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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 미제 사건으로 분류되던 '대전 국민은행 권총강도' 사건의 피고인들이 대법원에서 무기징역형을 확정받았다. 사건 발생 후 약 22년 만에 나온 결론이다. 완전 범죄로 끝날 것처럼 보였던 이 사건의 해결에는 보이지 않는 지문인 DNA(유전자 정보)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19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는 지난 14일 강도살인 혐의로 기소된 이승만(53)과 이정학(52)의 상고심 선고기일을 열고 무기징역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그대로 확정했다. 피고들은 양형 부당을 이유로 상고했으나 재판부는 "정상 참작하더라도 원심의 양형이 심히 부당하다고 할 수 없다"며 기각했다.
도주용 차량까지 따로 준비
피고들은 2001년 12월 21일 오전 대전 둔산동 국민은행 지하 주차장에 들어가 국민은행 현금수송차량이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같은 날 오전 10시경 현금수송차량이 도착했고, 은행 직원들은 현금 수송용 가방 2개와 007 가방 1개를 차에서 내렸다. 이승만은 직원들을 향해 권총을 겨누며 위협했고 공포탄 1발을 발사하는 동안 이정학은 몰고 온 승용차를 현금수송차량 뒤로 이동시켰다. 현장에 있던 직원 3명 중 2명은 현금수송차량 운전석 앞부분으로 급히 이동했으나, 나머지 한 명은 미처 피하지 못하고 조수석 방향으로 이동하면서 허리에 차고 있던 호신용 전기충격기로 대응하려는 자세를 취했다. 이승만은 그 모습을 보고 피해자를 향해 실탄 3발을 연달아 발사했다. 한편 이정학은 현금수송차량 뒤에 놓여있던 현금 3억원이 든 현금수송용 가방 등을 승용차 뒷좌석에 싣고 이승만과 함께 현장을 빠져나갔다.이들이 범행에 사용한 권총은 같은 해 10월 순찰 중이던 경찰을 차로 들이받은 후 빼앗은 것이었다. 범행 20일 전에는 범행 장소로 이동하는 데 사용할 차량을 훔쳤고, 도주에 사용할 차량을 추가로 훔치는 등 범행을 치밀하게 준비한 것으로 조사됐다.
불법오락실서 흔적 발견
범행 당시 피의자들이 도주차량에 남긴 마스크에 묻은 DNA가 범인 검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사건 발생 직후 국립과학수사연구소는 마스크에서 신원 미상의 DNA를 확보했는데 당시 기술로는 수사에 활용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보관만 했다. 이후 경찰은 2015년 충북의 한 불법 게임장을 단속하는 과정에서 달아난 이들의 소지품과 담배꽁초 등을 통해 다수의 DNA를 확보했고, 이 가운데 대전 국민은행 사건 당시 마스크에서 추출한 DNA와 일치하는 신원 미상의 DNA를 발견했다. 이후 경찰은 5년간 1만5000여 명의 용의자의 DNA를 일일이 대조한 끝에 지난해 8월 이승만과 이정학을 모두 검거했다. 사건이 발생한지 21년 만이다.두 사람은 재판 과정에서 서로를 주범으로 지목하며 살인의 직접 책임을 떠넘기기도 했다. 1심은 이승만을 주범으로 보고 무기징역과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 명령 20년을 선고했다. 이정학에게는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2심 재판부도 유죄로 판단했다. 다만 이정학에 대한 1심 판결은 취소하고 무기징역과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 명령 10년을 선고했다. 2심 재판부는 "이정학의 범행에 대한 죄책이 이승만보다 크게 가볍다고 보기 어렵다"며 "누범 기간 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 범행을 저질렀다"고 지적했다. 대법원도 2심 판단이 정당하다고 보고 그대로 확정(사건번호: 2023도12075)했다.
재판 과정에서 또 다른 장기 미제 사건인 '백선기 경사 피살사건'의 범인이 이정학인 사실도 드러났다. 백선기 경사 피살사건은 2002년 9월 20일 새벽 전주 금암2파출소에서 홀로 근무 중인 백선기 경사가 목과 가슴 등을 흉기에 찔려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이다. 당시 백 경사가 소지하고 있던 38구경 권총도 사라졌다.
장기 미제로 분류된 이 사건은 1심 선고 직전 이승만이 '백 경사 피살 사건의 총기가 어디에 있는지 안다'는 편지를 보내면서 수사가 재개됐다. 경찰은 수사를 거쳐 해당 범행이 이정학의 단독범행인 것으로 결론냈다.
민경진 기자 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