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경쟁사가 빼간 핵심 인력…삼성은 어떻게 막았나
*이 글은 백종현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의 자문 아래 작성됐습니다.

OLED 핵심공정 장기간 근무한 A씨
中 소규모기업 우회취업에 “전직 안돼”
법원, 중대 영업비밀 수준 아니더라도
보호할 가치 있는 ‘사용자의 이익’ 침해로 봐



기술 우위가 기업의 핵심 경쟁력인 시대다. 기업을 넘어 국가 차원에서도 기술이나 기술인력의 유출은 민감한 이슈다. 최근 전직금지 가처분 신청이 최근 부쩍 늘어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최근 삼성디스플레이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디스플레이 공정에서 장기간 근무한 직원이 중국의 경쟁업체에 우회 취업한 것으로 의심되는 사안에 대해 전직을 제한할 수 있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50부는 지난 7월 삼성디스플레이가 A씨를 상대로 낸 전직 금지 가처분을 일부 인용했다.

2008년 9월 삼성디스플레이에 입사해 2009년부터 OLED 핵심 공정 중 하나인 ELA 공정에서 일해온 A씨는 지난해 1월 퇴사하고 같은 해 8월부터 직원이 7명에 불과한 중국의 한 업체에 취직했다. 겉으로는 소형 의료용 레이저 치료기기를 만드는 업체에 불과했지만 삼성디스플레이가 "실제로는 중국 경쟁업체에 우회 취업했다"며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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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은 삼성디스플레이의 손을 들어줬다. 법원은 “A씨가 일한 공정은 디스플레이 분야 국가 핵심기술에 속한다”며 “A씨가 축적한 노하우를 경쟁업체가 취득하게 될 경우 해당 업체는 기술 격차를 좁히는 데 상당한 시간을 절약함으로써 부당한 이득을 취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우리회사 겸직금지 약정부터 검토하자

삼성디스플레이처럼 가처분 신청을 인용 받기 위해서는 어떤 요건을 갖춰야 할까.

가처분 신청의 중요한 근거가 되는 '전직 금지 약정'은 근로자가 경쟁 업체에 취업해 근무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을 말한다. 다만 이런 약정이 자유롭게 인정될 경우, 근로자의 직업선택의 자유를 제한하는 데다 퇴직 후 근로자의 생계도 위협할 수 있기 때문에 유효성을 엄격히 판단해야 한다는 게 법원의 입장이다.

법원은 전직 금지 약정의 유효성을 판단할 때 △보호할 가치 있는 사용자의 이익 △근로자의 퇴직 전 지위 △전직 제한의 기간, 지역 및 대상 직종 △근로자에 대한 대가의 제공 여부 △근로자의 퇴직 경위 △공공의 이익 및 기타 사정 등을 고려한다.

이 중 핵심 쟁점은 주로 ‘보호할 가치 있는 사용자의 이익’이다. 반드시 부정경쟁방지법 상 ‘영업비밀’ 수준은 아니더라도, 사용자만이 가지고 있는 지식·정보로 근로자가 이를 제3자에게 누설하지 않기로 약정한 것, 고객 관계나 영업상의 신용의 유지도 ‘보호할 가치 있는 사용자의 이익’ 등이 이에 해당한다.

구체적으로 최근 판례를 살펴보자. 가처분을 신청한 기업(채권자)이 경쟁사보다 개발이 늦은 기술이라고 해도, 양산화의 정도나 불량품을 제외한 실제 수율 등 기술 우위가 있다면 이를 고려해 채권자의 보호가치를 인정한 사례가 있다(2022카합21499). 반면 경쟁사가 세계 시장점유율이 훨씬 높고 관련 특허와 고유기술을 다량 보유하고 있는 경우라면 보전 필요성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본 사례도 있다(2022카합10444).

결국 다른 업체와 구별되는 기술상 우위와 경쟁력을 판사에게 쉽게 전달하는 것도 가처분 신청 사건의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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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자에 대한 대가의 제공 여부’도 법원에서 상당히 중요한 쟁점이다.

실제로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5월 전직금지 가처분 신청에서 회사가 전직 직원에게 1억원의 특별인센티브, 해외근무기회, 사내 대학원 부교수직 보임, 1~2년분 연봉에 해당하는 전직금지 약정금 지급 등을 제안했지만 거절한 것을 들어 가처분을 인용했다(2022카합21499).

또 퇴직하지 않을 경우 8000만원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퇴직해도 근로자가 자녀 두 명을 양육하고 법무사 자격증 취득을 준비하는 데 생활상 필요한 금액을 지급하겠다고 근로자에게 제안했다가 거절 당한 근로자에 대한 가처분 신청도 인용된 바 있다(2022카합10163).

다만 전직금지 약정의 직접적인 대가로 받은 것은 없어도, 장기간 근속하며 전문성을 키우는 등 꾸준한 승진 및 승급의 기회를 부여받았고, 상당한 액수의 급여와 상여금, 우리사주 등을 지급받은 경우라면 전직금지약정이 무효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한 사례도 있다(2022카합10446).

어쨌든 전직금지약정 체결시 충분한 대가를 지급하지 않았다면 퇴직 시점에라도 전직금지약정의 대가를 산정해서 지급하는 방안도 검토해볼만하다.

그밖에 기간이나 대상 업종도 중요하다. 법원이 직접 나서서 3년으로 정한 전직금지약정 기간을 ‘퇴직일로부터 1년 6개월’의 범위 내에서만 인정하도록 정한 경우도 있다(2022카합10446).

또 전직금지 대상 업종을 명확하게 설정해 놓지 않고 전직금지 대상인 업체를 '동종·유사 업종의 경쟁사'로 정하는 등 그 범위가 추상적이고도 포괄적인 경우엔 기각 결정을 내린 사례도 있다(2022카합5118).

남발했다가는 역풍

전직금지 가처분은 소송이 아니라 말 그대로 가처분이다. 신속한 진행이 요구되는 데다 전직금지약정의 유효성을 증명할 책임은 회사에게 있는 만큼 짧은 시간 안에 입증이 쉽지 않다.

게다가 피보전권리의 존재 여부를 충분히 소명하지 못한다면 전직 근로자에게 면죄부를 주는 걸 넘어 남아있는 다른 근로자들에게도 "부담 없이 전직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져주는 셈이 될 수 있다.

백종현 변호사는 "부정경쟁방지법상 영업비밀 침해행위 또는 업무상 배임행위를 문제삼아 형사절차를 먼저 진행하고, 이후 사전 조치를 적절하게 보완하는 편이 낫다"라고도 설명했다.

이어 "형사고소를 하더라도 고소인이 범죄행위를 입증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해야 실제 압수수색 등 수사가 이뤄질 수 있으므로, 근로자가 보유하고 있던 컴퓨터 등에 대한 포렌식 등을 통해 관련 증거자료가 충분히 확보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