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직원 속옷사진 훔쳐보고…직원 자른 ’적반하장’ 대표 결국
범죄 피해를 본 근로자를 되레 무급휴직 처리하고 종국엔 해고까지 한 회사가 무급휴직 기간의 임금과 위자료 등 2000여만원을 물어줘야 한다는 법원 판결문을 받아 들었다. 형식적으로 무급휴직 처리했다고 해도, 회사의 귀책 사유 탓에 출근이 어려웠다면 임금을 고스란히 보전해 줘야 한다는 취지다.


여성 근로자 A씨는 주식회사 C에서 2020년 4월부터 9월까지 근무해왔다. B는 C사의 부사장이자 회사 주식 지분의 50%를 보유한 대표다.

B는 2020년 7월 어느 날, 회사에 출근해 A씨가 업무상 사용하던 노트북에 A씨의 네이버 계정이 자동로그인 돼 있던 것을 봤다. 나쁜 마음이 든 B는 메일함에 접속해 30회에 걸쳐 메일을 무단 열람했고, 15회에 걸쳐 A씨의 카카오톡 대화, 사진 등 파일을 다운로드받았다. 특히 A씨의 속옷 차림 등 내밀한 사진까지 다운로드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피해 직원은 2개월 무급휴직 기간 중 이직


다음날 이 사실을 알게 된 A씨는 충격을 받았고, 결국 회사의 다른 대표 D의 승인하에 2주간 재택근무를 하게 됐다. 2주간의 재택 이후 대표 D는 황당하게도 A씨에 대해 2개월간 무급휴직으로 처리했다.

길어진 무급휴직 기간에 불안해진 A씨는 D에 “고소 진행 결과가 언제 나오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어서 휴직 기간이 끝나면 어떻게 되는지 여쭤봅니다”라는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냈다. 이에 D는 “회사 사정이 좋지 않아 무급휴직만료일로 퇴사 처리하겠다”고 답장했지만, 곧바로 마음이 바뀌었는지 “휴직일이 종료되는 날부터 정상 출근하지 않을 경우 근무 의사가 없음으로 판단하고 퇴사 처리하겠다”는 내용의 카카오톡 문자를 보냈다. 복귀하기가 두려웠던 A씨는 2개월간 무급휴직 기간 중 다른 회사로 취직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GettyImagesBank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GettyImagesBank
가해자 B는 결국 기소돼 정보통신망이용촉진및정보보호등에관한법률위반(정보통신망침해등)죄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 80시간의 유죄판결을 선고받았다.

A씨는 법적 구제 절차에 나섰다. 심각한 정신적 피해에 대해 2200만원의 위자료를 청구했고, 무급휴직으로 처리된 기간 동안 받지 못한 급여 상당을 달라고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 "이직 이후 기간 동안의 임금은 지급 안해도 돼"


사건의 쟁점은 결국 A씨의 무급휴직 기간 중 월급을 지급해야 했는지, 또 무급휴직 기간 중간에 타사에 취업한 기간의 임금도 지급해야 하는지가 문제 됐다.

법원은 A씨의 일부 승소로 판단했다. 서울동부지법은 "B가 회사 총주식의 1/2 지분권자이고 부사장의 직책에 있는 데다 범행 이후에도 회사에 계속 출근했다"며 "이런 상황에서 A씨가 정상 출근할 것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데다, A씨는 범행 다음 날부터 2주 동안 재택근무(유급휴직)를 했고 이후 2달 동안 무급휴직 상태로 있었고 이후 다른 회사에 취직하면서 회사에 제대로 출근할 수 없었다"고 판시했다(2021가단150195).

이어 "범행 다음 날 부터 재취업 전날까지 정상 출근했더라면 얻을 수 있었을 이익을 손해배상으로 지급하라"고 판단했다. 다만 무급휴직 기간 월급 전부가 아닌, 새 회사에 취업한 이후 기간 동안의 임금은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A씨가 입은 정신적 손해에 대해선 1800만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판단했다. 법원은 "메일함에서 매우 내밀한 사진을 열람했다"며 "B는 부사장 직책에 있고 계속 출근했던 반면, A씨는 현실적으로 회사에 출근하기 어려운 점, 결과적으로 회사를 사직해야 했던 점 등의 사정을 모두 종합해 위자료를 1800만원으로 정한다"고 판단했다.

한 노동 전문 변호사는 "사용자의 범죄 행위로 인해 피해를 본 근로자에 대해서는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 책임을 지는 게 당연한데, 이 과정에서 꼼수를 부려 무급 휴직 처리한 상황"이라며 "형식적인 인사 처분과 상관 없이 실질적으로 직원이 출근하기 어려운 상황 등을 고려해 해당 기간 임금을 그대로 주라고 한 데 의미가 있는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직원에게 사과하고 위로금을 주기보다는 법적인 대응에 나서면서 되레 회사의 피해가 더욱 커진 상황"이라며 "대표자의 범법행위로 인한 리스크가 현실화 됐다면 소송으로 가기 전에 진화하는 편이 낫다"고 말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