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 아이돌 그룹을 여럿 보유한 대형 엔터테인먼트사 임원 A씨의 주요 업무 중 하나는 정부 부처와 지방자치단체의 요청을 완곡하게 거절하는 일이다. 관(官) 주최 행사와 공연에 K팝 그룹이나 멤버를 초청하는 사례가 적지 않은데, 이미 짜인 일정을 조정할 수 없어 양해를 구하는 게 일이 돼 버렸다.그렇다고 힘 있는 관의 요청을 매몰차게 내칠 수도 없는 일. 자연스럽게 ‘거절의 기술’을 체득했다고 한다. A씨는 “근시안적이고 파편적인 행사를 반복하기보다 K웨이브를 대표하는 제대로 된 축제를 만들 때가 됐다”고 했다. 파편적 행사·지원으로는 한계K팝에서 시작된 한류가 푸드, 뷰티, 패션 등으로 확산하자 정부 소관 부처도 산업적으로 지원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특히 미국, 일본, 동남아시아 등 글로벌 시장에서 독보적인 입지를 구축한 K뷰티에 대한 관심이 크다. 한국 기업들은 화장품 브랜드 개발, 원료 생산, 용기 제작, 제조업자개발생산(ODM), 마케팅 등 뷰티산업의 전 생태계를 장악해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더욱 고무적인 것은 K뷰티 제품을 선호하는 글로벌 소비층이 주로 1020세대라는 점이다. 시간이 지나면 이들이 구매력 큰 30~50대가 되고, 또 새로운 세대가 소비층에 편입된다. 우리 하기에 따라 K뷰티 열풍이 더 거세질 수 있다는 의미다. 중소벤처기업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지난 7월 K뷰티 기업들과 간담회를 열고 지원 방안을 논의한 것은 그런 측면에서 평가할 만하다.아쉬운 분야는 K푸드와 K패션이다. 농림축산식품부의 기업 정책은 K푸드 육성·지원보다는 물가 관리를 위한 압박에 초점이 맞춰진 듯하다. 규제와 내수시장에서의 낮은 이익
요즘 대형마트에선 치킨 코너가 유독 붐빈다. 고물가 속 ‘가성비’ 치킨을 사려는 소비자들이 평일·휴일 가리지 않고 줄을 선다. 이마트의 ‘어메이징 완벽치킨’은 6480원, 홈플러스의 ‘당당치킨’은 6990원이다. BBQ bhc 교촌치킨 등 프랜차이즈 업체에서 배달·주문할 때와 비교하면 3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초저가다.‘6000원대 치킨’은 e커머스와 경쟁하는 마트가 소비자를 매장으로 불러내려는 고육책이다. 2년여 전 당당치킨을 먼저 내놓은 홈플러스는 누적으로 1000만 팩을 팔았다. 집객 효과가 크다고 한다. 업계 1위 이마트가 치밀한 준비 끝에 최근 낮은 가격으로 맞불을 놓은 이유다. 마트의 초저가 치킨 경쟁을 바라보는 프랜차이즈 본사와 가맹점주의 마음이 편할 리 없다. 통큰치킨 때와 다른 분위기그런데 이상하다. 프랜차이즈 본사도, 가맹점주도 반발하거나 조직적 행동에 나서지 않는다. 14년 전 롯데마트의 ‘통큰치킨’을 떠올리면 격세지감을 느낄 만하다. 롯데마트가 2010년 12월 프랜차이즈 치킨보다 훨씬 많은 양을 통에 담아 5000원에 출시하자 치킨업계가 들고일어났다. 유력 정치인까지 가세해 “대기업이 치킨까지 싸게 팔면서 영세 상인들에게 고통을 주고 있다”고 성토했다. 정부의 압박도 컸다.논란이 일파만파로 확산하자 롯데마트는 출시 13일 만에 결국 판매를 접었다. 싼 치킨에 열광했던 소비자 편익은 그렇게 무시됐다.그때와 지금, 무엇이 달라졌나. 우선 마트 치킨과 프랜차이즈 치킨의 소비자가 크게 겹치지 않는다는 공감대가 생겼다. e커머스와 배달앱 사용의 보편화·일상화와 관련이 깊다. 실제로 6000원 치킨을 사러
배달의민족, 쿠팡이츠, 요기요 등 배달앱 간 무료 배달 경쟁이 뜨겁다. 업계 2위 쿠팡이츠가 1위 배민을 겨냥해 먼저 포문을 열었다. 지난 3월부터 월 4900원을 내는 쿠팡 와우멤버십 회원을 대상으로 무제한 무료 배달을 시작하면서 판을 흔들었다. 유료회원 약 1400만 명을 보유한 쿠팡의 음식배달 시장 침투는 위협적이다. 서울·수도권에선 배민을 턱밑까지 추격해 들어온 것으로 알려졌다.국내 배달앱 시장의 약 60%를 점유한 배민이 쿠팡이츠의 도발을 두고 볼 리 없다. 역시 무료 배달 서비스로 맞불을 놓으며 수성에 나섰다. 소비자들은 당장은 즐겁다. 1인 가구나 젊은 맞벌이 부부 중에는 한 달에 열 번 이상 배달앱을 이용한다는 사람도 많다. 월 2만~3만원을 아낄 수 있으니 배달앱의 경쟁은 반갑기만 하다. 외식업주·소비자에 비용 전가세상에 공짜란 없는 법이다. 배달앱 업체로선 이익 감소 및 적자 확대를 감수하면서 배달료를 대신 내주는 ‘출혈’을 지속하기 쉽지 않다. 시기 문제일 뿐 지혈이 필요하다. 방법은 두 가지다. 소비자에게 다른 방식의 이용료를 부과하거나 외식업주가 내는 중개 수수료를 올리는 것이다.국내 배달앱 시장의 절대강자는 배민이다. 쿠팡이츠의 추격이 맹렬하다고 해도 배민의 월간활성이용자는 약 2100만 명으로 쿠팡이츠(약 700만 명)보다 세 배가량 많다. 실적도 비교가 안 된다. 배민은 지난해 매출 3조4155억원, 영업이익 6998억원을 거뒀다. 쿠팡이츠와 요기요는 수백억원대의 영업손실을 냈다. 이런 시장 상황을 고려하면 배달앱 간 경쟁이 격화할수록 상대적으로 불리한 쪽은 쿠팡이츠와 요기요다. 배민으로선 출혈을 버티면서 추격자들의 도전을 제
알리익스프레스, 테무 등 중국 e커머스 플랫폼의 기세가 한풀 꺾였다. 수치로 보면 그렇다. 애플리케이션·리테일 분석 서비스 와이즈앱·리테일·굿즈에 따르면 지난달 알리와 테무의 한국 월간활성이용자(MAU)는 전월 대비 각각 3.4%, 3.3% 줄었다. 4월에 이어 두 달 연속 감소세다. C커머스에 대한 소비자 경험과 평판이 쌓이면서 남을 소비자만 남고, 떠날 소비자는 떠나는 흐름이 뚜렷해졌다. 그래서인지 초저가를 앞세운 C커머스에 대한 공포와 우려도 조금은 잦아들었다. 같은 제품인데 가격 차는 10배알리와 테무가 한국 소비자를 급속히 빨아들이며 약진한 이유는 단순하다. 같거나 비슷한 상품인데도 한국과 중국 플랫폼에서 판매하는 제품의 가격 차이가 크게는 열 배에 이른다. 국내 셀러가 중국에서 수입해 통관·인증 비용에 마진 등을 붙여 파는 ‘비싼 제품’의 실체를 소비자가 알아채 버린 것이다. 품질은 그다음 문제다. “또 사도 될 상품과 재구매하면 안 되는 제품을 직접 가려내겠다”며 수십 개의 주문을 한꺼번에 하는 사람도 있다. 결제 총액이 그래봐야 10만원 남짓이니 ‘낭비가 아니냐’고 물을 일도 아니다.초저가보다 무서운 건 초국경 거래(해외직구)의 편리한 경험이 중국으로 확장되고 있다는 점이다. 해외 직구의 단점은 긴 배송 시간이다. 1년 전만 해도 알리에서 상품을 주문하면 도착까지 길게는 한 달이 걸렸다. 하지만 지금은 짧게는 1주일이면 된다. 이 정도의 기다림은 감내할 수 있다는 반응이다. 알리 등이 물류 등에 막대한 투자를 예고한 터라 한국향(向) 제품 배송 시간은 더 줄어들 전망이다.저가에 더해 배송 시간까지 단축되자 미
