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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한 자산운용사가 해외 재간접펀드 투자손실의 책임을 두고 판매사인 대형 증권사와 벌인 소송에서 승소했다. 법원은 투자 대상인 해외 펀드를 만든 운용사가 회계 조작 사건에 휘말리면서 펀드 환매 중단 사태가 빚어졌지만, 이 재간접펀드를 설계한 운용사는 부실 상태 파악과 투자위험 설명 등의 투자자 보호 의무를 지켰다고 판단했다.
2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남부지방법원 민사12부(주채광 부장판사)는 A증권사가 B자산운용에 83억9000만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한 소송에서 최근 원고 패소 판결을 다(사건번호: 2021가합113042). 원고의 청구가 모두 기각됐다.
환매중단 수습하려 ‘先 보상 後 소송’
A증권사는 B자산운용이 2019년 설정한 해외 재간접 사모펀드 1호(설정액 101억원)와 2호(38억원)를 판매했다. 1호에 46명, 2호에 25명이 투자했다. 이 펀드는 외국 자산운용사 C사가 만든 크레딧펀드들에 투자했다. 이 펀드들은 주로 북미, 유럽, 호주의 소상공인 및 중소기업을 상대로 한 단기 선순위 담보대출이나 일시적으로 재무 상태가 악화한 기업을 상대로 한 대출로 수익을 내도록 설계됐다.그런데 C사가 회계 조작으로 2020년 미국 법원으로부터 영구적인 영업금지 명령을 받으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이에 따 C사가 법정관리에 들어갔고, 이 운용사의 펀드를 담은 국내 재간접펀드들도 환매가 중단됐다. A증권사는 이 사태를 수습하고자 펀드 투자자들에게 투자원금의 80%인 약 102억원을 보상금으로 지급했다. 그 후 B자산운용을 상대로 소송을 걸어 투자자 보상비용의 상당수를 달라고 요구했다. B자산운용이 해야 할 보상을 대신했으니 그만큼을 받아 가겠다는 얘기다. A증권사는 “B자산운용이 부실 상태 확인, 투자위험 설명 등 투자자 보호 의무를 위반했기 때문에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원펀드 운용사 회계 조작 탓…재간접펀드 운용사는 책임없어”
하지만 이 같은 주장은 법정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재판부는 “B자산운용이 펀드 설정 단계부터 각종 실사와 추가조사를 진행해 C사 펀드의 투자가 적법하게 이뤄진 것을 확인했다”며 “펀드별 상품설명서에도 ‘원금이 보장되는 상품이 아니다’, ‘위험등급이 6등급 중 2등급(높은 위험)’이란 내용 등 여러 투자위험을 상세히 기재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투자자 보호 의무를 위반했다고 보긴 어렵다”고 판단했다.A증권사는 “C사 펀드의 대출과 관련해 일부 소송이 진행 중이고 회계감사인이 유효의견을 제시하지 않는 대출도 있었다는 것을 B자산운용이 확인했다면 부실을 알 수 있었다”고 주장했지만, 이 역시 인정되지 않았다. 재판부는 “환매 중단의 원인은 C사의 회계 조작”이라며 “일부 자산에서 부실이 발생하고 소송이 제기된 것은 해당 펀드의 특성상 불가피한 일”이라고 했다. 금융투자업계에선 이번 판결이 펀드 투자손실이 대거 발생했다고 상품을 설계한 운용사가 판매사와 반드시 공동책임을 져야 하는 것은 아님을 보여주는 선례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판매사가 임의로 투자자에게 보상을 약속한 다음 운용사에 구상권을 행사하려는 움직임에도 제동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대형로펌 금융 담당 변호사는 “펀드 투자손실에 관한 책임 소재와 정도는 투자자와 판매사, 운용사가 치열한 심리를 통해 정해야 한다”며 “운용사에 구상권을 가진다는 전제로 판매사가 손실을 먼저 보상해주는 관행이 옳은지 살펴보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진성 기자 jskim102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