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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문재인 정부에서 신혼부부에게 집 걱정을 덜게 해주겠다며 추진된 ‘신혼희망타운’이 사라지고 있다. 사업 초기엔 작은 크기와 실효성, 사업 지연 등의 논란이 겹치며 ‘희망고문타운’이란 오명을 달기도 했다. 그러나 수도권 분양가가 크게 오르면서 부담을 느낀 신혼부부는 여전히 신혼희망타운 공고가 나올 때마다 청약에 몰렸다. 신규 사업 승인을 내지 않고 있는 정부는 자연스럽게 새로운 공공분양 브랜드인 뉴홈으로 수요가 옮겨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사업이 사실상 폐기 수순으로 가며 청약 이후 입주를 기다리는 신혼부부는 입주가 늦어질까 노심초사하는 분위기다.
신혼희망타운, 다시 인기 높아졌다는데
신혼희망타운은 문재인 정부 당시 주거복지 로드맵에 따라 LH(한국토지주택공사)가 공급한 신혼부부 특화형 공공주택이다. 당시 정부는 15만 가구 공급 계획을 추진했다. 출산과 육아가 가능하도록 조성해 신혼부부의 내 집 마련 걱정을 덜게 해주겠다는 취지였다.그러나 사업 초기부터 신혼희망타운은 조롱의 대상이 됐다. 신혼희망타운은 수익공유형 모기지라는 특화상품을 통해 1.6%대 고정금리 대출을 제공한다. 대신 주택가격이 나중에 상승하면 수익을 정부와 나눠야 하는 단점이 있다. 일부 신혼희망타운은 선택권도 없이 수익공유를 해야만 했다. 여기에 작은 크기도 문제가 됐다. 애초 신혼희망타운은 전용면적 60㎡ 미만으로만 공급키로 했다. 신혼부부를 위한 제한이라고 했지만, 정작 수요자인 신혼부부들은 선택을 꺼렸다. 특히 전용면적 46㎡ 경우에는 방 2개에 화장실 1개가 겨우 들어가는 수준으로 설계됐다. 그래서 ‘신혼부부들이 외면하는 타운’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수요자가 외면하면서 일부 단지는 미분양 사태까지 벌어졌다.
그러나 최근 공급하는 신혼희망타운은 사정이 다르다. 공공주택 업무처리지침이 개정되면서 신혼희망타운의 크기가 커졌고, 공사비 상승과 고금리로 민간 분양 단지들의 분양가가 높아졌다. 서울에서는 중소형 가구 분양가가 10억원을 넘어가면서 다시 신혼희망타운을 찾는 수요가 늘었다.
올해 초 경기 위례와 서울 공릉에서 진행된 신혼희망타운 청약엔 1만2000명이 몰렸다. 위례 A2-7블록 신혼희망타운 본청약에선 143가구 모집에 8567명이 지원했다. 경쟁률은 59.9대 1에 달했다. 해당 단지의 공급 가격은 전용 55㎡ 기준 5억9000만~6억2000만원이었다. 비슷한 위치의 민간 분양 아파트의 공급 가격이 10억원에 육박하는 것과 비교하면 가격 경쟁력이 있다는 평가다. 서울 공릉 역시 139가구 청약에 3219명이 몰렸다. 23.2대 1의 경쟁률로, 서울임에도 공급 가격이 전용 59㎡ 기준 6억1000만원 수준인 점이 인기 비결이었다.
공급 취소되는 사업지 늘어나
신혼희망타운이 최근 다시 인기를 얻고 있지만, 앞으로는 찾아보기 어려워질 전망이다. 신혼희망타운으로 조성이 예정됐던 사업지가 모두 계획을 취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토교통부 등에 따르면 지난해부터 공급 계획이 취소된 신혼희망타운은 13곳으로, 공급 계획됐던 가구만 1만2111가구에 달한다. 추가 사업 승인도 이뤄지지 않으면서 신혼희망타운 사업은 폐기 수순을 밟게 됐다.국토부는 지난 4일 경기 남양주시 진접2 공공주택지구 A7블록 사업계획 승인을 취소했다. 신혼희망타운으로 755가구가 공급될 예정이었던 곳이다. 372가구는 2022년 12월 사전청약까지 진행했었다. 지난 3일엔 대구 연호지구 A-3블록 공공주택건설 사업계획도 취소했다. 이곳 역시 신혼희망타운이 지어질 곳이었다. 630가구 공급이 계획돼 있었지만, 사업이 취소되며 공급 계획도 무산됐다. 청약을 기다리던 신혼부부들에겐 날벼락이었다. 국토부는 사업 계획 취소에 대해 “사업 시행을 계속할 수 없는 사정이 생겼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해당 부지들은 새 정부의 공공주택 브랜드인 뉴홈으로 다시 공급될 예정이다. 그러나 사전청약까지 했던 신혼부부들은 “뉴홈도 나중에 입주할 때가 되면 계획을 취소하는 것 아니냐”는 반응이다.
업계에서도 연이은 사업계획 취소에 불만이 크다. 한 설계업체 관계자는 “기껏 공고도 내놓고 입찰도 했는데 이제와서 사업이 취소됐다고 한다”며 “정부 신뢰도를 스스로 무너뜨리는 것 아니냐”고 했다.
사업 지연에 계약자는 ‘위기’
신혼희망타운 사전청약에 성공한 신혼부부들도 최근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본청약 일정이 미뤄지는 사업지가 속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기 성남 낙생지구는 지난해 11월 본청약을 진행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내년 하반기로 계획이 연기되며 사전청약자들만 손해를 보게 됐다. 사업지 역시 부지 조성조차 시작되지 않았다. 애초 정부 홍보대로 2027년 입주를 기다렸던 신혼부부는 2030년에나 입주가 가능할 전망이다. 그마저도 사업이 추가 지연되면 아이가 중학교에 입학할 때 입주가 가능하다. 본청약이 늦어지면서 분양가가 오르는 것도 문제다. 사전청약 당시 3억원대 분양가를 예상했던 한 사업지는 사업이 지연되며 예상 분양가가 5억까지 올랐다. 사전청약을 진행한 신혼희망타운 중 본청약이 진행된 곳은 10곳이 되지 않는다. 사전청약의 경우 본청약이 늦어지더라도 당첨자에게 보상을 제공하지 않는다.본청약을 기다리고 있는 한 사전청약 당첨자는 “이러다가 다른 사업지처럼 신혼희망타운 공급 자체가 없어지는 것은 아닌지 무섭다”며 “내 집 마련 계획을 세운 게 모두 의미가 없어졌다”고 말했다.
유오상 기자 osy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