지난달 서울 인사동 골목에 있는 ‘853’이라는 곳에서 지인들을 만났다. 목살·삼겹살·등겹살·항정살 등을 판매하는 고깃집인데, 한옥풍 외관 말고는 특별한 게 없어 보였다. 1시간여 이야기를 나누다 주변을 둘러봤다. 이게 웬일인가. 10개 남짓한 테이블에 한국인은 우리 일행뿐이고, 다른 손님들은 모두 외국인이었다. ‘K-BBQ 맛집’으로 알려진 이곳에서 소주잔을 부딪치며 돼지고기구이를 즐기는 이방인들의 모습에선 어색함을 찾아볼 수 없었다. 처음에는 ‘뭐 (외국인이 많이 찾는) 인사동이니까’라고 생각하고 말았다. 'K웨이브' 매력에 빠진 외국인그런데 그렇지 않았다. ‘계절의 여왕’이라는 5월, 도심 거리를 거닐다 보면 새삼 놀라게 된다. 외국인이 많아졌다는 걸 체감한다. 고궁과 호텔, 쇼핑시설이 몰려 있는 광화문·명동은 물론이고 이태원·성수동·홍대·잠실 등 주요 상권마다 관광객으로 붐빈다. 실제로 지난 1분기 방한 외국인 관광객은 340만3000명으로 코로나19 이후 분기 기준 최대를 기록했다. 일본 황금연휴(4월 27일~5월 6일), 중국 노동절 연휴(5월 1~5일)엔 두 나라에서 약 20만 명이 한국을 다녀갔다고 하니 2분기에도 비슷한 추세가 이어질 전망이다.무엇보다 유통·여행·레저업계에 화색이 돈다. ‘K뷰티 성지’로 불리는 CJ올리브영이 ‘관광상권’으로 분류해 놓은 전국 60개 매장에선 이달 첫 주 외국인 매출이 작년 동기 대비 3배 이상(221%) 급증했다. 뷰티 제품을 쓸어 담는 쇼핑 열기가 ‘상상 이상’이라고 한다. 도심과 여의도, 강남의 주요 백화점은 특수까지는 아니어도 ‘외국인
‘와퍼’를 더 이상 못 먹게 될 줄 알았나 보다. 버거킹이 최근 홈페이지에 ‘와퍼 판매를 40년 만에 종료한다’고 공지하자 “정말이냐”는 문의가 빗발쳤다. 매장에선 “단종되는 게 아니라 14일 이후에도 계속 판매한다”고 해명하느라 진땀을 뺐다. 본사와 매장의 다른 설명은 혼선을 더 키웠다. 버거킹은 그제야 ‘현재의 와퍼 판매를 종료하는 것은 맞다’며 ‘14일까지 현재 와퍼의 많은 이용 부탁드린다’고 재공지했다.현재 와퍼라고? 곧 제품 리뉴얼이 이뤄질 것을 암시하는 이 표현은 일종의 말장난이었다. ‘노이즈 마케팅’으로 구매를 유도하려 했음을 자인한 것이다. 와퍼 판매 종료 공지에 대한 소비자 반발은 기만적 상술 때문만은 아니다. 제품 리뉴얼과 맞물려 버거값이 또 오르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깔려 있다. 버거킹은 2022년 1월부터 작년 3월까지 세 차례 제품값을 인상하면서 6100원이던 와퍼값이 7100원으로 16.4% 뛰었다. 고물가에 마트·슈퍼로 몰린 소비자소비자들이 버거값 하나에도 날카롭게 반응하는 고물가 시대다. 마트와 전통시장을 둘러보면 ‘장보기 겁난다’는 말이 실감 난다. 사과 배 등 국산 과일 가격은 내려갈 기미가 없다. 최근엔 아이들이 좋아하는 방울토마토 가격도 올랐다. 외식 물가는 또 어떤가. 4명이 삼겹살 좀 먹으면 10만원이 훌쩍 넘어간다. 그래서인지 외식과 배달음식을 줄이고, 다소 번거롭더라도 식료품을 구입해 조리해 먹는 사람이 늘어난 모양이다. 올해 1분기 대대적 할인 판매에 나선 창고형 할인점과 대형마트 매출이 신선식품과 가정간편식(HMR)을 중심으로 회복되고 있다고 한다.소비자라고
“흑선(黑船)도 섞여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게 됐다.” 월간지 ‘일본 국제상업’은 지난해 일본 화장품 제조업계를 분석한 특집기사를 이렇게 맺었다. 흑선에 비유된 기업은 글로벌 1위 화장품 제조업자개발생산(ODM) 업체 코스맥스. 중국에서 존재감을 보여준 코스맥스가 일본에 생산기지를 건설한다고 발표한 데 대해 현지 업계의 경계심을 드러낸 것이다.흑선은 1853년과 1854년 매슈 페리 제독의 미국 동인도함대가 도쿄만(灣)에 진입해 통상·수교를 압박할 때 타고 온 함선을 일컫는다. 선체에 타르가 칠해져 있어 그렇게 불렸다. 한국판 ‘흑선’ 코스맥스가 내년 말 이바라키현에 공장을 완공하면, K뷰티 글로벌화의 한 축인 인디 브랜드들로선 일본 시장 공략을 위한 제품을 생산해줄 모함(母艦)을 현지에 두는 효과를 얻게 된다. 日 공략 선봉에 선 K뷰티한·일 양국 소비재 기업의 상호 진출이 확산일로다. 1년 전 정부의 일제 강제징용 배상안 발표를 계기로 이뤄진 양국 관계 개선이 기폭제가 됐다. 일본의 한국 수출 규제 이후 나타난 격렬한 반감이나 일본 제품 불매운동은 옛일처럼 느껴진다. 특히 양국 간 여행객 급증은 자연스럽게 상대국 제품과 브랜드에 대한 호감도를 높였다.무엇보다 일본에서의 K웨이브가 예전과 다른 양상으로 전개돼 주목된다. 올해 들어선 하루가 멀다고 우리 기업의 일본 공략 소식이 전해진다. 그중에서도 K뷰티는 일본에서 황금기의 초입에 들어섰다는 평가를 받는다. 빠른 신제품 출시, 뛰어난 품질, 합리적 가격을 앞세운 K뷰티의 일본 내 위상은 급상승하고 있다. 프랑스를 제치고 2년 연속 수입 1위를 차지했다. 지난해 수입액은 2022년보
17만 가구, 40만7000명이 거주하는 서울 서초구는 강남구와 함께 전국에서 구매력이 가장 높은 지역으로 꼽힌다. 대형마트 3곳과 기업형슈퍼마켓(SSM) 31곳이 서초구에서 영업하고 있다. 하지만 그동안 둘째·넷째 일요일엔 문을 닫아야 했다. 2012년 시작돼 요지부동 바뀌지 않고 있는 대형마트 의무휴업 규제 탓이다.지난달 29일은 넷째 일요일이었다. 모처럼 서초구 곳곳에 활기가 돌았다. 마트와 SSM이 일제히 문을 열자 쇼핑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12년 만의 ‘넷째 일요일 영업’은 서초구의 결단에서 비롯됐다. 결단이란 평가가 결코 과하지 않다. 유통산업발전법은 지방자치단체장이 매월 공휴일 이틀을 의무휴업일로 지정하되, 이해당사자와 합의를 거쳐 공휴일이 아닌 날을 휴업일로 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규제 최대 피해자는 소비자조례만 바꾸면 평일 휴업이 가능한데도 서울 25개 구는 눈치만 봤다. 목소리 큰 골목상권 상인들을 의식한 구청장들은 나서길 꺼렸다. 낡은 규제를 깰 용기를 서초구가 먼저 낸 것이다. 시대착오적 규제 완화의 효과는 즉각적이고, 연쇄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점포별 차이가 있지만, 평일 영업 때보다 매출이 최대 50% 늘었다고 한다. 유통기업만 득을 보는 것도 아니다. 납품 제조업체, 마트에 입점한 가게, 식당 커피숍 등 주변 상권도 손님이 늘어 혜택을 받는다.규제의 최대 피해자는 누가 뭐래도 소비자였다. 집 근처에 마트와 SMM을 두고도 급하게 물건을 살 일이 생기면 먼 곳까지 장을 보러 다녀야 했다. 큰 불편에도 조직적으로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고 그렇게 12년이 흘렀다. “온라인으로 주문하면 되지 않나”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상품
