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선진국 맞아?…"가상자산 규제는 방글라데시 수준" [한경 코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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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9일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법 시행을 전후해서 가상자산 제도화의 해외 선진 사례에 대한 많은 질문을 받았다. 미국과 유럽 등의 동향은 잘 알려졌지만, 비교적 규모가 작은 국가들의 규제 현황은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있기가 어렵다.
출처가 확실한 데이터를 보여 주는 P사의 인공지능 검색엔진을 사용해서 세계 각국의 가상자산 규제 현황을 조사해 보았다. 그 결과는 꽤 놀라웠다.
그래서 인공지능 엔진에 △가상자산에 법적 프레임워크를 제공하는 국가(그룹1), △개인은 가상자산 거래가 가능하지만, 금융기관의 취급은 금지된 국가(그룹2), 그리고 △가상자산이 완전히 금지된 국가(그룹3)의 목록을 요청했다.
그리고 해당 국가들과 그룹들에 대한 객관적이고 다면적인 평가를 위해 인당 국내총생산(GDP per capita), 민주주의 지수(Economist Intelligence Unit Democracy Index 2023), 그리고 글로벌 혁신 지수(WIPO Global Innovation Index 2023)를 조사했으며, 그룹별 평균을 구했다.
그 결과는 다음과 같다. 표에서 확연히 드러나듯이, 세 그룹은 경제 발전 수준, 민주주의 지수, 혁신 역량 모두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법적 프레임워크를 갖춘 그룹1 국가들의 평균 1인당 GDP는 6만7917 달러로, 가상자산을 전면 금지한 그룹3 국가들의 4619달러나 금융기관만 금지한 그룹2 국가들의 8311달러와 비교해 현저히 높다. 민주주의 지수에서도 그룹1 국가들은 평균 7.76점으로, 다른 두 그룹(4.08점, 5.58점)을 크게 상회한다. 글로벌 혁신 지수(GII)에서도 그룹1 국가들은 평균 61.26점으로, 다른 그룹들(40.79점, 41.72점)을 큰 격차로 앞서고 있다.
이 데이터는 선진국일수록 가상자산에 대해 더욱더 개방적이고 체계적인 접근을 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스위스, 싱가포르, 미국, 호주, 독일, 영국 등 세계 최고 수준의 선진국들이 모두 그룹1에 포함되었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이는 단순한 기술 수용성의 문제를 넘어 국가의 수준과 경쟁력, 그리고 혁신 역량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역으로 말하면 개발이 덜 된 나라일수록, 그리고 덜 민주적인 나라일수록 가상자산에 적대적이라는 뜻이다. 그룹2와 그룹3에 속한 개발도상국 정부들이 가상자산의 거래와 사용을 자국 법체계로 관리할 역량이 없는 것인지, 또는 해당 국가들의 정부나 문화가 폐쇄적이고 권위주의적 성향인지 이 지표들만으로는 정확히 판단할 수 없다. 그러나, 그룹1 국가들과 나머지 그룹 국가들 사이의 현격한 지표 차이는 가상자산의 합법화 및 제도화를 미루고 있는 국가일수록 선진국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잘 보여 준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그룹3 국가가 되는 일은 피했다는 것이다. 2018년 1월, 박상기 당시 법무부장관은 「암호화폐 거래소 폐지 특별법」을 예고했고 법무부 내부에서 “선량한 국민이 사행성 가상통화 사기 및 투기에 빠지지 않게 하고, 기존 투자자들이 그곳에서 빠져나오도록 하기 위해 가상통화 위험성을 경고할 필요가 있다”는 내용의 문서가 작성되었다는 보도도 있었다. 당시 법무부의 뜻대로 가상자산이 전면 불법이 됐다면 우리는 그룹3 국가 신세가 됐을 것이다.
한국에도 가상자산에 대한 법적 프레임워크가 일부 도입되었다. 특금법 시행령 개정안을 통해 가상자산사업자의 범위, 가상자산의 범위, 실명 확인 입출금 계정 발급 기준 등이 정의되었고,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법을 통해 가상자산의 정의, 이용자의 예치금과 가상자산 보호, 불공정거래행위 규제 등에 대한 법적 기반이 마련됐다.
