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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김상민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의 자문 아래 작성됐습니다.
간혹 직장에서 남의 연애 생활이나 자신의 연애 감정에 관해 얘기를 나누는 경우가 있다. 민감한 사생활일 수도 있지만 직장 동료와의 고민 상담이나 친해지는 과정에서 할 수 있는 말도 있는 만큼 직장 내 성희롱인지를 놓고 논란이 되는 단골 이슈다.
특히 지난 2018년 대법원이 “성희롱 관련 소송의 심리를 할 때는 그 사건이 발생한 맥락에서 성차별 문제를 이해하고 양성평등을 실현할 수 있도록 '성인지 감수성'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취지의 ‘성인지 감수성’ 판결(2017두74702)을 선고하면서 “딸 같아서” “농담삼아” 했던 말과 행동도 법적으로 충분히 문제될 수 있는 상황이다.
결국 직원들 사이의 일이라고 대강 대처했다가는 회사가 상당한 법적 책임을 지게 될 수 있는 상황이다. 여성폭력방지기본법이 제정되면서 ‘2차 피해’가 법률적인 개념으로 도입됐고, 이후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지원에 관한 법률 등이 개정되면서 사업주가 직장 내 성희롱 사실을 확인한 후 적절히 조치하지 않았을 때 받을 수 있는 법적·제도적 제재 조치가 강화됐기 때문이다.
“둘이 잘 맞겠네” 술자리 발언했다가…
음향기기 연구소에서 25년간 재직 중이던 A씨. 2021년 어느 날 인근 식당에서 같은 팀원들과 식사하던 중 여성 신입사원 B씨가 사는 곳을 알게 되자 "동료 남성 직원 C도 거기 사니 둘이 잘 맞겠다"고 농담조로 발언했다. C씨는 B씨보다 스무살 가량 나이가 많았다.이후 대화 과정에서 B씨가 치킨을 좋아한다고 하자 "C도 치킨 좋아하는데 둘이 잘 맞겠네"라고 재차 말했다. 이에 B씨가 "이제 치킨을 안 좋아하는 것 같다"고 선을 긋자 "C가 돈이 많은데 그래도 안 돼?"라고 재차 물었다.
B는 다음날 참지 않고 연구소장과 팀장을 잇달아 면담한 후 B에 대한 정직 징계를 요구했다. 이 과정에서 징계위가 개최됐고 결국 B는 3일의 근신 처분을 받게 됐다.
이에 만족하지 않은 B는 A를 상대로 정신과 치료비와 위자료 등 2400만원을 지급하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지난해 4월 서울중앙지방법원은 B씨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20살 가량 나이가 많은 남성 동료를 언급하며 이성적인 만남을 권유하는 듯한 말을 했다"며 "이에 원고가 완곡하게 거부의 의사를 표시했음에도 전혀 개의치 않고 더 나아가 돈 많은 남성이면 그 남성의 나이, 성격, 환경, 외모 등을 고려함이 없이 그보다 훨씬 젊은 여성이 위 남성과 이성적인 만남을 가져볼 수 있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고 꼬집었다(2022나23748). 이어 △B와 A 사이에 기존에 아무런 일면식도 없었던 점 △신입사원인 원고와 경력 25년 이상의 상급자인 피고 사이의 대화가 완전히 대등한 관계에서 이뤄졌으리라 보기 어려운 점 △다른 사원들이 같이 있던 점심 식사자리였던 점 등을 종합해 보면, 남성인 A의 이 사건 발언은 성적인 언동으로 여성인 원고가 성적 굴욕감을 느꼈을 것이라 충분히 잠작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A는 "‘노총각’인 남자 동료에 관한 농담에 불과할 뿐 남녀고용평등법 시행규칙 등에서 금지하는 ‘음란한 농담과 같은 성적인 언동’에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직접적으로 음란한 농담과 같은 언동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성희롱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성적 동기나 의도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음란한 농담이나 음탕하고 상스러운 이야기 외에도 ‘그 밖에 사회 통념상 성적 굴욕감 또는 혐오감을 느끼게 하는 것으로 인정되는 언어나 행동’도 성희롱으로 분류될 수 있다"고 일축했다.
다만 법원은 A에 대해 공식적 징계 조치가 이뤄진 점, 사건 이후 A의 팀이 변경되거나 B와 분리되는 등 피해를 최소화할 방법이 마련된 점을 근거로 "A는 B에게 위자료 300만원을 물어주라"고 판결했다.
열 번 찍으면 안 넘어오는 나무 없다? … 고백 공격도 ‘성희롱’
가정적 고백도 직장에서 자주 문제가 된다. 상대방이 사랑 고백을 받아들였거나 기분 나빠하지 않았다면 문제가 되지 않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엔 법적 문제가 될 수 있는 셈이다.특히 기혼자가 고백하거나, 둘의 관계가 상급자와 하급자 관계인 경우 더 그렇다. 최근 '고백 공격'이라는 신조어가 나올 정도다.
실제로 수원지법은 기혼 상급자가 여성 하급 직원에게 이성으로서 좋아한다고 고백하고, 직장 상사 이상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하급자의 반응에도 몇 차례 고백을 반복한 사건에서 직장 내 성희롱을 인정했다. 거절 이후에도 상급자는 고백을 계속하면서, ‘지금도 손을 잡고 싶은데 참는다’, ‘차라리 키스하고 뺨을 맞고 그만뒀어야 했는데, 내가 왜 여기까지 왔는지 모르겠다’는 말도 하고, 하급자의 이성 관계를 확인하려고 들었다. 이 사례에서 법원은 일방적·반복적 구애 행위가 있었던 점, 기혼 남성과 미혼 여성이 서로 이성적 호감을 느끼고 있더라도 이성 교제가 쉽사리 이뤄지기 어렵고, 부하 직원이 명시적으로 교제 거절 의사와 그 호감 표시에 대한 거부 의사를 밝힌 점 등을 고려해 성희롱에 해당한다고 인정했다.
김상민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당사자들의 상황 및 관계, 호감 표시 경위, 거절의 의사표시 여부 등 여러 사정을 고려할 때, 이성적인 호감을 표시하는 것도 직장 내 성희롱이 될 수 있다"며 "감정 표현이 어떻게 성희롱이냐고 반박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성인지감수성이 부족하거나 타인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사고방식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곽용희 기자/ 한경 좋은일터연구소 연구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