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지금은 이름이 ‘레뷰’가 된 인플루언서 마케팅 서비스, ‘위드블로그’가 시작이었다. 식당, 카페 등 개인 사업자들이 블로그를 통해 홍보를 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없던 시절, ‘블로그 체험단’이라는 개념을 만든 서비스다.

위드블로그는 2006년 ‘블로그 칵테일’을 창업하고 3년 지나 거둔 첫 성공 사례다. 당시 대부분 벤처 기업이 온라인 서비스에만 몰두할 때, 몇 안 되는 O2O(Online to Offline) 모델이다. 위드 블로그는 6년 후 회사를 매각할 때까지 총괄했다. 회사 매각 후에는 스타트업 엑셀러레이터 ‘더벤처스’에서 투자자로서 O2O 플랫폼 기업들의 성장을 지원했다. 2018년에는 ‘카모아’라는 렌터카 플랫폼에 창업 멤버로 합류해 다시 스타트업 전선에 복귀했다. 그 세월이 10년이 넘는다. 여러 경험을 거치며 O2O 서비스가 자리 잡는 방법을 나름대로 깨우쳤다고 생각한다.

초기 O2O 서비스, 성장의 열쇠는 사람에게 달렸다 [긱스]
<카모아 초창기, 파트너 업체에 상주하며 고객에게 직접 차량을 인도하기도 했다>

2021년 카모아가 시리즈 B 투자로 100억원을 유치하며 본격적인 규모 확장에 나섰다. 내가 할 일은 거의 끝났다고 생각했다. 스스로 초기 회사를 성장시키는 일을 잘 한다고 생각한다. 또, 그 단계가 제일 보람있고 즐겁다.

기회는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2022년 코로나 19로 술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며, 와인, 위스키, 전통주 등 일부만 즐기던 문화가 드디어 대중화를 맞이했다. 새로운 플랫폼이 뿌리내릴 수 있는 가능성을 엿봤다. 내 방법론을 다시금 검증하고 싶었다.

술, 특히 수입 주류 시장은 영세한 유통 구조로 소비자가 접근하기 어려웠다. 렌터카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대형 마트에서 구할 수 없는 술은 남대문 주류 시장에나 가야 볼 수 있었다. 또, 같은 제품이라도 점포마다 가격이 달라서 합리적인 구매를 하려면 온라인 커뮤니티 등지에서 시세 확인은 필수였다. 여기에 현금 결제 압박까지… ‘레몬 마켓’ 전형을 보여준다. 어디서 무엇을 파는지, 가격은 얼마인지 발품을 팔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정보 비대칭성이 강한 시장이다.

반대로 플랫폼이 개입해 혁신할 수 있는 여지가 많다고 볼 수도 있다. 시장을 양지로 끌어 올리는 역할에는 플랫폼이 제격이다. 지금까지 많은 스타트업이 중고차, 렌터카, 부동산 등 레몬 마켓의 정보 비대칭을 해소하는 서비스로 성공을 맛봤다.

2020년 국세청은 온라인 결제와 현장 픽업 방식으로 술을 판매하는 '스마트 오더' 방식을 허용함으로써 주류 통신 판매 활로를 마련했다. 키햐가 등장한 시기는 코로나19로 인해, 와인, 위스키 등 수입 주류 수요가 절정에 다다른 2022년이었다. 관세청 무역통계를 보면 위스키의 경우, 2019년 약 2만t에서 2021년 약 1.5만t까지 하락했다가 2022년 들어 약 2.7만t까지 상승했다.

데이터만 보면 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사업이다. 하지만 현장에서 듣는 목소리는 또 다르다. 우리가 찾아간 수입사와 도매사 반응이 그랬다. ‘지금도 잘 되는데 뭐하러 일을 늘리냐', ‘주류 시장은 렌터카와는 다르다', ‘안될 거다’ 등 부정적인 의견이 많았다. 특히 ‘당신처럼 앱을 만든다고 우리를 찾아오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 지 아냐'는 쓴소리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

그럴만하다. 요즘은 실력있는 개발자들이 많고, 로우코드 플랫폼도 워낙 성능이 좋아서 예전보다 앱 개발 문턱이 많이 낮아졌다. 문제는 플랫폼이 제 역할을 하도록 생태계를 만드는 일이었다. 유통사를 입점시키기 위해 우리는 갖은 노력을 했다. 제안서를 우편으로 보내면 그대로 휴지통에 갈까 봐 택배 상자에 넣어서 보내고, 일일이 전화를 돌리며 미팅을 잡았다. 만나더라도 혹여 이들이 키햐와 나를 신뢰하지 않을까 이력서를 정리하고 카모아 때 했던 인터뷰를 프린트해서 보여줬다. 이러한 정성에도 키햐에 입점하겠다는 1호 도매사는 몇달 간 나타나지 않았다.