그러나 이는 가상자산 산업을 완전히 제도권으로 흡수하기 위한 소위 ‘가상자산 업권법’ 또는 ‘가상자산 기본법’으로 보기에는 미흡한 점이 많다. 특금법 시행령 개정안은 자금세탁 방지에 초점을 맞춘 법안이고,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법은 거래소 관리·감독이 주요한 내용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업계에서는 시급하고 필수적인 이용자 보호에 대한 ‘1단계 입법’이 이루어졌으니, ‘2단계 입법’을 통해 유럽의 MiCAR(Markets in Crypto Assets Regulation)와 같은 가상자산 기본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한국은 그룹2 국가다. 기관뿐 아니라 법인의 가상자산 투자 및 거래도 사실상 차단된 특이한 그룹2 국가다. 개인의 거래는 허용되지만 법인의 거래가 차단된 국가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다.
가상자산 제도화에 있어 선진국 수준의 접근이 필요하다. 대한민국의 인당 총생산, 민주주의 지수, 글로벌 혁신 지수 등은 그룹1 국가들의 평균에 근접하거나 그 이상이다. 즉, 우리의 경쟁 상대는 그룹2, 그룹3이 아닌 그룹1 국가들이다. 스위스, 싱가포르는 물론 미국, 일본 유럽 선진국들은 이미 제도를 정비하고 가상자산 산업 육성 및 진흥을 시작했다. ‘4차 산업혁명’, ‘디지털 경제’ 시대를 그들이 앞서 나가고 있다.
인식의 전환,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 가상자산은 법인과 기관이 건드려서는 안 되는 위험한 장난감이라는 인식을 빨리 타파해야 한다. 시간은 우리 편이 아니다.
▶이 글은 암호화폐 투자 뉴스레터 구독자를 대상으로 다양한 관점을 제공하기 위해 소개한 외부 필진 칼럼이며 한국경제신문의 입장이 아닙니다.
조미현 기자 mwise@hankyung.com
한국경제신문의 암호화폐 투자 뉴스레터 '코알라'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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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9일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법 시행을 전후해서 가상자산 제도화의 해외 선진 사례에 대한 많은 질문을 받았다. 미국과 유럽 등의 동향은 잘 알려졌지만, 비교적 규모가 작은 국가들의 규제 현황은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있기가 어렵다.
출처가 확실한 데이터를 보여 주는 P사의 인공지능 검색엔진을 사용해서 세계 각국의 가상자산 규제 현황을 조사해 보았다. 그 결과는 꽤 놀라웠다.
가상자산 규제로 분류한 국가들
기준은 한국이다. 한국 현재 개인의 가상자산 투자는 자유롭고, 기업과 기관의 가상자산 거래, 보유, 투자는 금지되어 있으며, 특금법 시행령 개정안과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법이 시행되어 가상자산의 제도화가 시작 단계에 있지만, 아직 가상자산에 대한 포괄적인 법적 프레임워크를 제공하고 있지는 않은 상태다.그래서 인공지능 엔진에 △가상자산에 법적 프레임워크를 제공하는 국가(그룹1), △개인은 가상자산 거래가 가능하지만, 금융기관의 취급은 금지된 국가(그룹2), 그리고 △가상자산이 완전히 금지된 국가(그룹3)의 목록을 요청했다.
그리고 해당 국가들과 그룹들에 대한 객관적이고 다면적인 평가를 위해 인당 국내총생산(GDP per capita), 민주주의 지수(Economist Intelligence Unit Democracy Index 2023), 그리고 글로벌 혁신 지수(WIPO Global Innovation Index 2023)를 조사했으며, 그룹별 평균을 구했다.
그 결과는 다음과 같다. 표에서 확연히 드러나듯이, 세 그룹은 경제 발전 수준, 민주주의 지수, 혁신 역량 모두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법적 프레임워크를 갖춘 그룹1 국가들의 평균 1인당 GDP는 6만7917 달러로, 가상자산을 전면 금지한 그룹3 국가들의 4619달러나 금융기관만 금지한 그룹2 국가들의 8311달러와 비교해 현저히 높다. 민주주의 지수에서도 그룹1 국가들은 평균 7.76점으로, 다른 두 그룹(4.08점, 5.58점)을 크게 상회한다. 글로벌 혁신 지수(GII)에서도 그룹1 국가들은 평균 61.26점으로, 다른 그룹들(40.79점, 41.72점)을 큰 격차로 앞서고 있다.
이 데이터는 선진국일수록 가상자산에 대해 더욱더 개방적이고 체계적인 접근을 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스위스, 싱가포르, 미국, 호주, 독일, 영국 등 세계 최고 수준의 선진국들이 모두 그룹1에 포함되었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이는 단순한 기술 수용성의 문제를 넘어 국가의 수준과 경쟁력, 그리고 혁신 역량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역으로 말하면 개발이 덜 된 나라일수록, 그리고 덜 민주적인 나라일수록 가상자산에 적대적이라는 뜻이다. 그룹2와 그룹3에 속한 개발도상국 정부들이 가상자산의 거래와 사용을 자국 법체계로 관리할 역량이 없는 것인지, 또는 해당 국가들의 정부나 문화가 폐쇄적이고 권위주의적 성향인지 이 지표들만으로는 정확히 판단할 수 없다. 그러나, 그룹1 국가들과 나머지 그룹 국가들 사이의 현격한 지표 차이는 가상자산의 합법화 및 제도화를 미루고 있는 국가일수록 선진국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잘 보여 준다.
