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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임 사태'로 거액의 손해를 입은 피해자들이 라임자산운용의 펀드를 판매했던 증권사를 상대로 소송을 냈지만, 투자금 전액을 돌려받는 데는 실패했다. 1심은 이들의 펀드 매매계약이 취소된 것으로 보고 증권사가 전액을 돌려줘야 한다고 봤다.
하지만 항소심에선 투자자들의 책임도 일부 인정하고 투자원금의 80%만 배상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피해자들이 상고하면서 이번 분쟁은 대법원에서 결론이 나게 됐다.
투자원금의 80% 손해배상액 인정
서울고법 민사14-3부(채동수·유헌종·정윤형 고법판사)는 지난달 21일 개그맨 김한석 씨, 아나운서 이재용 씨 등 투자자 4명이 대신증권을 상대로 제기한 부당이득금 사건 항소심에서 원고 승소한 원심판결을 취소하고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2022나2017964). 재판부는 투자금 전액을 돌려줘야 한다고 했던 원심과 달리 투자원금의 80%인 약 19억원만 증권사가 반환해야 하는 금액이라고 결론 내렸다.
재판부는 "이 사건 판매계약이 사기 또는 착오의 의사표시로 취소된다고 보기 어렵다"며 "'민법상 매매계약 취소'가 아닌 '자본시장법상 손해배상'만 적용해 배상액을 산정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라임자산운용은 2017년 5월부터 펀드 투자금과 총수익스와프(TRS) 대출 자금을 활용해 5개 해외 무역 금융 펀드에 투자하다가 부실이 발생했다. 2년 후인 2019년 7월 부실 의혹이 불거지면서 이 운용사의 펀드에 들어있던 주식 가격이 폭락했다. 이에 따라 펀드 중 173개가 상환 또는 환매가 연기돼 투자자들이 약 1조6000억원의 손해를 입었다. 이에 원고들은 2020년 2월 대신증권을 상대로 투자금 총액 25억여원을 돌려달라는 부당이득금 소송을 냈다. 라임 사태 피해자가 펀드 판매사를 상대로 낸 최초의 민사소송이다. 원고들은 "대신증권 반포 WM센터의 장모 전 센터장이 라임 펀드의 손실 위험성을 제대로 알리지 않은 채 '완전히 안정적', '확정 금리형 상품' 등의 표현을 사용해 펀드를 팔았다"고 주장했다. 장 전 센터장은 이 소송과 별개로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징역 2년과 벌금 2억원을 확정받았다.
대신증권 측은 "라임 사태는 라임의 부실 펀드 운용과 임직원의 불법행위로 인해 발생했다"며 "자본시장법에 따른 손해배상 책임 이상으로 책임지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맞섰다.
1심은 원고들의 손을 들어줬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6부(문성관 부장판사)는 지난해 4월 "투자자 측과 증권사 간의 매매계약은 사기에 의한 계약이므로 취소될 수 있다"며 "대신증권은 투자금 전액인 25억을 원고에게 반환하라"고 판결했다(2020가합515027).
재판부는 "투자자들이 펀드 가입 당시 장 씨로부터 펀드의 거래구조, 기대수익률 및 위험성에 대해 제대로 고지받았다면 펀드에 가입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투자자들이 계약을 취소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한 소장부본을 전달한 것이 명백하기 때문에 대신증권은 매매계약 취소에 따른 원상회복을 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투자자 책임도 일부 인정
1심 판결은 증권사의 펀드 위탁 매매에 자본시장법이 아닌 민법의 '사기에 의한 계약 취소'를 적용했다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2심은 이 같은 1심 판단을 인정하지 않고 자본시장법상 손해배상 책임만을 적용했다. 대법원이 2심 판단을 유지할 경우 1심은 이례적인 사례로 남을 전망이다.
2심 재판부는 이번 판결과정에서 "각 펀드의 수익률 등은 직접 확인이 불가능하거나 불확실한 요소"라며 "원고들은 펀드의 장래 수익이나 투자손실 위험 수준을 예측하거나 기대하고 계약을 맺었으므로 이를 계약의 착오 문제로 다툴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원고들의 투자 경험과 가입 경위 등을 고려하면 장 씨가 보낸 메시지만 보고 펀드에 가입했다고 쉽사리 납득하기 어렵다"라고도 했다. 투자자들이 펀드 가입 후 대신증권 해피콜 통화에서 투자 위험성에 대한 설명을 들었냐는 질문에 모두 '네'라고 답한 점도 함께 지적됐다.
박시온 기자 ushire90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