MZ세대(밀레니얼+Z세대) 약속 장소로 인기 있는 지역의 맛집 앞에선 어김없이 긴 줄과 마주하게 된다. “대체 얼마나 맛있길래” 이런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면 ‘꼰대’까진 아니어도 ‘아저씨’다. 10분 이상 기다릴 바엔 곧장 발길을 돌려 버리고 마는 필자도 그중 하나다. 세상에 먹을 게 얼마나 많은데, 메뉴 바꾸는 게 뭐 대수라고. 젊은 층이 즐겨 찾는 지역은 물론이고 요즘엔 대형 백화점에서도 예약하고 1~2시간 지나서 특정 매장에 들어가는 사람이 많다. 기다리는 수고로움을 감당한다. 이런 식음료(F&B) 매장이 많을수록, 또 인스타그램에 올릴 피사체가 다양할수록 젊은 소비자가 몰려든다. 백화점 전체 실적에도 당연히 긍정적인 효과를 준다. 베이글·도넛 때문에 머문다서울 잠실 롯데월드몰에서 작년 8월 문을 연 런던베이글뮤지엄은 그런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다양한 베이글을 판매하는 이곳은 요즘에도 주말에 2시간은 기다려야 입장할 수 있다. 내외부 인테리어나 매장명만 보면 외국 브랜드로 착각할 수 있지만, 토종이다. 서울 종로구 계동과 강남구 신사동에 먼저 점포를 냈는데, 맛도 맛이지만 아침마다 베이글을 사 가려는 긴 줄로 더 유명해졌다. 하루평균 3000명 이상을 끌어모으는 국내 최대 도넛 매장인 ‘노티드월드’도 롯데월드몰 방문객의 체류 시간을 늘리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e커머스의 대공세로 백화점 마트 등 전통 오프라인 강자들은 한때 생존을 걱정해야 했다. 오래전 일도 아니다. 코로나19 팬데믹은 변화에 둔감했던 과거의 유통 공룡들을 극한으로 몰아갔다. 방문객이 끊기자 적자는 점점 커졌다. 천재지변에 비견되는 대위기
‘플라이트 셰임(flight shame)’은 스웨덴에서 시작돼 유럽으로 확산된 일종의 각성 운동이다. 온실가스 배출 주범의 하나인 비행기 타는 것을 부끄러워하라는 의미인데, 이 운동을 주도하는 사람들은 4시간 정도의 항공 운항을 모두 기차로 대체하면 연간 3600만t의 탄소 배출을 절감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항공이 핵심 교통수단으로 자리 잡은 미국 등에선 촘촘한 철도망을 구축해 놓은 유럽 대륙에서나 가능한 환경운동쯤으로 치부할 법하다.국경을 초월해 대륙 구석구석을 연결하는 유럽 철도망은 그 자체로 매력적인 여행상품이다. CNN트래블이 ‘가장 아름다운 유럽 기차여행 10선’을 따로 추려 소개했을 정도니 말이다. 그중 하나가 스코틀랜드의 ‘웨스트 하이랜드 노선’이다. 글래스고에서 말라이그에 이르는 이 노선의 압권은 고원을 가로지르는 높이 381m의 글렌피넌 고가교(橋)를 지날 때다. 이 다리 위로 질주하는 급행열차는 영화 ‘해리포터와 비밀의 방’에도 등장해 친숙하다. 해안 철도로는 북아일랜드의 ‘데리~콜레인 노선’이 포함됐다. 고대 화산 활동으로 형성된 4만여 개 해안 주상절리가 모여 있는 ‘자이언트 코즈웨이’(거인의 방죽길)와 10㎞에 이르는 황금빛 모래 해변을 감상할 수 있다.국내에서도 관광열차가 각광받고 있다. 코레일이 정선아리랑열차(청량리~정선), 서해금빛열차(용산~익산), 협곡열차(영주~분천) 등 6개 정기 열차를 운행하고 있다. 아쉽게도 2007년부터 운행해온 동해안 바다열차는 지난 25일 성탄절을 끝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강릉~동해~삼척 53㎞ 구간을 달리며 그간 195만 명을 태웠는데, 수명 다한 열차 교체에 필요한 재
변변한 찬이 없어도 짭짜름한 조미김 한 봉지면 밥 한 공기 뚝딱이다. 식당에서 종종 나오는 마른 김과 참기름 간장은 또 어떤가. 밥을 싸 찍어 먹는 맛과 재미에 주메뉴보다 더 손이 간다. 밥을 부르는 김의 마력 앞에 ‘탄수화물 줄여보자’는 다짐은 헛일이 된다.문헌에 따르면 우리는 삼국시대부터 김을 먹었다. 고려 후기 승려 일연이 저술한 <삼국유사>에 그리 나온다. 명나라 <본초강목>에도 ‘신라의 깊은 바닷속에서 채취하는데, 허리에 새끼줄을 묶고 들어가 따온다’는 내용이 있다. 본격적인 김 양식은 병자호란 당시 의병장을 지낸 김여익이 시작했다는 게 정설이다. 1640년 전남 광양 태인도로 이주해온 그가 해변에 밀려온 참나무 가지에 김이 붙은 것을 본 뒤 양식에 나섰다. 해의(海衣)나 해태(海苔)로 불리던 이 해조류의 명칭을 김여익의 성을 좇아 김으로 명명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밤나뭇가지나 섶발 등에 김을 붙이는 초기 양식법은 이후 200여 년 이어졌다. 그러다 1840년대 대나무 쪽으로 발을 엮어 한쪽은 바닥에 고정하고 반대쪽은 물에 뜨도록 한 떼밭 양식이 개발됐다. 대량 생산이 가능해진 것은 조수간만의 차에 영향받지 않는 부유식 양식법이 확산한 1970년대 들어서다.현재 전국 김 양식 면적은 약 635㎢로 여의도(2.9㎢)의 218배나 된다. 진도·해남·고흥·완도·신안 등 전남 지역 생산량이 전체의 80%에 육박한다. 맑은 날 항공기에서 내려다보는 남해안 김 양식장 풍경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2년 전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완도의 해조류 양식장 인공위성 사진을 홈페이지에 소개했는데, 한국 김 인기와 맞물려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김 수출