픽업 매장 파트너십을 늘리는 일도 마찬가지다. 매번 거절의 연속이다. 하지만 계속 시도하는 수밖에 없다. 오전에 직원들과 모이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전화 영업이었다. 목표 지역에 위치한 점포에 전화를 돌리고 내방 일정을 잡았다. 고객이 아닌 영업 전화라는 사실을 확인한 사장들은 태도가 심드렁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각자 개인기로 어떻게든 만나 보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보통 식당 브레이크 타임에 해당하는 2시부터 5시 사이다. 쉴 새 없이 점포를 돌다 다시 사무실에 모여 성과를 취합한다. 각자 직급이 무색하게 첫 두 달여는 현장 영업으로, 발로 뛰는 일이 주였다. 지루하게 이어지는 노동에도 성과는 스무 개 남짓. 초기 파트너십을 늘리는 일은 이렇게 힘들었다.

첫 도매사와 픽업매장은 우연한 기회로 따냈다. 계속되는 거절로 설득할 기회조차 얻지 못하던 차였다. 타들어 가는 속으로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지인에게 하소연을 했다. “나랑 같이 일했던 디자이너가 식당 하고 있는데 연결시켜줄까?”. 그 뒤로는 지난 고생이 무색할 만큼 진척이 빨랐다.

그 디자이너 출신 사장을 설득하는 일은 간단했다. 키햐 픽업 매장은 자영업자들이라면 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도착한 술을 보관하다 고객에게 전달만 하면 된다. 수수료를 챙길 수 있으니 용돈벌이 삼아 할 수 있다. 그는 흔쾌히 수락했고, 도매사 연결까지 약속했다. 10년째 거래하고 있는 삼부주류라는 업체가 있었다. 그가 직접 자리를 만들어준 덕분에 우리는 키햐를 도매사에 직접 소개할 기회를 얻게 됐다.

새벽같이 온갖 자료를 들고 삼부주류로 갔다. 이사, 전무, 상무까지 와서 우리 이야기를 들었다. 아직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회사였지만, 도매사들에게 통신 판매라는 새로운 먹거리를 만들어 주려는 비전과, 무엇보다도, 10년 동안 거래해왔던 고객이 힘을 실어준 덕분에 우리는 삼부주류와 함께 키햐를 본격적으로 시작할 수 있었다.

초기 O2O 서비스, 성장의 열쇠는 사람에게 달렸다 [긱스]
<키햐 초창기, 도매사 영업을 위해 발로 뛰던 시절>

삼부주류는 우리에게 일종의 투자를 했을 것이다. 계약을 성사시킬 수 있었던 이유는 2022년 주류 산업 급성장과 장밋빛 전망보다는, 우리가 보인 열정과 동반 성장을 향한 의지였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후발주자였다. 그 점이 오히려 우리를 빠르게 성장시키리라 믿었다. 선발 업체가 해소해주지 못한 페인 포인트는 우리가 해결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삼부주류와 손발을 맞추는 과정에서 키햐 유통 시스템 상당 부분을 구축할 수 있었다. 시스템은 거의 전적으로 이들이 일하는 방식에 맞췄다. 키햐에서 발생하는 주문이 자연스럽게 일과에 스며들도록 설계하고자 했다. 불편한 점이 있으면 무엇이든 말하도록 주문했고, 우리는 이를 개발로 해결하고자 노력했다.
초기 O2O 서비스, 성장의 열쇠는 사람에게 달렸다 [긱스]

<명절에 대량 주문이 몰릴 때에는 제품 포장과 배송을 맡는 등 적극적으로 유통사를 돕는다>

그 결과, 기존 서비스와 비교해 도매사 입장에서 상당히 사용하기 편한 구조를 만들었다고 자부한다. 회사마다 사용하는 발주서 양식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앞으로 파트너 도매사가 늘면 키햐 발주서 양식에도 대책을 세워야겠다는 의견에서 착안해, 발주서 양식 설정 기능을 개발했다. 또한 비정기적인 키햐 발주를 배송 기사들이 깜빡하는 경우가 있다는 의견에는 아침마다 주문을 상기시켜 줄 의도로 카카오톡 알림톡을 자동 발송하는 기능으로 해결책을 마련했다.