대한민국은 현재 어느 그룹일까
한국은 2017년 말 정부의 '가상통화 관련 긴급대책' 발표로 금융기관의 가상자산 투자가 전면 금지되었으며, 그 기조는 2024년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즉, 한국은 현재 그룹2에 속한다.그나마 다행인 점은 그룹3 국가가 되는 일은 피했다는 것이다. 2018년 1월, 박상기 당시 법무부장관은 「암호화폐 거래소 폐지 특별법」을 예고했고 법무부 내부에서 “선량한 국민이 사행성 가상통화 사기 및 투기에 빠지지 않게 하고, 기존 투자자들이 그곳에서 빠져나오도록 하기 위해 가상통화 위험성을 경고할 필요가 있다”는 내용의 문서가 작성되었다는 보도도 있었다. 당시 법무부의 뜻대로 가상자산이 전면 불법이 됐다면 우리는 그룹3 국가 신세가 됐을 것이다.
한국에도 가상자산에 대한 법적 프레임워크가 일부 도입되었다. 특금법 시행령 개정안을 통해 가상자산사업자의 범위, 가상자산의 범위, 실명 확인 입출금 계정 발급 기준 등이 정의되었고,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법을 통해 가상자산의 정의, 이용자의 예치금과 가상자산 보호, 불공정거래행위 규제 등에 대한 법적 기반이 마련됐다.
그러나 이는 가상자산 산업을 완전히 제도권으로 흡수하기 위한 소위 ‘가상자산 업권법’ 또는 ‘가상자산 기본법’으로 보기에는 미흡한 점이 많다. 특금법 시행령 개정안은 자금세탁 방지에 초점을 맞춘 법안이고,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법은 거래소 관리·감독이 주요한 내용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업계에서는 시급하고 필수적인 이용자 보호에 대한 ‘1단계 입법’이 이루어졌으니, ‘2단계 입법’을 통해 유럽의 MiCAR(Markets in Crypto Assets Regulation)와 같은 가상자산 기본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대한민국은 어느 그룹으로 가야 할까
세계은행의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2023년 인당 총생산(GDP per capita)은 32423달러다. 위 표의 출처에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지수(Democracy Index)는 8.09, 글로벌 혁신 지수(GII)는 58.6이다. 이 세 지표만 보면 대한민국은 그룹1에 벌써 진입했어야 한다.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한국은 그룹2 국가다. 기관뿐 아니라 법인의 가상자산 투자 및 거래도 사실상 차단된 특이한 그룹2 국가다. 개인의 거래는 허용되지만 법인의 거래가 차단된 국가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다.
가상자산 제도화에 있어 선진국 수준의 접근이 필요하다. 대한민국의 인당 총생산, 민주주의 지수, 글로벌 혁신 지수 등은 그룹1 국가들의 평균에 근접하거나 그 이상이다. 즉, 우리의 경쟁 상대는 그룹2, 그룹3이 아닌 그룹1 국가들이다. 스위스, 싱가포르는 물론 미국, 일본 유럽 선진국들은 이미 제도를 정비하고 가상자산 산업 육성 및 진흥을 시작했다. ‘4차 산업혁명’, ‘디지털 경제’ 시대를 그들이 앞서 나가고 있다.
인식의 전환,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 가상자산은 법인과 기관이 건드려서는 안 되는 위험한 장난감이라는 인식을 빨리 타파해야 한다. 시간은 우리 편이 아니다.
김민승 코빗 리서치센터장은...
코빗 리서치센터 설립 멤버이자 센터장을 맡고 있다. 블록체인과 가상자산 생태계에서 벌어지는 복잡한 사건과 개념을 쉽게 풀어 알리고, 다른 관점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를 이해하도록 돕는 일을 한다. 블록체인 프로젝트 전략 기획, 소프트웨어 개발 등의 경력을 가지고 있다.
▶이 글은 암호화폐 투자 뉴스레터 구독자를 대상으로 다양한 관점을 제공하기 위해 소개한 외부 필진 칼럼이며 한국경제신문의 입장이 아닙니다.
조미현 기자 mwi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