1950년대 미국에선 석유 시추권 확보 경쟁이 불붙었다. 멕시코만 등에 상당한 석유가 매장돼 있을 것이란 예상에 정유사들이 앞다퉈 입찰에 뛰어들었다. 요즘이야 기술 발전으로 정확한 매장량 측정이 가능하지만, 당시엔 막상 시추해보면 기대만큼 석유가 나오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막대한 비용을 지불하고 입찰에서 승리했는데도 결국 큰 손해를 보는 정유사가 줄을 이었다. ‘승자의 저주(winner’s curse)’라는 말은 미국 석유회사 애틀랜틱리치 소속 엔지니어 3명이 시추권 입찰 과정에서 두드러진 이런 현상을 한 논문에 서술하면서 처음 등장했다.최근엔 기업 인수합병(M&A)과 연관돼 승자의 저주가 주로 사용된다. 성장동력 확보, 시너지 확대 등을 노리고 M&A에 나섰지만, 과도한 대가를 치른 탓에 심각한 후유증을 겪는 상황을 의미한다. 국내외에 사례가 즐비하다. 영국 스코틀랜드왕립은행(RBS)이 2007년 10월 네덜란드의 ABN암로은행을 인수한 게 대표적이다. 인수금액만 무려 710억유로에 달한 세계 금융 역사상 최대 M&A였다. RBS는 경쟁사인 바클레이스보다 35억유로나 더 많은 금액을 제시해 승리했지만, 고가 인수에 따른 부담에 미국발 금융위기까지 겹치면서 결국 영국 정부로부터 200억파운드의 공적자금을 수혈하는 신세가 됐다.승자의 저주는 경영진의 자기 과신, M&A 대상 기업 가치 및 시너지 과대 평가, 적정 가격 이상의 베팅 등이 맞물린 결과다. 국내에서도 무리한 인수가 그룹 해체를 촉발한 사례가 있다. 옛 금호아시아나그룹의 대한통운과 대우건설 인수, 웅진그룹의 극동건설 인수 등이다. 결과론적인 얘기지만, 한화그룹이 2008년 대우조선해양을 6조3200억원에 인수하려
자연 다큐멘터리에서 감동받을 때가 있다. 극지에 사는 펭귄이 그렇다. 무리 지어 생활하는 펭귄은 먹잇감을 구하러 차디찬 바다에 뛰어들어야 한다. 바다엔 바다표범 같은 포식자가 도사리고 있다. 수백 마리가 작은 빙산의 끝에서 머뭇거릴 때 가장 먼저 뛰어드는 펭귄이 있다. 두려움을 떨쳐낸 ‘퍼스트 펭귄’이다. 우왕좌왕하던 다른 펭귄들도 뒤를 따른다. 퍼스트 펭귄은 2008년 47세의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한 랜디 포시 미국 카네기멜론대 컴퓨터공학과 교수의 저서 를 통해 대중에게 잘 알려졌다. 생존 위한 리더의 용기가 중요아프리카 대초원에도 비슷한 존재가 있다. 탄자니아의 세렝게티 초원 남동쪽에서 풀을 뜯던 누 떼는 건기가 시작되면 물과 먹이를 찾아 북쪽으로 1000㎞ 이상 올라간다. 수만 마리의 대이동이다. 최대 고비는 세렝게티와 케냐의 마사이마라 초원을 가르는 마라강을 건너는 일이다. 강엔 악어 무리가 득실대고, 건너편에선 사자들이 기다린다.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우두머리 누가 용기를 낸다. 이어 수천, 수만 마리가 잇따라 강으로 뛰어들어 필사적으로 전진한다. 생존을 위한 마라강의 대장관은 매년 펼쳐진다. 내년 총선을 앞둔 정치권에서 ‘용기 있는 희생’이 화두다. 지도부와 다선 중진 의원들에게 불출마하거나, 험지에 출마하라는 압박이 커지고 있다. 당장은 여당인 국민의힘에서 이런 압력이 임계점에 도달해 폭발 직전이다. 하지만 인요한 혁신위원회의 ‘희생 혁신안’은 당 지도부 회의에 상정조차 되지 못했다. 혁신위 요구는 김기현 대표와 장제원 의원 등에게 ‘퍼스트 펭귄’이 돼 달라는 것이다. 당사자들은 공천관리위원회가 할 일이라며 혁신위 요구에
대관람차는 1893년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세계박람회(엑스포)에 처음 등장했다. 직전 파리엑스포가 300m 높이의 에펠탑 건설로 대박을 터트리자 시카고엑스포 조직위원회는 세계인의 시선을 끌 상징물을 세우기로 결정하고 공모에 나섰다. 교량 건축 엔지니어 조지 페리스가 거대한 철제 바퀴와 바큇살에 관람용 곤돌라를 매달아 도시와 박람회장의 풍광을 내려다보게 하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1000마력의 증기 엔진을 장착한 세계 최초 대관람차는 큰 인기를 끌며 엑스포 성공에 기여했다. 페리스의 이름을 딴 ‘페리스 휠(Ferris wheel)’이 대관람차를 뜻하는 일반명사로 쓰이게 된 배경이다. 올림픽 엑스포 등 메가이벤트에 맞춰 세워진 대관람차는 세계 도시의 랜드마크가 됐다. 2000년 런던올림픽을 기념해 선보인 ‘런던 아이(London Eye)’와 2021년 두바이엑스포에서 위용을 드러낸 세계 최대 대관람차 ‘아인 두바이(Ain Dubai)’가 대표적이다. 최고 210m 높이에서 마천루와 인공섬 조망을 선사하는 아인 두바이는 동시에 1750명을 태울 수 있다. 국내에도 관광지와 놀이공원에 10여 개의 크고 작은 대관람차가 운영 중이다. 이 중 지난해 개장한 강원 속초의 ‘속초 아이’는 국내 유일의 해변 대관람차로 100만 명이 다녀갈 만큼 인기다. 22층 높이에서 푸른 동해를 배경으로 ‘인생 사진’을 찍는 사람이 많다. 단기간에 지역 랜드마크로 떠오른 속초 아이가 철거될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이다. 대관람차가 설치될 수 없는 자연녹지지역이자 공유수면에 일부가 들어서 관련 법률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이병선 속초시장은 “해체 명령이 불가피하다”고 했다. 전임 시장 때 92억원을 들여 건설한 업체는 난감한 처지
헌법 54조는 한 해 나라 살림 규모를 계획하고 확정하는 절차를 규정하고 있다. 정부가 예산안을 편성해 회계연도 개시 90일 전(10월 2일)까지 국회에 제출하면, 국회는 30일 전(12월 2일)까지 심의·의결하도록 한 게 핵심이다. 행정부와 입법부에 예산 편성·집행권과 심의·의결권을 나눠 놓은 것은 견제와 균형을 위해서다. 그런데 국회 17개 상임위원회의 예산안 예비심사를 보면 헌법 취지가 무색해진다. 더불어민주당은 편성권이 자당에 있는 양 윤석열 정부의 예산안(656조9000억원)을 멋대로 삭감하거나 증액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예산 테러’라고 비판할 뿐 속수무책이다. 민주당은 이미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 국토교통위 등 6개 상임위에서 소관 예산안을 일방 처리했다. 그저 윤석열표 예산은 일단 쳐내고, 이재명표 예산은 최대한 늘리고 보자는 식이다. 원전 생태계 지원(1112억원), 혁신형 소형모듈원자로(SMR) 개발 사업(332억원) 관련 예산을 전액 삭감한 반면 지역사랑상품권(7053억원), 신재생에너지 금융·보급 지원(3920억원), 청년교통비 지원(2923억원) 예산은 증액한 게 대표적 사례다. 헌법 57조에 따르면 국회는 정부 동의 없이 지출예산 각 항의 금액을 늘리거나, 새 비목을 설치할 수 없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정부 예산안에 없는 항목을 만들거나 증액했다.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종합심사에서 삭감액을 되살려야 하는 정부·여당을 압박해 원하는 예산을 얻어내겠다는 의도다. 향후 벌어질 일은 뻔하다. 나라 살림을 둘러싼 정쟁이 격해지고 처리 시한이 임박하면 정치로 포장된 ‘거래’가 뒤따른다. 예산조정소위 내에 법에도 근거가 없는 소(小)소위를 가동해 밀실에서 담합이 이뤄진다.
