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의 추억] 아이들로 가득 찬 학교운동장…가난했지만 희망 넘쳤던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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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들의 이런 희생 위에, 1950년대 중반~1960년대 태어난 한국인들의 상당수는 고등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열심히 취업 공부하면, 노력한 만큼 좋은 직장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고도성장기에 빠르게 커나가고 있던 기업에 들어간 그들은 주 6일 근무에 야근을 마다하지 않고 한국의 산업화를 일궜습니다. 또한 그들은 월급을 모아 상대적으로 어렵지 않게 집 한채를 살 수 있었습니다. 조금만 재테크에 신경을 쓴 사람은 전세 끼고 아파트를 사서 프리미엄을 붙여 팔아, 상당한 자산을 쌓을 수도 있었습니다.
죽자사자 노력하면 사회적 성공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한 1950년대~1960년대 생들은 자신의 자녀들을 초등학교 때부터 학원에 보냈습니다. 자식들이 경쟁력을 갖추게 하기 위해서였죠. 고 박정희 대통령 집권 시절 청소년기를 보낸 그들은 '하면 된다'라는 박 대통령의 철학을 듣고 자랐습니다. 거리에도 교실에도 '하면 된다'라는 네 글자가 늘 펄럭였습니다. 알게 모르게 그 세대는 그런 생각에 젖어 들었습니다. 그래서 자녀들을 더 가르치면 더 큰 것을 이루게 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20세기 후반 급격한 도시화가 진행됐습니다. 지방에서 학교를 나온 사람들도 수도권에서 직장생활을 하거나 사업을 벌였습니다. 수도권은 더 과밀해졌고, 주택값은 올랐고 나은 삶을 향한 경쟁은 점점 뜨거워졌습니다. 베이비붐 세대의 자녀들은 그들의 부모 세대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치열한 경쟁 체제에 갇히게 됐습니다. 그런데 사실 1950년대~1960년대 생들이 초등학교 다닐 때 학원에 거의 가지 않았습니다. 기껏해야 주산학원 정도였습니다. 중학교 때도 소수의 아이들만 사교육을 받았습니다. 대입 과외를 받는 학생들이 있었지만, 지금처럼 심각한 수준은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1960년대 생들은 고교시절 전두환 정부의 과외금지 조치로 학교 수업만 들었습니다.
그런 그들이 지금의 '초경쟁사회'를 구축한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전국의 모든 대학과 직장과 직업을 일렬로 세워 등수를 매기고, 여러 그룹으로 나누는 희한한 정서는 과열경쟁 사회가 빚은 기이한 현상입니다. 지독한 경쟁의 과정을 겪은 요즘 세대는 그래서 단 1점만 높아도 그에 걸맞는 대접을 받아야 겠다는 욕망을 갖게됐습니다. 사교육업계는 그런 현상을 부추겨 큰 돈을 벌었습니다. 결국 이런 순위매기기 경쟁체제에선 1등부터 100등까지 모두가 불행하게 됩니다. 1등은 1등의 결과물이 행복을 보장하지 않아서 불행하고, 2등은 1등 못한 것 때문에 불행하고, 50등은 더 상위권으로 올라가지 못해서 불행하다 느낍니다.
출산율 0.65. 신입생 없는 초등학교 157개. 우리는 국가 소멸을 걱정하게 됐습니다. 이와 관련해 수많은 아이디어와 대책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가장 앞에 둬야 할 것은 ‘행복’이란 단어가 아닐까요. 청년들이 스스로 행복하다고, 살만하다고 느낄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습니다. 통지표를 들고 성적에 상관없이 환하게 웃으며 방학을 맞이하는 사진 속 아이들의 표정을 이 시대 청소년들과 청년들의 얼굴에서도 볼 수 있는 날이 빨리 오길 기대해 봅니다.
신경훈 디지털자산센터장 khsh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