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사후 이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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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죽었지만 이혼 신청합니다.”
결혼 생활 15년 차인 가요코는 남편 사망 소식을 듣고 시댁과의 관계를 완전히 정리하기로 마음먹었다. 특히 “어떤 음식을 해 먹였길래 내 아들이 갑자기 죽었냐”는 시어머니의 폭언은 견디기 힘들었다. 가요코는 바로 ‘사후(死後) 이혼’ 절차를 밟았다. 2018년 한국에서도 출간된 일본 소설 <며느리를 그만두는 날>의 한 장면이다.
이런 일화는 소설 속만의 얘기가 아니다. 일본에서 사후 이혼으로 불리는 ‘인족(姻族·혼인으로 맺어진 인척) 관계 종료 신고’ 건수가 급증했다는 소식이 화제가 됐다. 2022년에만 3000건을 넘어 2012년(2213건)에 비해 30% 이상 늘었다. 세대 간 인식 차이가 가장 큰 이유였다. 젊은 층은 결혼을 개인 간 유대 정도로 보는데 노령층은 여전히 결혼을 가족 간 결합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배우자 사망 후에 배우자 가족을 부양하는 부담에서 벗어나려고 사후 이혼을 선택한다는 얘기다.
일본 민법(728조)에 따르면 생존한 배우자가 사후 이혼 신고서를 관공서에 내면 인척 관계를 끊을 수 있다. 배우자 사후에 언제든 신청할 수 있고 배우자 부모 동의도 필요 없다. 일반적 이혼과 달리 배우자의 유산 상속이나 유족연금 수급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신청자는 대부분 여성이다. 평균 수명이 남성보다 긴 데다 사회 통념상 여성에게 요구되는 배우자 가족에 대한 봉양 부담이 더 크기 때문이다. 일본에선 결혼하면 아내가 남편 성(姓)을 따르는데 본래 자기 성으로 돌아가겠다는 ‘복씨(復氏) 신고’도 인족 관계 종료 신청과 병행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에선 일본과 똑같은 형태의 사후 이혼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 민법이 인척 관계 청산 절차를 따로 규정하지 않아서다. 배우자와 사별 뒤 다른 사람과 재혼해야만 비로소 인척 관계가 법적으로 정리된다. 하지만 황혼 이혼이나 졸혼처럼 사후 이혼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늘면 한국에도 비슷한 절차가 생겨날 수 있다. 우리의 고령화 속도와 고부 갈등 정도를 보면 사후 이혼을 남의 일로만 여기긴 힘들 것 같다.
정인설 논설위원 surisuri@hankyung.com
결혼 생활 15년 차인 가요코는 남편 사망 소식을 듣고 시댁과의 관계를 완전히 정리하기로 마음먹었다. 특히 “어떤 음식을 해 먹였길래 내 아들이 갑자기 죽었냐”는 시어머니의 폭언은 견디기 힘들었다. 가요코는 바로 ‘사후(死後) 이혼’ 절차를 밟았다. 2018년 한국에서도 출간된 일본 소설 <며느리를 그만두는 날>의 한 장면이다.
이런 일화는 소설 속만의 얘기가 아니다. 일본에서 사후 이혼으로 불리는 ‘인족(姻族·혼인으로 맺어진 인척) 관계 종료 신고’ 건수가 급증했다는 소식이 화제가 됐다. 2022년에만 3000건을 넘어 2012년(2213건)에 비해 30% 이상 늘었다. 세대 간 인식 차이가 가장 큰 이유였다. 젊은 층은 결혼을 개인 간 유대 정도로 보는데 노령층은 여전히 결혼을 가족 간 결합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배우자 사망 후에 배우자 가족을 부양하는 부담에서 벗어나려고 사후 이혼을 선택한다는 얘기다.
일본 민법(728조)에 따르면 생존한 배우자가 사후 이혼 신고서를 관공서에 내면 인척 관계를 끊을 수 있다. 배우자 사후에 언제든 신청할 수 있고 배우자 부모 동의도 필요 없다. 일반적 이혼과 달리 배우자의 유산 상속이나 유족연금 수급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신청자는 대부분 여성이다. 평균 수명이 남성보다 긴 데다 사회 통념상 여성에게 요구되는 배우자 가족에 대한 봉양 부담이 더 크기 때문이다. 일본에선 결혼하면 아내가 남편 성(姓)을 따르는데 본래 자기 성으로 돌아가겠다는 ‘복씨(復氏) 신고’도 인족 관계 종료 신청과 병행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에선 일본과 똑같은 형태의 사후 이혼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 민법이 인척 관계 청산 절차를 따로 규정하지 않아서다. 배우자와 사별 뒤 다른 사람과 재혼해야만 비로소 인척 관계가 법적으로 정리된다. 하지만 황혼 이혼이나 졸혼처럼 사후 이혼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늘면 한국에도 비슷한 절차가 생겨날 수 있다. 우리의 고령화 속도와 고부 갈등 정도를 보면 사후 이혼을 남의 일로만 여기긴 힘들 것 같다.
정인설 논설위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