보통 사람이 국가 정상 등에게 대뜸 전화해 통화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그들이 안심할 정도로 속임수를 쓸 수 있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2018년 6월께 미국 백악관에 한 통의 전화가 왔다. 자신은 민주당의 로버트 메넨데스(뉴저지) 상원의원인데, 대통령과 통화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백악관 직원은 “대통령이 바쁘다”며 전화를 끊었다. 그런데 약 1시간30분 뒤 콜백이 왔다. 트럼프 대통령 목소리였다. “축하합니다. 당신은 힘든 시간을 겪었어요. 나는 온당한 상황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당시는 메넨데스 의원이 부패 혐의에서 막 벗어난 때였다. 그의 처지를 알고 있던 트럼프 대통령이 위로와 축하를 건넨 것이다. 통화에선 여러 국정 현안도 논의됐다. 트럼프 대통령의 통화 상대는 메넨데스 의원 목소리를 성대모사한 미국 코미디언 존 멜렌데스. 그가 얼마 뒤 팟캐스트에 통화 녹취록을 올리자 백악관도 대통령이 속았음을 인정했다. 주요국 정상을 속여 통화하고 이를 과시하는 데 능통하기로는 러시아 코미디언이자 유튜버인 블라디미르 쿠즈네초프와 알렉세이 스톨야로프만 한 이들이 있을까 싶다. ‘보반’과 ‘렉서스’라는 예명을 쓰는 이들은 최근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와의 통화 녹음 파일을 온라인에 올려 또 한 번 악명을 떨쳤다. 아프리카 이민자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멜로니 총리는 아프리카연합의 고위 외교관으로 가장한 이들의 정체를 눈치채지 못했다. 이들 ‘듀오’의 전적은 화려하다. 올초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사칭해 제롬 파월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과 통화했다. 지난해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을 흉내 내 안제이
다산 정약용은 18년의 유배 생활 중에 600여 권의 책을 썼는데, 백성의 곤궁한 삶을 목도하면서 저술한 가 으뜸이다. 다산이 목민심서에서 특히 강조한 것은 청렴이다. “청렴은 수령의 본분이요, 모든 선의 근원이며 모든 덕의 근본이다. 청렴하지 않고서 수령 일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은 지금까지 없었다.” 이 가르침은 200년이 지난 지금도 정부 부처와 공기업 교육 과정에서 최고 덕목으로 꼽힌다. 교육받을 때뿐이었을까. 감사원의 ‘공공기관 경영관리 실태’ 보고서에는 공직사회에 여전한 부패의 백태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국민 세금인 ‘남의 돈’을 자기 돈처럼 쓴, 아니 자기 돈이었다면 결코 그렇게 낭비하지 않았을 불법과 도덕적 해이, 부정의 사례에 기가 막힐 정도다. 문재인 정부 청와대에서 산업정책비서관을 지낸 채희봉 전 가스공사 사장은 지난해 4월 영국 런던으로 3박5일 출장을 다녀오면서 1박에 260만원짜리 호텔 스위트룸에 묵었다. 장관급 공무원의 해외 숙박비 상한(95만원)의 2.7배에 해당한다. 이를 모르지 않았을 그가 스위트룸에서 두 다리 뻗고 얼마나 편하게 쉬었을지 궁금하다. 지역난방공사에서 파견 나온 직원의 법인카드를 사적 용도 등에 897차례나 유용한 산업통상자원부 5급 사무관의 갑질은 상상을 초월한다. 산하기관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 사무관이 ‘산하기관 돈은 내 쌈짓돈’으로 생각하지 않고서는 5년에 걸쳐 이런 무도한 생활을 이어가지 못했을 것이다. 경기지사 시절 7급 공무원이 법인카드로 구매한 조식용 샌드위치와 과일, 생활용품 등을 제공받았다는 의혹을 받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부부는 또 어떤가. 집에서 만들지 않은 음식을 1
“석유개발은 한두 번 실패했다고 중단하면 아무 성과가 없습니다. 실패에 관해 거론하지 말아야 합니다.” 유공이 1980년대 초 동남아시아와 아프리카 유전 개발에 연거푸 실패하자 최종현 당시 선경 회장이 임직원에게 한 말이다. 선경은 앞서 미국 걸프사로부터 대한석유공사 지분 50%를 인수해 경영권을 확보한 뒤 유전 개발에 뛰어들었다. 실패에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최 회장의 독려에 유공은 지분을 투자한 예멘의 마리브 광구에서 1984년 첫 성과를 거뒀다. 10년의 준비와 노력이 작은 결실을 봤다. 최 회장은 섬유 중심의 사업을 정유·석유화학 등으로 확장하면서 직접 개발해 석유를 생산하는 ‘무자원 산유국의 꿈’을 키우기 시작했다. 그는 1973년 형인 최종건 창업주로부터 선경직물 등의 경영권을 승계한 직후 석유에서 섬유까지 수직계열화를 추진하겠다고 선언했다. 2년 뒤 신년사에선 “우리 섬유산업을 유지, 발전시키기 위해 석유화학공업 진출이 불가피하고, 더 나아가 석유정제사업까지 성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본 이토추상사와 합작해 정유공장을 짓기로 하고 사우디아라비아로부터 원유 공급까지 약속받았지만, 1차 석유파동으로 무산됐다. 이어 1979년 2차 석유파동까지 두 차례 위기는 해외 유전 개발에 대한 최 회장의 집념에 불을 붙였다. 막대한 투자비에도 성공률은 5%에 불과한 탓에 주변의 반대가 컸다. 예상대로 실패의 연속이었다. 1989년엔 미얀마에서 처음으로 독자 개발권을 획득한 뒤 4년간 5600만달러를 투자해 탐사에 나섰다가 빈손으로 철수하기도 했다. 석유개발사업은 최태원 SK그룹 회장으로 경영권이 승계된 이후 큰 성과를 내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이 지분을
‘정청래 질의 방해에 한동훈은? “무슨 야구장 오셨습니까?”’ 최근 유튜브에 올라와 130만 건이 넘는 조회수를 기록한 동영상의 섬네일 제목이다. 국회 본회의와 상임위원회 회의가 대부분 유튜브로 생중계되고 있지만 생업에 바쁜 사람들은 편집된 짧은 영상을 통해 정치 뉴스를 접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알고리즘이 슬슬 작동하고, ‘내 성향’에 맞는 섬네일이 더 자주 뜬다. 지지자들이 속 시원함을 느끼는 사이 영상의 주인공은 상대 진영을 제압하는 전사(戰士)로 각인된다. 대통령은 전사가 되라는데정치권과 관가에 ‘전사형 장관’이 화제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국무회의에서 한 말 때문이다. “여러분은 정무적 정치인이기 때문에 말로 싸우라고 그 자리에 계신 것이다. ‘전사’가 돼야 한다.” 참석한 국무위원들은 야당 의원들과 거친 설전을 벌이고, 물러서지 않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을 본받으라는 의미로 받아들였던 모양이다. 앞으로 국회에서 어떤 말투와 태도를 보여야 할지 고민이라고 하니 말이다. 윤 대통령 ‘지시’ 이후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의 발언 톤이 세졌고, 점잖다는 평가를 받아온 한덕수 총리까지 목소리가 커졌다. 지난주 3개 부처 장관이 새로 지명됐다. 신원식(국방부), 유인촌(문화체육관광부), 김행(여성가족부) 후보자다. 감흥이 그리 크지 않았다는 게 중론이다. 여권 일각과 지지층에서도 참신성 부족과 인력 풀의 한계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전사형 색채가 짙은 인물이라는 것은 공통점이다. 야권은 기다렸다는 듯 후보자들의 일부 과거 발언을 끄집어내 공세를 퍼붓고 있다. 인사청문회에서도 격돌이 예상된다. 새로
