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불만에 인수인계 자료 삭제한 직원, 처벌한 방법 없나요
직원이 회사 내에서 자신의 처우에 대해 불만을 품는 경우는 적지 않다. 회사에 대한 불만을 품고 퇴사를 하는 사례도 있지만, 경우에 따라선 인수인계를 제대로 하지 않는 방식으로 일종의 보복을 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직장 '빌런'을 놔뒀다가는 후임이 골탕 먹는 데 그치지 않고 회사 내부에 나쁜 조직문화가 자리잡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직원들 보란 듯' 징계를 내리는 게 가능할까. 인수인계와 관련한 사례를 소개해 본다.

회사 처우에 불만 품은 빌런 … 퇴사 않고 ‘보복’

오랜 기간 동안 장애인콜택시를 운행하는 단체에서 총무를 담당하던 A씨는 2022년 1월 콜택시 기사로 발령이 났다. 인사직원을 현장으로 내려보낸 강력한 징계성 인사다.

A씨는 타 기관으로부터 특정인을 기사로 추천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도, 회사에 알리지 않은 상태에서 해당인을 기사로 특정한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A씨는 이런 인사발령에 대해 회사에 불만을 품었지만 차마 퇴사를 선택하지는 못했다. 대신 불만 표출의 방법으로 사업계획서, 공문, 정산보고서, 지출결의서 등을 자신의 컴퓨터에서 삭제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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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실을 안 회사 측은 지난해 4월 인사위원회에서 특정인 기사 추천 문제와 자료 삭제를 이유로 A에 대해 정직 3개월의 징계를 내렸다. 이에 대해 A씨가 부당하다며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재판 과정에서 A씨는 "(나도) 업무 인수인계를 받을 때도 전임자가 사용하던 컴퓨터와 문서파일이 저장된 USB를 건네 받았다"며 "문서 파일을 컴퓨터 바탕화면의 휴지통에 넣어두었을 뿐 임의로 삭제하는 방법으로 피해를 입힌 사실이 없다"고 주장했다.

나중에 회사가 비용을 들여서 어느 정도 파일을 복구했다는 점도 자신의 잘못에 비해 징계가 크다는 주장의 근거가 됐다.

문제는 인수인계 않고 퇴사 … 손해 입증 어려워

하지만 재판부는 A의 주장을 일축했다.
법원은 "삭제된 피고의 문서는 사업 운영의 지속을 위하여 보관해야 할 중요 문서"라며 "A가 (구두 등으로) 인수인계를 했다지만 회사는 위 문서들을 확인하기 위해 시간과 비용을 들였으며, 최종적으로 문서는 복구할 수 있었다고 하더라도 A의 행위는 고의적으로 피고의 사업 수행에 차질을 빚게 할 만한 행위"라고 지적했다.

이어 "원고 A가 담당한 총무 업무의 특성상 사업 운영에 필요한 문서를 저장·보존하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내용"이라며 "이를 임의로 삭제해 향후 피고의 사업 수행에 큰 차질을 빚을 위험을 발생시켰다"고 꼬집었다.

이를 근거로 "정직 3개월 징계처분은 사회통념상 현저하게 타당성을 잃어 재량권의 범위를 벗어난 위법한 처분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처럼 내부에 남아 있는 인력에 대해서는 맡은 업무나 자료의 중요성에 따라 중징계도 허용하는 것이 법원의 입장임을 알 수 있다.

문제는 아무런 인수인계를 하지 않고 회사를 퇴사하는 경우다. 이 경우엔 징계할 길이 없다. 그렇다면 손해배상을 청구해야 하는데 손해를 입증하기가 쉽지 않다.

회사의 다른 직원이 업무를 2개월에 걸쳐 정리해야 했고 본래의 업무를 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대체인력 1개월치 급여인 335만원을 달라는 소송도 제기된 바 있다. 이에 대해 법원은 "대체인력 1개월 급여만큼 손해를 입었다는 사실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며 기각한 사건도 있다(2022가단5289030).

퇴사나 인사 이동시 자료 접근권 차단해야

좀 더 구체적으로 결정한 법원 화해권고도 참고할만하다.
2019년 한 판촉물 제조업체에 경력직으로 입사한 웹프로그래머 B씨. 2020년 퇴사 이후 회사가 퇴직금을 주지 않는다며 402만원을 지급하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그런데 회사도 B를 상대로 3000만원을 지급하라는 반소를 제기했다

알고보니 B가 회사 외부에서 작업을 하겠다면서 2020년 3월에는 회사에 4차례만 들어왔고, 5월에는 코로나 검사를 받으러 갈거라며 연락이 두절된 이후 일방적으로 사직하겠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연락이 끊긴 것.

미팅을 하자며 회사에 들어올 것처럼 말하다가 약속을 계속 미루고 들어오지 않은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프로그램 개발이 어느정도 이뤄졌는지도 공유가 전혀 되지 않았다.

결국 새로운 프로그래머를 찾아 개발비용을 지불한 회사는 B씨를 상대로 무단퇴사로 인한 근로계약 성실의무 위배를 근거로 소송을 제기한 것.

하지만 소송은 법원서 화해로 마무리됐다.

법원은 B씨에게 나머지 퇴직금 청구를 포기하고, 회사도 B씨에 대한 소송을 포기하라고 결정을 내린 바 있다(2022가단5349505).

한 노사관계 전문가는 "회사가 퇴사자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쉽지 않고, 근로자도 잘못이 드러나자 현실적으로 타협한 사안으로 보인다"며 "회사가 이런 논란을 피하려면 평소 근태관리를 철저히 하되 인수인계 절차도 명확히 구비해 놓는게 좋다"고 말했다,

이어 "인사팀도 특정인의 퇴사나 인사가 결정된 직후엔 빠르게 관련 업무 자료를 확보하고 퇴사자의 접근권을 차단하는게 좋다"고 조언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