도매사들이 가장 높이 평가하는 ‘재고 공유 방식의 유통 시스템’ 또한 현장 목소리를 담아 개발했다. 각 파트너 도매사가 활동하는 지역 내 모든 재고와 유통을 담당하는 시스템이다. 쉽게 말해, 도매사 재고를 플랫폼이 함께 팔아주는 구조다. 기존 방식은 플랫폼에서 제품을 지정하고, 도매사는 전용 재고를 사입해 별도 관리한다. 거점 유통 시스템이 도매사 입장에서 부담이 적고 기존 업무 프로세스에 추가하기도 수월하다.

초기 O2O 서비스, 성장의 열쇠는 사람에게 달렸다 [긱스]
<작년 12월, 두배 성장을 이뤄 직원들과 자축하는 자리를 가졌다>

첫 계약 후 1년 반가량 지난 올해 7월, 키햐는 14번째 도매사와 계약했다. 유통하는 제품 라인업은 2천여 개로 업계에서 가장 많은 수준, 픽업 매장 수도 8백개 이상 늘어났다. 제품력이 강하니 고객이 몰리고, 픽업 매장을 설득하기도 훨씬 쉬워졌다. 가게 사장이 스스로 입점 문의를 하는 사례도 많아졌다. 도매사, 픽업 매장과 고객이 성장을 서로 견인하는 선순환 구조를 비로소 완성했다.

여기까지가 키햐를 설립하고 지난 2년간 겪은 과정이다. 플랫폼 비즈니스 치고는 헤쳐 온 방식이 투박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무작정 전화를 걸고, 어떻게든 자리를 만들어 사람들을 설득하는 과정은 멋져 보이지는 않다. 그리고 꽤 피곤한 일이다. 하지만 초기 O2O 서비스에서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는 일은 꼭 필요한 과정이라고 개인적으로 결론지었다. 자영업자들에게 블로그 마케팅을 처음으로 소구했던 위드 블로그와 렌터카 산업 디지털 전환을 이끈 카모아도 ‘문전박대’의 시기를 지났다. 초기 연약한 시기를 넘기고 탄탄한 비즈니스를 구축하려면 이 시기에 제대로 고생을 해야 한다.

초기 O2O 서비스, 성장의 열쇠는 사람에게 달렸다 [긱스]
<위드블로그 시절부터 전화·방문 영업을 마다하지 않았다>

힘든 시기를 버티려면 생각을 달리 하는 편이 좋다. 서비스에 대한 애정을 잠시 내려놓고, 플랫폼에 참여하는 공급자들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이다. 그동안 나와 팀원들이 가졌던 생각을 돌이켜 보면, 서비스 초기에는 마케팅이나 홍보 보다는 플랫폼에 참여하는 공급자들을 만족시키는 데 몰입했던 기억이다. 카모아에 입점한 렌터카 업체, 키햐로 따지면 수입·도매사와 픽업 매장이다.

역지사지 입장을 견지하는 이유가 단순히 문전박대를 잘 견디기 위한 목적은 아니다. 플랫폼 참여자들을 만족시키는 일은 새로운 계약을 유치하고, 서비스 완성도를 높이고, 고객을 끌어 모으는 효과를 불러 일으킨다.

키햐도 마찬가지였다. 삼부주류와 끈끈한 파트너십을 구축하고 서비스 내외적으로 긍정적인 변화가 일었다. 업계 입소문으로 이후 계약이 수월해졌으며, 늘어나는 제품 라인업에 주목한 고객과 픽업 매장이 모여들었다. 또한 파트너사들이 요구하는 개선점을 꾸준히 서비스에 반영하며 사용성을 높였다. 우리는 키햐 주문을 처리하는 과정이 도매사가 일상적으로 수행하는 업무에 완벽하게 녹아들기를 바라고 서비스를 개발했다.

이 과정은 필연적으로 혁신을 수반하고, 수혜는 고객들이 가져간다. 아직 개선 여지가 많지만, 일부 지역에 한해 익일 배송을 지원한다는 점이 대표적이다. 스마트 오더 업계에서 유일하다고 자부할 수 있다. 보통은 배송에 3일 이상 걸린다. 키햐 유통 시스템이 이들 업무 프로세스에 완전히 호환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바로 이런 매력에 빠져 O2O 서비스를 놓지 못한다고 느낀다. 키햐 론칭 후 1년 반 동안 우리가 통과한 과정은 불안하고, 지루하며, 피곤했지만, 보상은 모든 고생을 상쇄하고 남을 만큼 달콤했다. 플랫폼이라는 혁신의 상징과도 같은 서비스를 만들기 위해 가장 전통적인 접근을 해야 한다는 점이 재밌다고도 생각한다. 혹시라도 새로운 분야에서 O2O 서비스를 기획하거나, 기타 혁신적인 플랫폼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내 경험이 도움이 되었기를 바란다.



박영욱 키햐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