그만두겠다는 사람을 억지로 잡아두는 것도 잔인한 일이다. 그 전형을 보여준 사람이 김명수 대법원장이다. “탄핵하자고 저렇게 설치고 있는데 내가 사표를 수리하면 국회에서 무슨 얘기를 듣겠냐 말이야.” 김 대법원장이 2020년 5월 22일 이른바 ‘사법농단’ 사건으로 국회에서 탄핵안이 거론되던 당시 임성근 고등법원 부장판사와의 면담에서 한 말이다. 이런 내용의 녹음파일이 공개되기 전까지 김 대법원장은 관련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하지만 녹음파일엔 “사표 수리, 제출 그런 법률적인 것은 차치하고 나로서는 여러 영향, 정치적인 상황도 살펴야 한다”는 발언까지 담겨 있었다. 사법부 독립보다 당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눈치를 보는 김 대법원장의 민낯이 만천하에 드러나고 말았다. 이번에는 민주당이 사의를 표명해 교체가 확정된 이종섭 국방부 장관 탄핵소추안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탄핵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헌법재판소 결정 전까지 몇 달간 장관 직무가 정지된다. 대통령은 탄핵 소추된 장관에 대한 인사권을 행사할 수 없다. 기존 장관을 해임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장관을 임명할 수도 없다. 통상 야당의 장관 탄핵은 교체를 압박하는 수단이다. 그런데 이미 그만두겠다는 마당에 탄핵을 강행한다는 것은 오히려 사임이나 해임을 차단하는 꼴이 돼버린다. 이러니 정략적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더욱이 국방부 장관 거취는 국가안보와 직결돼 있다. 헌법상 국무위원 탄핵은 요건이 엄격하다. 분명한 법 위반 사실이 드러나야 한다. 민주당은 이 장관이 수해 복구 활동 중 순직한 해병대원 사건 수사에 외압을 행사했다고 주장하는데, 구체적인 증거가 나온 게 없다. 이상
요즘 가장 핫한 K팝 걸그룹은 뉴진스(NewJeans)다. 민지 하니 다니엘 해린 혜인 등 멤버 5명이 모두 10대로, 가장 어린 혜인은 이제 15세다. 호주 국적자도 두 명이다. 하니는 부모 모두 베트남 출신으로 호주에서 나서 자랐고, 다니엘은 호주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작년 7월 데뷔한 뉴진스는 시대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사랑받아온 패션 아이템 진(Jean)처럼 새 시대의 아이콘이 되겠다는 포부를 그룹명에 담았다고 한다. 해외에서의 인기는 가히 폭발적이다. 지난 3일 미국 시카고 그랜드파크에서 열린 세계적인 음악 페스티벌 ‘롤라팔루자’에서 뉴진스의 공연이 시작되자 7만여 명이 ‘떼창’하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음악적인 면에서도 새롭다. 기존 K팝 걸그룹이 ‘걸크러시’ 콘셉트로 승부한 것과 달리 듣기 편안한 음악으로 세계 팝시장을 파고들었다. K팝 특유의 격정적이고 화려한 퍼포먼스와 사뭇 다른 스타일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데뷔 1년 만에 이룬 성과를 감안하면 뉴진스가 가까운 시기에 블랙핑크를 넘어설 수 있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지난주 공개된 빌보드 차트에서 뉴진스의 미니 앨범 2집 ‘겟 업(Get Up)’이 메인 앨범 차트인 ‘빌보드 200’ 1위를 기록했다. 데뷔 6년 만에 1위에 올랐던 블랙핑크에 이어 국내 걸그룹으론 두 번째다. 이뿐만이 아니다. 빌보드 메인 싱글 차트 ‘핫 100’에는 뉴진스의 ‘슈퍼 샤이’ ‘ETA’ ‘쿨 위드 유’ 등 3곡이 동시에 진입했다. 핫100에 3곡을 동시 진입시킨 K팝 그룹은 BTS뿐이었다. 11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 폐영식 직후 열린 K팝 콘서트에 뉴진스가 등장해 4만여 명 스카우트의
더불어민주당 혁신위원장인 김은경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정치권에 등장한 것은 2015년이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민주당 전신) 대표 체제에서 당무감사위원으로 영입돼 ‘개혁의 칼’을 휘둘렀다. 자녀 로스쿨 특혜 의혹을 받은 신기남 의원, 피감기관에 시집을 강매한 노영민 의원 등의 중징계 결정에 깊이 관여했다. 이런 인연이 발판이 됐을까. 김 교수는 문재인 정권 4년 차인 2020년 여성 최초로 금융감독원 부원장(금융소비자보호처장)에 올랐다. 정권 교체에도 부원장 중 유일하게 남아 3년 임기를 꽉 채웠다. 이런 행동은 윤석열 정부와 각 세우기에 매달리는 야권 일각으로부터 “원칙대로 강단 있게 일한다”는 호평을 들었다. 그렇더라도 거대 야당의 쇄신을 이끌 혁신위원장까지 꿰찬 건 파격이었다. 운도 따랐다. 앞서 혁신위원장에 임명된 이래경 다른백년 명예이사장이 과거 ‘천안함 자폭’ 등의 발언 논란으로 사퇴하면서 인물난에 시달린 결과였으니 말이다. 김 위원장에 대한 기대는 이내 우려로 변했다. 설화(舌禍)가 이어졌다. “왜 미래가 짧은 분들이 1 대 1로 표결해야 하나”라는 노인 폄훼 발언이 압권이었다. 여론의 거센 비판에도 사과를 미루다가 나흘 만에 대한노인회를 찾아가 머리를 숙였다. 그 자리에서 김호일 대한노인회장이 김 위원장 얼굴 사진을 손바닥으로 여러 번 후려치는 걸 지켜보는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김 회장의 ‘오버 액션’이 약간의 동정을 부르며 수그러드나 싶던 ‘김은경 리스크’가 주말을 거치며 새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자신을 시누이라고 밝힌 A씨가 블로그에 올린 가족사와 관련된 장문의 글이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김
