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증금 못받아 짐 안 뺀 세입자…대법원이 내린 판결은?
B씨는 2020년 4월 A사가 입주한 상가 건물을 사들였다. A사가 전 주인과 맺은 임대차 계약을 보증금 4200만원에 월세 420만원 조건으로 1년 연장하기로 했다. 연장된 계약은 2020년 11월 1일부터 2021년 10월 31일까지였다. A사는 계약 갱신을 요구했으나 B씨가 재건축을 이유로 거절하면서 갈등이 생겼다. A사는 계약이 만료된 후에도 4개월 넘게 건물을 사용하다가 지난해 2월 말 퇴거했다. A사는 퇴거 후에도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자 B씨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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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은 대법원까지 간 끝에 '임대차 계약이 끝난 뒤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으면 기존 계약이 유지된다고 봐야 한다'는 결론이 났다. A사의 경우 기존 계약기간이 끝난 뒤 점유하게 된 시기에 임차한 건물 주변의 부동산 시세가 올랐더라도, 추가로 점유했던 기간만큼의 임대료를 당초 계약 금액대로 지불하면 된다는 판결을 받았다.

대법원 "계약갱신청구권 일부 인정"

12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민사1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지난달 9일 A사가 B씨에게 낸 임대차보증금반환 소송(사건번호:2023다257600)에서 원고 일부승소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재판에서는 A사가 계약 종료 이후 건물을 사용한 4개월간의 월세를 얼마로 보느냐가 쟁점이 됐다. 보증금에서 그만큼을 뺀 만큼만 A사가 돌려받을 금액이기 때문이다. 앞서 1·2심은 B씨의 주장을 받아들여 시세에 따라 월 1300여만원으로 계산한 4개월분 월세를 보증금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1·2심 재판부는 “해당 기간 동안의 시가에 따른 차임이 약정 차임과 현격한 차이가 있으니, 임대차계약 종료 후 A사가 B씨에게 반환할 부당이득금의 액수는 해당 기간 동안의 시가에 따른 차임을 적용해 산정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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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상가건물 임대차에서 기간만료나 당사자의 합의 등으로 임대차가 종료된 경우에도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 제9조 제2항에 의해 임차인은 보증금을 반환받을 때까지 임대차관계가 존속하는 것으로 의제된다”며 “임대차 기간이 끝난 후에도 상가건물의 임차인이 보증금을 반환받을 때까지는 임차인의 목적물에 대한 점유를 임대차 기간이 끝나기 전과 마찬가지로 보호함으로써 임차인의 보증금 반환채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주변 시세 올랐어도 부당이득 아니다"

대법원은 B씨가 A사에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아 A사가 부당이득을 얻었다고 보지 않았다. 대법원은 “상가임대차법이 적용되는 상가건물의 임차인이 임대차 종료 이후에 보증금을 반환받기 전에 임차 목적물을 점유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임차인에게 차임 상당의 부당이득이 성립한다고 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상가임대차법이 적용되는 임대차가 기간만료나 당사자의 합의, 해지 등으로 종료된 경우 보증금을 반환받을 때까지 임차목적물을 계속 점유하면서 사용·수익한 임차인은 종전 임대차계약에서 정한 차임을 지급할 의무를 부담할 뿐이고, 시가에 따른 차임에 상응하는 부당이득금을 지급할 의무를 부담하는 것은 아니다”고 했다.

대법원은 임대차 계약이 끝났더라도 세입자가 보증금을 돌려받을 때까지 임대차 관계가 존속하는 것으로 간주하는 상가임대차법 9조 2항을 판단 근거로 제시했다. 세입자의 보증금 반환 채권을 두텁게 보호한다는 이 조항의 취지를 살려야한다고 본 것이다.

권용훈 기자 fac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