너지 혹은 원전과 같은 무탄소에너지로 대체해야 달성할 수 있는 녹록지 않은 목표다. 전 세계 화석에너지 소비량은 2022년 기준 116억5600만TOE(석유환산톤)이고, 2050년까지 남은 날 수는 1만591일이다. 따라서 하루도 쉬지 않고 매일 대형 원전 1기 혹은 태양광 패널 400만 장에 해당하는 백만TOE의 화석에너지를 무탄소에너지로 대체해야 2050년 탄소중립이 가능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실현 가능해 보이지 않는다.

물론 탄소중립은 최종 목표로서 가치가 있다. 하지만 최종 목표에 이르는 경로는 여전히 ‘빈칸’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어떤 획기적인 미래 기술이 개발되느냐에 따라 목표와 경로 모두 언제든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가령, 이산화탄소 저장 기술은 화석에너지 사용 연장을, 에너지 저장과 수소 기술은 재생에너지 확대를, 소형 원전 기술은 원전 비중을 높이는 경로로 이어질 것이다. 하지만 어떤 기술이 언제 어떤 수준으로 개발될지는 현시점에서 아무도 가늠할 수 없다. 더욱이 미래 기술 개발이 예상보다 많이 지연되면 목표 자체가 수정될 가능성도 여전히 존재한다.

우리나라의 탄소중립 경로는 2년 주기로 향후 15년을 대상으로 수립하는 전력수급기본계획으로 구체화된다. 기술 개발, 경제 여건 등과 관련한 불확실성을 고려해 향후 15년의 계획만 구체화하고 그 이후는 빈칸으로 놓아둔 채 2년마다 계획기간을 2년씩 늘려가는 매우 현명한 방법이다.

문제는 전력수급기본계획은 상위법인 탄소중립기본법이 정한 온실가스 감축목표와 정합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번 헌재 결정에 따라 2031년 이후 온실가스 감축 경로가 구체화되면 재생에너지 잠재량, 기술 개발 속도, 예산 등 현실 제약을 무시하고 그저 장밋빛 전망에 기댄 채 목표 수치에 꿰맞춘 비현실적 계획이 만들어질 공산이 크다. 마치 조감도만 멋진 사상누각과 같다.

실물경제에서 법정 계획을 무시할 사업자는 거의 없다. 특히, 공기업의 사업계획은 철저히 법정 계획에 맞춰진다. 따라서 법정 계획의 실패는 공기업의 실패로 이어지기 일쑤다. 가령, 탄소중립의 현실적 가교 에너지인 액화천연가스(LNG)를 화석에너지라는 이유로 대폭 축소한 계획이 작성되면 가스공사는 장기계약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향후 무탄소에너지 확대가 지체돼 이를 메꾸기 위한 LNG 수요가 예측 경로에서 벗어나 크게 증가하면 천연가스 장기계약 부족은 곧바로 가스 수급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

탄소중립 목표와 경로를 구체화한 법률 제정이 곧 기후변화 방지와 미래 세대 기본권 보호를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현실을 무시한 법률 제정은 기후변화도 막지 못하고, 실물경제의 실패만 초래할 수 있다. 이번 기후소송 청구인인 20주 차 태아의 장차 행복권이 수치화될 탄소중립 경로로 지켜질지 의문이다. 에너지 수급 불안이라는 또 다른 부담만 더 남겨줄 것 같아 미안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