캠프 데이비드(Camp David)는 미국 워싱턴DC에서 북서쪽으로 약 110㎞, 해발 580m의 메릴랜드주 커톡틴산 정상 부근에 있는 대통령 전용 별장이다. 울창한 숲속의 ‘작은 백악관’으로도 불린다. 대통령 집무실과 회의실, 유사시에 대비한 지하 방공호 등을 갖추고 있다. ‘아스펜 롯지(Aspen Lodge)’를 비롯한 여러 채의 거주시설은 대통령 가족과 특별히 초대하는 해외 정상의 숙소로 사용된다. 3홀 규모의 골프장, 수영장, 체육관, 승마장, 볼링장 등 스포츠 시설도 다양하다. 이 별장은 1942년 지어졌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여름에도 시원한 이곳에 휴양시설을 짓고 영국 작가 제임스 힐턴의 소설 에 나오는 숨겨진 낙원의 이름, ‘샹그릴라’로 명명했다. 이후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1953년 자기 손자 이름을 따 지금의 캠프 데이비드로 명칭을 바꿨다. 초강대국 대통령의 별장에는 1943년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를 시작으로 니키타 흐루쇼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 아베 신조 일본 총리,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 이명박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등 주요국 국가 원수들이 방문했다. 캠프 데이비드는 역사적 사건의 무대가 되기도 했다. 1978년 9월 안와르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과 메나헴 베긴 이스라엘 총리가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의 중재로 이곳에서 12일간 비밀리에 중동 평화 협상을 벌였고, 양국 간 오랜 적대 관계를 끝내는 ‘캠프 데이비드 협정’을 체결했다. 다음달 18일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캠프 데이비드에서 ‘한·미·일 정상회담’을 할 것으로 알려졌다. 3국 정상이 나토 정상회의, G7 정상회의
담장 너머를 보려는 사람들에게 같은 높이의 발판을 주면 어떻게 될까. 키가 아주 작은 사람은 발판을 딛고도 담장 밖을 볼 수 없다. 대신 키에 따라 다른 높이의 발판을 제공하면 모두가 담장 밖 풍경을 볼 기회를 얻는다. 평등과 공평을 얘기할 때 자주 등장하는 카툰 내용이다. 미국의 소수 집단 우대 정책인 ‘어퍼머티브 액션(Affirmative Action)’도 이런 취지에서 시작됐다. 흑인 인권운동이 폭발하던 1961년, 존 F 케네디 당시 대통령은 ‘정부 기관들이 지원자의 인종, 신념, 출신 국가와 무관하게 고용되도록 적극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내용의 행정명령을 내렸다. 이후 정책의 적용 대상과 범위가 확대되면서 미국 내 대학들도 소수인종을 우대하는 입학 제도를 도입했다. 어퍼머티브 액션은 출발선이 달랐던 흑인·히스패닉에겐 주류 사회 진출의 디딤돌이 됐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자신을 “학창 시절에 의심할 여지 없이 소수인종 우대정책의 혜택을 받은 사람”이라고 했고, 프린스턴대를 졸업하고 히스패닉 최초로 연방대법관에 오른 소니아 소토마요르 역시 “완벽한 소수인종 우대정책의 수혜자”라고 스스로를 표현했을 정도다. 이 정책은 그러나 60여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또 다른 차별을 낳았다. 백인·아시아계 학생들은 우수한 학업 성적에도 흑인·히스패닉 등에게 주어지는 인종 우대 점수에 밀려 명문대에 진학하지 못하는 역차별을 당하고 있다며 소송을 이어왔다. 그럼에도 연방대법원은 인종을 입학 사정 과정에서 여러 요인 중 하나로 고려하는 것은 합헌이라는 판단을 유지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임기 중 보수 성향 대법관을 3명이나 임명한 여파일까. 연방대
한 분야에서 큰 성취를 이룬 인물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준다. 같은 직업이라면 더 큰 동기 부여가 된다. 한국 여자프로골프에선 1998년 US 여자오픈 우승을 시작으로 미국 LPGA투어 통산 25승을 거둔 박세리가 그렇다. 많은 ‘박세리 키즈’가 그를 롤모델 삼아 태평양을 건넜다. 박인비 최나연 신지애 등 한때 LPGA를 호령한 선수들은 첫 우승 소감에서 ‘세리 언니’를 언급했다. 한국(한국계 제외) 선수들은 그동안 LPGA 무대에서 206승을 거뒀다. 2015년엔 15승을 합작하기도 했다. 수성(守城)이 쉬울 리 없다. 미국은 물론 유럽 태국 일본 선수들의 약진으로 요즘 LPGA투어는 춘추전국 시대다. 한국 선수의 우승은 2020년과 2021년 각 7승에 이어 2022년 4승, 올해 상반기 1승으로 줄었다. 한국에 박세리가 있다면, 중국엔 펑산산(2021년 은퇴)이 있다. 2007년 데뷔한 이후 중국인 첫 LPGA 우승(통산 10승), 중국인 첫 메이저 우승, 통산 상금 1200만달러, 세계랭킹 1위(2017년), 올림픽 동메달 등을 기록한 중국 골프의 영웅이다. LPGA투어에 중국인 선수가 드물던 시절, 중국 소녀들은 고군분투하는 펑산산의 활약상을 보며 골프채를 잡았다. ‘펑산산 키즈’다. 최근 이들의 기세가 예사롭지 않다. 지난주 메이저 대회인 KPMG 여자 PGA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인뤄닝이 선두 주자다. 인뤄닝은 올해 4월 디오 임플란트 LA오픈에서 중국인으로는 펑산산에 이어 두 번째로 LPGA 정상에 올랐고, 이번엔 메이저 트로피까지 들어 올렸다. 펑산산 키즈의 부상(浮上)은 한국 선수들에겐 새로운 위협이다. 2009년부터 엘리트 선수 육성에 나선 중국의 ‘골프 굴기’가 결실을 보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반면, 한국 선수들의 미국 진출은 주춤하다. 올해
지난해 미국 자동차 시장 판매 1~3위는 GM(226만8700대), 도요타(201만3900대), 포드(184만7700대)였다. 테슬라는 53만6000대로 9위였다. 전기차 시장만 놓고 보면 테슬라가 압도적 1위다. 미국에서 팔린 전기차 81만 대 중 테슬라의 점유율은 65%로 모델Y가 22만5700대, 모델3는 19만5600대 팔렸다. 포드의 머스탱 마하-E(3만9400대), GM의 쉐비 볼트EV(3만8100대)가 뒤를 이었지만, 테슬라와의 격차가 컸다. 세계적으로 전기차 전환이 급속히 진행되면서 구매를 고민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시장도 그만큼 성숙한 것일까. 조사를 해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 AP통신과 시카고대가 올 1~2월 미국 성인 540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에 따르면 47%가 ‘다음에 자동차를 살 때 전기차를 구매할 가능성이 없다’고 답했다. 응답자의 83%는 비싼 가격을, 77%는 충전 문제를 이유로 꼽았다. 실제로 신차 판매에서 전기차가 차지하는 비중은 그리 높지 않다. 지난해 4분기 기준 북미(미국·캐나다)의 전기차 점유율은 6.9%에 그쳤다. 짐 팔리 포드 최고경영자(CEO)와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가 지난 25일 트위터의 음성채팅 서비스를 통해 제휴를 발표했다. 충전 인프라와 시장 확대를 위한 경쟁사 간 제휴로, 포드는 내년 초부터 테슬라의 어댑터를 활용해 자사 전기차도 슈퍼차저에서 충전할 수 있도록 했다. 2025년부터 출시하는 포드 전기차엔 아예 테슬라의 충전 표준(포트)이 장착된다. 120년 역사의 포드가 20년 된 테슬라의 충전 표준을 채택하기로 했다는 소식에 시장에선 놀랍다는 반응이 쏟아졌다. 이번 제휴로 포드는 자체 충전 인프라 확충 부담을 덜고 전기차 전환에 속도를 낼 수 있게 됐다.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픽업트럭 F-150의 전기차 버
