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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7월 대학 캠퍼스에서 동급생을 성폭행하려다 숨지게 해 사회적 공분을 산 20대 남성에게 중형이 확정됐다. 1심 법원은 검찰이 적용한 강간 살인 혐의 대신 이보다 형량이 낮은 준강간치사죄를 적용했다. 다만 죄질이 극도로 불량하고 비난 가능성이 높은 점을 고려해 준강간치사죄의 권고 형량(징역 11~14년)보다 높은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2심 법원과 대법원도 1심 판단을 유지했다.
피 흘리는 피해자 보고도 현장 떠났는데…
대법원 1부는 지난 27일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강간 등 살인) 혐의를 받는 전 인하대생 A씨의 상고심(사건번호: 2023도10886) 선고기일을 열고 징역 20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원심의 판단에 논리와 경험의 법칙을 위반해 자유 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증거능력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고 판단했다. A씨는 작년 7월 14일 저녁 재학 중이던 인천시 미추홀구 인하대 캠퍼스 근처에서 피해자 B씨를 만나 다음 날 오전 1시 22분경까지 다른 일행과 함께 술을 마셨다. 일행과 헤어진 뒤에는 만취한 B씨를 학생회실에 데려다주기 위해 인하대의 5층짜리 단과대 건물로 들어갔다. A씨는 부축하던 B씨를 건물 창문 창틀에 엎드린 상태로 걸쳐놓은 다음 성관계를 시도했다. 이 과정에서 B씨가 8m 아래 1층 바닥으로 거꾸로 떨어졌다.A씨는 곧바로 1층으로 내려가 피를 흘린 채 의식을 잃은 피해자를 발견했다. 하지만 자신의 범행이 발각될 것을 우려해 피해자의 옷가지 일부만 옆에 놓아둔 채 현장을 빠져나왔다. B씨는 같은 날 오전 7시경 머리뼈와 왼쪽 갈비뼈 골절 등을 포함한 다발성 손상으로 사망했다. 추락 직후 자취방으로 달아났던 A씨는 그날 오후 체포돼 구속 기소됐다. 검찰은 1심에서 A씨에게 살인죄를 적용해 무기징역을 구형했다. 검찰은 A씨가 B씨의 사망을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으므로 살인 행위에 미필적 고의가 있다고 판단했다. 미필적 고의로 인한 살인은 가해자가 사망할 가능성을 예상할 수 있었고, 사망해도 어쩔 수 없다는 인식을 할 때 인정된다.
법원 “고의성 없지만 죄질 극도로 불량”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1심 재판부는 "피고인에게 살인의 미필적 고의가 있지 않았다"며 강간 살인죄를 두고 무죄 취지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건물 구조나 상황을 잘 알고 있지 않았고 취한 상태였던 점, 주변 상황을 자세히 살피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는 점 등을 종합하면 추락할 수 있다는 위험을 확실히 인지하고 있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A씨는 사고 직후 현장을 이탈하는 도중 B씨의 속옷과 바지는 버리고 B씨의 배낭만 챙겨 자신의 주거지로 이동했다. 그 후 B씨의 배낭에 있던 태블릿PC로 자신의 휴대전화에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내고, 여러 차례 전화를 걸기도 했다.재판부는 이런 행위가 계획적으로 범행을 은폐하려 한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취한 상태여서 인지력이나 판단력이 상당 부분 떨어져 있었고, 추락 장소에 자신의 휴대전화와 신분증 등을 그대로 놓고 가기도 했다"고 밝혔다. 또 "평소 피고인과 피해자 사이의 어투와 사고 이후 보낸 메시지에 차이가 있는 점, 피고인이 자기 얼굴을 드러낸 채 영상전화를 건 점 등에 비춰보면 피고인이 자신의 알리바이를 입증하기 위한 목적으로 메시지를 보내고 전화를 걸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이에 재판부는 강간 살인죄 대신 준강간치사죄를 유죄로 인정해 A씨에게 징역 20년,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80시간 이수 등을 선고했다. 준강강치사죄의 양형 기준인 징역 11~14년을 훌쩍 뛰어넘는 처벌이다. 재판부는 "피해자와의 관계, 범행 방법, 범행 후 정황 등을 보더라도 죄질이 극도로 불량하고 비난받을 가능성이 높다"며 "피고인을 장기간 사회로부터 격리하는 엄중한 처벌을 해야한다"고 판시했다. 2심과 대법원도 1심 판결을 그대로 유지했다.
민경진 기자 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