현대자동차는 1974년 10월 이탈리아 토리노 모터쇼에 2개의 프로토타입(시제품)을 내놨다. 양산을 앞둔 ‘포니(PONY)’와 콘셉트 스포츠카 ‘포니 쿠페’였다. 이탈리아 유력지 ‘라 스탐파’는 “한국이 자동차 공업국 대열에 끼어들었다”고 대서특필했다. 이듬해 12월 첫 국산차 포니 양산이 시작됐다. 현대차 설립 8년 만의 성과였다. 포니가 세상에 나오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1940년부터 정비소를 운영하며 자동차 구조와 기계적 원리를 터득한 정주영 창업회장은 1946년 현대자동차공업사를 설립했다. 정부가 2차 경제개발계획에 따라 고속도로 건설에 나서자 정 회장은 현대건설을 통해 적극 참여하며 자동차 수요 급증을 예견했다. 때마침 한국 진출을 추진하던 포드와의 제휴가 성사됐고, 1967년 12월 현대차 설립으로 이어졌다. 현대차는 포드의 코티나 2세대 모델을 들여와 조립·생산했지만, 자체 기술력 부재의 한계를 절감했다. 정 회장이 독자 제조 단계로 진입해야 한다고 판단, 포드와 단순 제휴가 아닌 새로운 합작사 설립에 합의한 배경이다. 하지만 협상은 포드의 미온적인 태도로 1971년 결렬됐고, 현대차는 단독으로 고유 모델을 생산하기로 결정했다. 해외 디자인 업체를 수소문하고, 국내 부품사 초기 생태계를 구축해 3년 만에 이뤄낸 결실이 ‘조랑말’ 포니였다. 포니는 포니2와 함께 1980년대 중반까지 한국차 수출의 첨병으로 활약했다. ‘국민차’ 포니와 달리 포니 쿠페는 대량 생산되지 못하고 콘셉트 단계에 머물다 잊혀졌다. 홍수 등 자연재해로 실물은 물론 설계도면까지 유실됐다고 한다. 현대차가 지난주 이탈리아에서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참석한 가운데 ‘현대 리유니
남태평양 사모아제도에서 세 번째로 큰 섬인 아메리칸사모아는 과거 한국 원양어업의 전진기지였다. 파고파고 항(港)엔 한국 원양어선들이 수시로 드나들었다. 이 섬에는 한국인 선원들의 묘비가 있다. 1960~1970년대 참치잡이 배를 타고 나왔던 사람들이다. 원양어업계는 한국의 첫 원양선을 1958년 1월 부산에서 출항한 제2, 3 지남호로 친다. 앞서 제1 지남호가 인도양까지 시범 조업을 다녀오긴 했지만, 뱃길로 약 9000㎞나 되는 아메리칸사모아로 향한 제2, 3 지남호가 ‘최초’라는 것이다. 변변한 수출품이 없던 시절, 달러를 벌어들일 원양선 출항은 국가적 관심사였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제1 지남호가 잡아 온 거대한 청새치를 경무대 뜰에서 직접 살펴봤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68년 호주·뉴질랜드를 방문하고 돌아오는 길에 아메리칸사모아에 들러 “희망이 있는 곳에 민족의 항로가 열린다”며 선원들을 격려하기도 했다. 14개 태평양도서국(태도국) 중에는 사모아 외에도 우리와 인연이 있는 나라가 더 있다. 수십 개 섬으로 이뤄진 솔로몬제도의 과달카날 등 일부 주에선 2012년부터 한글을 공식 표기문자로 채택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해 화제가 됐다. 사용 언어가 70여 개에 달하는데도 표기문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서울대 등이 한글 교과서를 만들어 배포하고 수업을 했다. 신혼여행지로 인기가 많던 피지는 태도국 중 유일하게 대한항공이 취항해 2019년까지 직항노선을 운행했던 나라다. 태도국은 전통적으로 미국의 영향력 아래 있었지만 중국이 솔로몬제도와 2021년 안보 협정을 체결한 이후 미·중 경쟁이 격해지고 있다. 중국은 2018년 시진핑 주석의 파푸아뉴기니 방문 때 ‘중·태도국 정상회의
어린이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큰 공원이 우리나라에 처음 조성된 때는 1973년 5월 5일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건설 지시로 서울 광진구 능동에 어린이대공원이 문을 열었다. 어린이를 위한 변변한 놀이시설은 물론 공원조차 없던 시절, 어린이대공원은 창경원(현 창경궁)과 함께 전국 각지에서 찾아온 어린이와 부모들에게 사랑받았다. 크고 작은 재조성 사업을 거쳐 지금은 53만6000㎡ 부지에 놀이동산, 동물원, 식물원, 축구장 등을 갖춘 서울의 대표 공원으로 자리 잡았다. 원래 어린이대공원 부지에는 골프장이 있었다. 소수만 이용할 수 있는 ‘특권의 땅’이었다. 일제는 1930년 영친왕이 기부한 조선 왕실 부지에 경성골프구락부를 완공했다. 이 골프장은 6·25전쟁으로 폐허가 됐고, 이승만 전 대통령 지시로 ‘서울컨트리구락부골프장’(서울CC)으로 재개장했다. 서울CC는 박 전 대통령이 자주 이용했다. 그러다 경호상 우려가 제기되자 고양 원당의 한양CC에 18홀을 신설해 이전했다. 어린이대공원은 바로 서울CC 자리에 건설된 것이다. 어제 서울 한복판에 ‘용산어린이정원’이 개장했다. 주한미군으로부터 반환받은 부지 일부에 조성됐다. 개장 행사에는 윤석열 대통령이 참석해 어린이들과 함께 정원을 둘러봤다. 용산어린이정원 부지는 무려 120년간 ‘금단의 땅’이었다. 1904년 한일의정서 체결 후 일본군이 주둔했고, 광복 이후 지금까지 미군기지로 활용돼 일반인은 들어갈 수 없었다. 윤 대통령은 “우리나라에는 미래의 꿈나무인 어린이들이 마음껏 뛸 수 있는 그런 넓은 잔디밭 하나 제대로 없다”며 공원을 조성한 배경을 설명했다. 일반에 개방한 30만㎡의 정원은 미국 장군들이 거주했던
4년 만에 오프라인으로 열린 ‘2023 상하이모터쇼’(4월 18~27일)는 중국 전기차 기업들의 무대였다. 급성장한 비야디(BYD), 지리(Geely), 창안(changan) 등이 신차를 대거 선보였다. 그중에서도 지커(Zeekr·지리의 프리미엄 전기차 브랜드)의 준중형 SUV ‘지커X’가 시선을 끌었다. 르노코리아 2대 주주인 지리가 한국에 들여와 판매할 것으로 예상되는 모델이어서다. 전자동 도어, 좌우 이동 스크린, 위로 접히는 뒷좌석, 560㎞의 주행거리 등을 갖추고도 가격은 약 3850만원(20만위안)이다. 중국 전기차산업 발전과 전환 속도는 현기증이 날 정도다. 중국에서 지난해 팔린 승용차는 2054만 대로 전년 대비 1.9% 증가하는 데 그쳤다. 하지만 전기차(순수 전기차+플러그인 하이브리드차) 판매는 90% 급증한 567만 대에 달했다. 전체 판매 승용차의 약 27.6%가 전기차였다. BYD를 필두로 한 중국 기업들의 질주가 무섭다. BYD는 지난해 2021년(59만 대)보다 세 배 많은 약 180만 대를 판매했다. 급팽창하는 내수시장 덕에 테슬라(글로벌 131만 대)를 제치고 세계 1위 전기차 기업으로 부상했다. BYD의 마케팅 전략은 독특하다. 중국 역대 왕조(진·한·당·송·원)의 이름을 차명으로 쓴다. 애국 소비 트렌드와 맥이 닿는다. 이런 효과 때문일까. 작년 중국 판매량 상위 10개 전기차 중 6개가 BYD 차였다. 이 중 5개는 왕조 시리즈 차다. 콤팩트 SUV 쑹(宋·Song)이 47만 대로 1위였고, 친(秦·Qin) 플러스 세단이 4위(31만 대), 탕(唐·Tang) SUV는 9위(14만 대)를 차지했다. BYD의 굴기는 올해도 이어지고 있다. 내연기관 차량까지 합친 중국 내 판매량 순위에서 올 1분기 44만 대 이상을 판매해 폭스바겐을 처음으로 추월했다는 소식이다. 중국의 전기차 굴기는 우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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